아들아, 딸아, 내일의 너희에게 보내는 열두 번째 편지
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
지난 편지에서 파란만장했던 나의 40대를 들려주었지? 오늘은 이제 막 50대에 접어든 아빠가 비로소 알게 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려 한다.
옛 성현들은 50세를 '지천명(知天命)', 즉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라고 했지. 직접 겪어보니 거창하게 하늘의 뜻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이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어야 하는지는 조금 알 것 같구나. 50대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진정한 어른'으로 무르익어가는 과정임을 깨닫고 있단다.
젊은 시절에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애를 썼던 것 같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설득하려 들거나, 마음속으로 배척하곤 했지.
하지만 50대가 되니 신기하게도 내 주장보다는 다른 사람의 생각이 더 궁금해지더구나. '저 사람은 왜 저런 생각을 했을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지 않을까?' 하고 한 번 더 생각하게 돼. 내 잣대로 상대를 재단하는 대신,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는 '감정 이입'의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 다름을 인정하니 갈등이 줄고, 사람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는 기쁨을 맛보고 있단다.
치열했던 20대, 무거웠던 30대, 폭풍 같았던 40대를 지나오며 후회되는 순간들도 참 많았단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그때 왜 그랬을까' 하며 스스로를 탓하기도 했지.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모든 성공과 실패, 환희와 눈물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상처는 훈장이 되었고, 실수는 교훈이 되었지. 나는 이제 나 스스로의 삶의 과정을 존중하게 되었다. 남들과 비교하며 초라해하거나 우쭐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만이 써 내려온 유일한 역사를 사랑하게 된 거야. 너희도 언젠가 너희의 지난날을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날이 올 거란다.
젊었을 때는 친구가 좋았고, 사회적 성공이 급했기에 가족은 늘 그 자리에 있는 당연한 존재라고 생각했어. 때로는 가족이 짐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지.
하지만 나이가 드니 가족의 소중함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다가오는구나. 세상 모든 사람이 등을 돌려도 마지막까지 내 편이 되어줄 사람들. 내가 아플 때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나의 작은 성취에도 가장 기뻐해 줄 사람들. 너희와 너희 엄마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를 때가 있단다. 가족은 내 삶을 지탱하는 가장 든든한 뿌리이자,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란다.
50대는 인생의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을 준비하는 하프타임과 같단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멋진 중년과 여유로운 노년을 맞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해.
몸의 건강을 챙기는 것은 물론이고, 마음의 양식을 쌓고, 은퇴 후에도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취미를 찾고 있단다. 경제적인 준비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혼자서도 잘 노는 법'을 배우는 거지. 너희에게 짐이 되지 않는 부모, 언제 봐도 활력 넘치고 매력적인 어른이 되기 위해 아빠는 오늘도 부지런히 배우고 있단다.
예전에는 욱하는 성질에 화를 내기도 하고,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굴었지. 하지만 이제는 안다. 화를 내봤자 내 몸만 상하고, 상황은 악화될 뿐이라는 것을.
요즘은 의식적으로 화를 줄이고 자주 웃으려 노력하고 있어. 웬만한 일은 "그럴 수도 있지",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며 허허 웃어넘기는 배짱이 생겼단다. 웃음이 많아지니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모이고, 무엇보다 내 마음이 평화로워지더구나. 너희에게도 찌푸린 얼굴의 아빠보다는, 주름살 사이에 웃음이 낀 아빠로 기억되고 싶구나.
사랑하는 아들과 딸아.
나이 50이 넘었다고 해서 완벽한 어른이 된 것은 아니란다. 여전히 흔들리고 모르는 게 많지만, 적어도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은 찾은 것 같아.
너희도 세월이 흐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렴. 나이 듦은 상실이 아니라, 너희 안에 더 깊고 넓은 우주가 생기는 과정이니까.
오늘도 감사함으로 하루를 채워가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