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와 함께 하는 작가 자의식 생성기
오늘은 좀 과격하다. 흔히 초고는 쓰레기라고 말을 한다. 그럼 나는 기분이 나빠진다. 그 쓰레기, 내가 만들었는데. 그럼 나는?
각설하고 초고 쓰레기설에 대해 나를 위로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14. 초고가 쓰레기면 쓰레기를 만들어야 하는가?
이 말은 반대로 말하면 초고가 안 좋아도 퇴고 후의 원고는 좋다는 뜻이다. 결국 퇴고를 권장하는, 조금은 과격한 말인 것이다. 이거에 발끈해서 "그럼 나는?"이라고 속좁게 말하면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글이란 무엇인지, 왜 써야 하는지 정성스럽게 써왔기 때문이다. (전 화에서)
그렇다면 퇴고의 법칙들을 써볼까. 초고 쓰레기설이 급진파라면 온건파로 어떻게 하면 좋은 퇴고를 하는지 알아본다.
"하지만 장편소설의 집필은 야구와 달라서 일단 초고를 완성한 그때부터 다시 또 다른 승부 (게임)가 시작됩니다. 한 말씀 드리자면, 바로 여기서부터가 그야말로 시간을 들일 만한 보람이 있는 신나는 부분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52p)
1. 퇴고는 즐겁다.
퇴고는 원래 안 즐겁다. 양심없이 소원하지만 그냥 초고가 완벽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하루키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시간을 들일 만한 보람이 있는
-신나는 부분
이 두 부분을 깊게 해석하면,
-시간을 들이는 대로 결과가 확확 나타나고
-그렇게 보이는 과정이 신나는 부분.
...이것이 퇴고의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언제나 장단점이 함께 있는 게 세상만사니, (그리고 이것도 사실이니) 자꾸 이상한 완벽주의를 주장하지 말고 (날 때부터 천재였으면 좋겠다는 이상한 마음이 있다)
좋은 결과물을 만들겠다, 라는 마음으로 퇴고를 해야겠다.
2. 2고 수정할 부분은 다음과 같다.
-모순되는 부분
-이야기가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
-바뀐 등장인물의 설정
-바뀐 등장인물의 성격
-오락가락한 시간설정
-전체적으로 뭔가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52p 본문 중)
3. 수정 방향은 다음과 같다.
- 빼버리기
- 부분 늘리기
- 새로운 에피소드 만들기
- 설정 서로 맞추기
- 이야기 앞뒤 서로 맞추기
하루키의 퇴고는 거의 5고+ 알파다. 5번 + 알파로 퇴고를 하는 것이다. 브랜든 샌더슨이 투고하기 전에 적어도 3번은 퇴고를 하라고 했는데 하루키는 최소 5번을 퇴고한다. 오늘 아주 오랜만에 투고했던 로판 웹소설을 2고 퇴고해보았다.
2)에 있는 수정할 부분을 하이라이트로 칠했을 뿐인데 느낀 점이 많다. 정말 나는 '정원사' 글쓰기 타입이 맞는 것 같다. 무슨 잡초가 그리 많은지. 꽃(=메인 플롯)이 있으면 그 옆에 잡초(=즉흥으로 넣은 설정과 플롯과 캐릭터들)이 엄청 나있다.
주르륵 스크롤하면서 '오. 흥미로운데.'하는 잡초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것 뿐. 자꾸 꽃이 가려지는 거다. 도대체 이 소설의 중심이 뭔지 모르겠다, 고 생각이 미친 그때. 도대체 이걸 읽고 피드백을 써준 출판사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충격적인 자기반성을 했다. 혹평이 장난이 아니었는데 그들이 너무 이해가 되었다. 정말 자기 멋대로(를 넘어서 진짜 이게 산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나 각 파트는 또 매력적인 이 꿰어놓은 보자기 같은 작품을 다 읽어주다니. 그들에게 감사하게 되었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결론적으로, 초고가 쓰레기면 쓰레기를 만들어야 할까?
- 쓰레기가 나에게 필요한 쓰레기였다면 (이미 그건 쓰레기가 아니겠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 당신도 알다시피, 저 말은 '넌 쓰레기야.'가 아니라 '퇴고 좀 하세요.' 라는 권고다. 퇴고는 즐거운 일이다. 다 자란 무성한 정원을 예쁘게 가꾸는 일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초고가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라면 '무성한 정원-> 예쁜 정원'으로 바꾸는 게 퇴고다. 이건 꽤나 하는 대로 결과가 나오고 그게 또 성과도 있는 일이다 (초고에 비하면! 초고도 재밌게 쓰는 마당에 퇴고는 완성도를 높이는 마지막 폴리싱이다.)
- 2고는
2. 2고 수정할 부분은 다음과 같다.
-모순되는 부분
-이야기가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
-바뀐 등장인물의 설정
-바뀐 등장인물의 성격
-오락가락한 시간설정
-전체적으로 뭔가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52p 본문 중)
3. 수정 방향은 다음과 같다.
- 빼버리기
- 부분 늘리기
- 새로운 에피소드 만들기
- 설정 서로 맞추기
- 이야기 앞뒤 서로 맞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