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우나 고우나 우리는 친구
나는 지금까지 홍콩을 두 번 가보았다.
처음엔 친구들과 함께, 그다음은 남편과 함께였다.
남편과 홍콩을 여행하면서 친구들과 왔을 때와 또 다른 홍콩의 매력을 발견했지만 나는 이미 첫 번째 홍콩에서 친구 간에도 각자에 따라 여행지에 대한 나의 감상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친구에게 씌였던 콩깍지가 벗겨지다
홍콩은 확실히 여자끼리 가기에 좋은 여행지다.
쇼핑하고 애프터눈티를 마시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데 죽이 맞는 사이라면 어디를 가도 시간을 보낼 곳이 널려있다.
2016년 여름, 나는 친구 둘과 함께 홍콩에 갔다. 유럽이 아닌 해외로 여행 간 것은 처음이었고 친구들과 해외로 여행 간 것도 처음이었다. 그 두 가지 사실만으로도 신이 나기에 충분했다. 친구 중 한 명은 대학교 시절부터 가장 가깝게 지내던 친구 중 하나였다. 늘 자신감이 넘치는 당당한 태도가 멋지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풍부한 리액션을 해주어 많은 사람들이 그이에게 마음을 기대고 털어놓는, 부러운 기질을 타고난 친구였다. 다른 한 명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친해진 한 살 많은 언니였다. 화려한 외모에 걸맞은 세련된 취향을 가지고 있어 자칫 까다로워 보이지만 알고 보면 감정 기복이 크지 않고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거나 요구하는 법이 없어 묘하게 편안한 사람이었다.
여행 한 달 전 다 함께 만나 점심을 먹던 날, 한껏 부푼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나갔다. 나는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도 참 좋아한다. 어디를 갈지, 무엇을 먹을지 정하며 미리부터 설레는 것 역시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그날도 여느 때와 대화주제가 다르지 않았다. 중간중간 여행 이야기를 꺼낸 것은 나뿐이었다. 친구 D는 그 당시 학원 강사였다. 게다가 두 달 전에 결혼한 새색시이기도 했다. 아이들의 학사 일정에 맞춰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첫 주에 눈치 게임으로 사수한 연차를 우리와의 여행에 쓸 수 있었던 건 그녀의 남편이 레지던트 과정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언니는 홍콩을 몇 번 갔다 와서 꼭 해야 하는 것은 없고 세 군데 정도의 맛집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결국 내가 그 맛집들을 포함한 일정을 혼자 짜게 되었다. 일을 할 때도 여행을 계획할 때도 사공이 많은 걸 좋아하지 않는 나이기에 이런 결론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지만 나 혼자만 잔뜩 들뜬 것 같아 아쉬웠다.
그런데 미리 알아간 숙소 리스트를 공유하면서 나와 언니가 동시에 D에게 놀랐던 부분이 있다. 합리적인 금액대의 숙소를 찾다 보니 싱글 침대 3개인 곳보다 싱글 침대 2개에 엑스트라 베드를 추가하는 룸타입이 더 나아 보였다. 그 말을 듣자마자 D는 본인은 목 디스크 기가 있어 딱딱한 침대에서는 못 잔다고 선을 그었다. 언니는 3박이니 하루씩 돌아가며 엑스트라베드에 자면 되겠다고 말하던 끝을 흐렸다. 나도 속으로 ‘돈은 똑같이 내는데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니?’라는 말을 삼켰다. 늘 상대에게 공감해 주고 수용적인 모습을 보이던 친구라 더 놀랐던 것 같다.
홍콩에서 우리는 여자들끼리여서 더 좋은 일정들을 함께했다. 전망이 근사한 호텔 라운지에서 애프터눈티를 즐기고, 쇼핑센터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저녁에는 야경을 조망할 수 있는 테라스가 널찍한 칵테일 바에도 갔다. 언니가 가고 싶다고 했던 레스토랑들은 하나 같이 근사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있는 ‘Mott32'도 언니가 미리 예약을 해두어 가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 먹었던 다양한 종류의 딤섬 맛이 아직도 생각난다. 입구조차 찾기 어려웠던 비밀스러운 인테리어의 ’Bibo'라는 프렌치 다이닝에서 명품 플레이트에 담긴 세비체도 난생처음으로 먹어보았다. 코스로 나오는 음식들을 하나하나 살피고 식기와 담음새, 맛에 대해 나름의 평론을 나누면서 유부녀인 나와 D는 남편이랑 왔으면 5분 컷으로 먹었을 음식들이라며 이렇게 음미할 수 있어서 좋다고 깔깔댔다. 언니는 그렇게 와 보고 싶었던 곳이라면서 우리 둘의 호들갑에도 마치 수 번은 와 봤던 사람처럼 초연했다. 그래도 입이 짧은 사람이 꽤 많이 먹었던 걸로 보아 마음에는 들었나 보다.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여행지에서만큼은 내게 쇼핑이 우선순위인 적이 없었다. 그 나라에서만 살 수 있거나 그 나라여서 유독 저렴한 품목이 아니라면 그 시간에 하나라도 더 보고 겪는 것이 내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갔던 7월의 홍콩은 밖에 오래 다니기엔 너무 힘겨운 기온과 습도였다. 피신의 명목으로 자연스럽게 쇼핑몰을 여러 군데 가보게 되었다. D와 언니 모두 패션 센스가 뛰어나 그때 둘의 권유로 샀던 원피스를 두고두고 참 잘 입었다. 한국에서도 셋이 쇼핑을 한 적은 없었는데 생각보다 함께하는 쇼핑은 재미가 있었다. 돈 주머니가 하나인 남편과 다니다 보면 눈치 아닌 눈치를 보았을 법한 물건들도 꼭 사지는 않더라도 한 번 더 살펴보고 착용해 볼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우리 중 단연 쇼핑 근력이 가장 뛰어난 것은 D였다. 나와 언니는 몇 번이나 D의 쇼핑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봤던 걸 또 보며 매장을 배회해야 했다. 이것도 내가 D에게 갸우뚱했던 부분이었다. 동시에 상대방의 템포에 맞춰 내 템포를 조정하는 쪽이 그녀가 아닌 언니라는 것도 의아했다.
친구의 진가를 발견하고
진심을 헤아리던 시간
지금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밖에도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나는 D에게서 낯선 모습을 자주 보았다. 언니나 나는 가고 싶은 곳이나 하고 싶은 것이 다를 경우 각자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는데 D는 무엇이든 함께 하고 싶어 했고 그 과정에서 상대방의 배려를 생각보다 쉽게 요구하는 타입이었다. 솔직히 여행을 함께 하기 전에는 D와 내가 취향도 성향도 비슷하지만 언니는 무엇을 좋아할지 모르겠어서 홍콩에 대해 잘 아는 언니에게 되도록 맞추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히려 언니는 홍콩이 처음인 나와 D를 배려해 오고 가는 길이 번거로운 ‘빅토리아 피크’를 흔쾌히 가주었고 내가 짠 일정에도 별다른 의견 없이 잘 따라주었다. D는 여행 전반에 걸쳐 리액션 장인다운 면모로 분위기를 띄워 활기를 돋웠다. 때때로 의외의 모습을 보였다고 해서 그 애의 이런 큰 장점이 묻힐 리 없었다.
친구사이는 가족이나 부부보다 더 선택적인 관계다. 그에게서 마음에 들고, 나와 맞는 부분이 있을 때 친해지게 되고 서로에게 쌓인 정도 갈등이 있으면 생각보다 쉽게 떨어지기도 한다. 어쩌면 그때까지 내가 D에게 기대했던 면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서도 무조건 내 편을 들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해 조언해 주는 듬직한 모습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D가 보였던 다소 의존적이고 이기적이었던 모습들에 너무 섣불리 ‘실망’이라는 감정을 느낀 것 같다. 그때 나는 내가 친구를 대할 때 좋아하는 부분만 보려고 했던 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D는 피로에 찌든 채로 홍콩이라는 덥고, 습하고, 복잡한 곳으로 휴가를 떠나왔지만 우리와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워 휴식보다 쇼핑과 관광에 치중하면서, 한 편으로는 신혼임에도 남편의 얼굴조차 보기 힘든 그 시기에 며칠을 밀착해 있는 친구들에게 쌓였던 이야기뿐만 아니라 못다한 어리광도 털어놓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때만큼은 내가 그녀의 필요가 되어주려는 노력을 더 해줬어야 했다. 언니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별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 무심함에는 사실 따뜻한 배려가 담겨 있었고 말로 뱉는 내용이 별로 없을 뿐 생각은 누구보다 깊은 꽤 의젓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공유했던 인생의 한 때
홍콩여행 막바지에 우리는 다음번엔 이렇게 셋이 뉴욕에 가면 참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당시 언니와 나는 D와 다시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은 좀 생각해 볼 문제라고 느꼈었다(여행 후 우리 둘이 나눴던 대화에서 언니도 D에 대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 셋은 물론이고 언니와 따로도 다시 여행 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 D는 아이를 둘 낳고 육아에 집중하는 생활을 보냈고 언니는 어머니가 투병을 하게 되면서 심적으로 여유가 없어졌다. 그 간에 나 역시 휴가를 쉽게 쓸 수 없는 직장에 다니게 되었다. 지금은 D도 아이들이 많이 컸고 언니도 바뀐 생활에 적응이 되었고 나도 시간적으로 자유로워졌지만 이제는 우리 모두 여행에 대한 열망도 예전 같지 않고 설령 마음이 있다 해도 실행력 이 많이 떨어졌다. 게다가 내 경우에는 부모님의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실감 나기 시작하면서는 일 년에 몇 번 내기 어려운 여행의 기회를 남편 아니면 부모님, 남편의 어머님과 함께 쓰는 것이 우선되는 이유도 있다. 역마살이 든 것처럼 전투적으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던 그 시기에 그 둘과 함께했던 홍콩은 그때의 나에게는 그 뒤로도 이어졌던 수많은 여행들 중 하나였을 뿐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의 ’한 때‘가 아무 곡절 없이 마주쳤던 아주 귀한 순간이었던 것이다. 마흔에 들어서면서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는 어른들의 말씀이 하나씩 체감된다.
나에게 몇 번 되지 않는 ‘친구와의 해외여행’ 경험을 함께 해 준 그 둘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지금 이렇게 생각하는 만큼 그 당시에도 그 시간을 더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면 나는 D에게 그렇게 서운해하지 않았을 것 같다. 언젠가 다시 함께 여행을 떠난다면 나는 그들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함께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 자체가 감사한 사람’으로 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나의 일상에서 늘 든든한 마음의 지원군이 되어주는 그들을 매년 더 깊이 사랑한다. 남편과 싸웠을 때, 부모에게 서운할 때, 직장에서 서러울 때 서로 다른 경험과 관점으로 의외의 해결점을 제시해 주는 친구라는 존재는 비단 어딘가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인생 여정 전반에 걸쳐 꼭 필요한 존재이다.
그 시절 우리의 홍콩은 낮 또한 밤처럼 영롱했고, 밤 또한 낮처럼 생생했다. 여행을 가기 전에도 다녀온 후에도 우리는 변함 없는 친구이지만 여행을 계기로 두 친구를 대하는 나의 마음과 태도는 폭염 뒤 선선한 바람처럼 조금 더 쾌적해졌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