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대 집단해고 철회 농성 승리 그 후 (2편)
신라대 청소노동자는 농성장을 정리하고 다음날 6월 18일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비정규직 투쟁 현장을 찾았다고객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는 ‘고객센터 직영화, 건강보험 공공성 강화, 생활임금 보장’ 위해 투쟁 중이었다. 장기 농성으로 쌓인 피로를 풀 틈도 없이 비정규직 투쟁 현장으로 향했다.
고객센터 노동자 농성장은 국민건강보험 공단 앞 야외 공간에 있었다. 실내에 몇몇 동지들이 농성을 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야외에서 텐트를 치고 농성을 하고 있었다. 신라대 투사들은 고객센터 농성장을 보고 비와 바람이 닥치면 어떻게 하나 걱정부터 했다.
“우리 투쟁은 5성급 호텔이었던 것 같습니다. 농성 중에는 집보다 불편하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잠을 이룬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어요. 근데 지나고 보니깐 우리는 새 건물에 비와 바람 걱정 없이 편안하게 보낸 것 같아요. 고객센터 동지들 여름 장마에 비가 들이닥치면 어떨지 걱정이 되네요.”
직고용을 쟁취한 청소노동자들은 끝까지 투쟁하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말을 고객센터 노동자들에게 전하고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하며 힘차게 연대하였다.
“저희는 114일 농성 투쟁을 통해 투쟁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내 권리는 나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라대지회의 승리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초석이 되었으면 합니다. 당당한 노동자가 반드시 승리합니다. 끝까지 투쟁합시다!” -신라대지회 정현실 지회장
부산에서 원주로 왔다 갔다 왕복하는 길에 신라대 투사들이 집으로 복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먼저 모든 조합원들이 그동안 밀렸던 집안일을 해야 하는 것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신라대 농성 투쟁 기간 속에 청소노동자들은 일주일에 1~2회 정도만 집에 가고 나머지는 대학본부에서 먹고 잤다. 그렇다 보니 집이 많이 지저분한 상태라고 했다.
“투쟁장으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집일이 많아요. 엄마 여름 커튼 바꿔줘. 엄마 여름이불로 바꿔줘. 엄마 돗자리 깔아줘. 더운데 반바지 좀 찾아주라. 우리들은 큰일 치르고 복귀했지만 가사 노동으로 쉴 틈이 없네요.”
A 조합원의 딸은 엄마의 복귀를 격하게 환영했다고 했다. 엄마가 집에 없다 보니 딸은 매일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다고 한다. 처음에 딸은 배달음식을 매일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하지만 농성이 장기화되자 맵고 달고 짠 배달음식이 건강을 해쳤다.
“엄마 나 배달음식 매일 먹으니 살이 10kg 넘게 쪘어요. 배달음식도 처음에는 좋지 시간이 지날수록 집밥이 그리워졌어요. 배달음식보다 덜 맛있어도 집밥이 건강에는 도움이 많이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어요. 엄마가 없을 때는 몰랐는데 집안일이 이렇게 힘들고 중요한지 이제 알게 되었어요. 엄마 고마워요.”
A 조합원은 복귀하자 말자 장을 보고 딸을 위해 오랜만에 진수성찬을 차려 함께 밥을 먹었다고 한다.
B 조합원은 농성장을 정리하고 차량을 통해 집으로 귀가하였다. 집 앞 주차장에서 주차를 하던 중 옆 차를 박아 접촉 사고가 났다. 다행히 차만 긁히고 사람이 다치진 않았다. 하필 비싼 외제차를 긁어 수리비만 200만 원 이상 깨졌다고 했다. 농성 중에 바짝 긴장한 상태에서 갑자기 긴장이 풀리면서 했던 실수라고 말했다.
“농성 끝나니 긴장이 풀리면서 기분이 업 되더라고요. 기쁜 마음에 노래 부르면서 차를 주차하고 있는데 그대로 옆 차 박아 버린 거예요. 하필 외제차라 수리비만 200만 원이 넘더라고요. 돈보다 남편이 나에게 화낼까 봐 걱정되더라고요. 근데 남편은 나의 안부를 먼저 챙기고 안 다쳐서 다행이라고 말하며 넘어가더라고요. 집을 오래 비우다 보니 남편이 아내의 소중함을 이제 알게 된 것 같더라고요. 200만 원 넘게 수리비가 나와서 걱정했는데 남편 반응에 우쭐해지더라고요.”
B 조합원 이외에도 다른 조합원들도 농성 이후 남편이 아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집안일에 손도 까닥 안 했는데 농성 이후에는 세탁기 사용, 간단한 요리 정도는 배운 남편도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장기간 농성으로 피로한 아내에게 바로 집안일을 하라고 잔소리하지 않고 제주도 여행 가서 푹 쉬고 오라는 남편도 있었다고 한다. 142일 농성 투쟁을 거치면서 여성 조합원의 남편은 전통적인 가부장제를 고집할 수 없게 되었다.
부산에서 원주 가는 길에 플랜카드가 많이 보였다. 기업에서 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플랜카드도 보였고 억울한 피해자들의 사연이 담긴 플랜카드도 보였다. C 조합원은 이제 플랜카드만 보면 눈이 먼저 간다고 말했다.
“신라대 농성할 때 플랜카드 가지고 말이 많았잖아요. 노조 플랜카드를 누군가가 훼손하기도 하고, 총학생회에서 투쟁을 비판하는 플랜카드도 붙이는 등 농성장 내내 거슬리는 게 플랜카드였어요. 누가 플랜카드를 통해 어떤 걸 붙여놨는지 늘 주목해야 했죠. 그래서 밖에 나와도 플랜카드만 보면 눈이 먼저 가요. 또 누가 억울한 일이 있어서 힘들게 싸우고 있나 라고 걱정이 되더라고요. 농성 투쟁을 하면서 공감 능력이 배는 키워진 거 같습니다. 내 문제로 투쟁을 시작했지만 결국 나만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투쟁을 초기에 신라대 투사들은 빨간 노조 조끼를 신라대를 벗어나 입고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투쟁이 끝나고 원주에서 부산 가는 길 빨간 노조 조끼를 한시도 벗지 않고 착용했다. 투쟁 조끼의 편안함과 소속감에 안정을 느끼게 된 것이다.
“처음에 투쟁 조끼 불편했어요. 빨간색에 단결 투쟁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어서 부담스러웠죠. 근데 투쟁을 장기간 하다 보니 그런 부담보다는 오히려 편안하더라고요. 우선 투쟁 조끼에 주머니가 많아서 오만가지 물건을 가지고 다닐 수 있어 정말 좋아요. 그리고 노조를 통해 내 일자리를 지킨 경험을 하게 되니 묘하게 소속감이 생기더라고요. 노조 조끼만 입으면 뭔가 나를 보호해주는 든든함이 느껴집니다.”
신라대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철회 농성 이야기와 농성 승리 그 후 연재를 모두 마친다. 연재는 이것으로 마치지만 그동안 풀지 못한 이야기를 엮어서 책으로 출판하고자 한다. 요즘은 POD(주문형 도서출판)방식으로 누구나 출판이 가능한 시대라서 출판사가 못 구하더라도 신라대 투사들의 이야기는 책 한 권으로 정리해볼 생각이다. 노동조합 가입 10년 만에 직접고용을 쟁취한 투사들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용기를 낼수 있는데 작은 힘이 되고자 책을 출판하고자 한다. 숨겨진 신라대 청소노동자 농성 이야기는 조금만 더 기다려주길 바란다.
P.S
신라대 청소노동자 투쟁에 함께 해주신 모두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