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좇는 사람
오늘이.....
그는 버릇처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날짜를 세어본다.
오늘이 일요일이니 아마 6월 11일 아니면 18일일 텐데......
달력에 선명하게 표시된 X자를 보면서 오늘이 11일이 아니라 18일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에게 11일이나 18일은 별 차이가 없다. 특별히 중요한 일정이 있지도 않다. 단지 날짜를 세고 있을 뿐이다. 하루하루 무엇을 할지도 함께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주와 이번 주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건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하긴 작년 오늘과 올해 오늘은 뭐가 다르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오늘이 일요일인지 토요일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다만, 한 때 그는 일요일 저녁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일요일 저녁만 되면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큰 쇳덩이처럼 그의 가슴을 누르기 시작했다. 쇳덩이는 쇠문으로 변하고, 쇠문은 굳게 잠겨 도저히 밖을 내다볼 수 없다. 그러다 우연히 달력을 본 그는 그날이 일요일이며 저녁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학교에 다닐 때 일요일 저녁이면 그의 가슴이 두근대곤 했다. 가끔은 몸이 축 처지면서 가라앉는 느낌도 들었다. 어차피 월요일에 학교에 가고 나면 그래서 수요일쯤 되면 본래 밝은 표정으로 바뀔 테지만 유난히 일요일 저녁 석양을 바라보면 눈꺼풀이 축축해졌다. 그러던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이다.
이건 순전히 그 늙은이 때문이다.
그는 매번 사무실 구석 골방 안에서 cctv를 하루종일 보면서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이원장을 떠올린다.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정확하게 구분하고 항상 하고 싶은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가는 이원장이 그토록 오랫동안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누군가는 그가 대표이사의 가족이라고 했다. 다른 누군가는 그가 대표 이사의 아버지에게 큰 도움을 주었고, 그를 끝까지 챙겨달라는 유언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 말고도 너무도 많은 말들이 떠돌지만 대개 이원장의 능력보다는 처세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이원장을 '늙은이'라고 불렀다. 물론 보지 않는 곳에서 자기들끼리 부르는 호칭이다. 이원장은 그 누가 되었든 2명 이상이 모인 장소에서는 허리를 좀처럼 펼 일이 없다. 늘 자신보다 아랫사람이라고 해도 연신 허리를 굽히고 인사하기 바쁘다. 하지만 단 둘이만 앉아서 대화를 나눌 때 그의 표정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와 전혀 달랐다.
늙은이가 수요일 아침에 그를 불렀다. 대뜸 매출현황을 가져오라는 말과 함께. 그는 평소대로 매출 현황을 가지고 늙은이 방문을 두드렸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늙은이는 돋보기를 쓰고 공인중개사 수험서에 밑줄을 치고 있었다. 사무실 탁자에 앉자마자 특유의 뻔뻔한 미소를 띠며 이번 달 매출이 줄어든 이유를 설명하라고 한다. 직원들을 불러 자리에 앉힌 다음 그런 웃음을 보일 경우 필시 지금 하고 있는 말보다 더 중요한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여름 방학 직전 시험 기간이라 휴강이 1주일 정도 있어서 매출이 줄어 보이는 것이다. 방학 특강 홍보를 시작하며 전년처럼 매출을 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매년 같은 말을 늙은이이게 비슷한 날짜에 반복해서 설명을 한다. 아마도 내년에 늙은이가 죽지 않는다면 또 6월 첫 주에 오늘 이야기를 반복해야 할 것이다. 그럼 늙은이는 큰 한숨을 내쉬면서 잘좀 해 달라며 그 웃음을 웃을 것이다. 지금처럼.
그래서 그는 늙은이의 웃음이 싫다. 싫다기보다는 다소 징그럽다. 의례적으로 하는 행사 같은 만남이지만, 한 번만이라도 그의 깊은 한숨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로 인해 하루 종일 더러운 늪이나 우물 속으로 몸을 던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게다가 며칠 전 잘 아는 피부과에 갔다면서 피부비립종을 대충 세어도 한 150개 정도 떼어내고 덕지덕지 반창고 조각을 붙여놓은 이후 늙은이가 내쉬는 한숨은 악마가 내뿜는 주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늙은이와 잠시 만난 것이지만 그는 그날 이후 계속 몸이 처지고 다리가 잘 안 움직여지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러던 그가 일요일 아침을 맞은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