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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디자인 이야기
by 배민관 Mar 10. 2018

Hyundai Le Fil Rouge (2018)

현대자동차 디자인의 미래


현대자동차가 제네바 모터쇼에서 자신들의 미래 디자인 방향성을 제시하는 컨셉인 르 필 루즈(Le Fil Rouge)를 발표했다. 르 필 루즈는 프랑스어로, '공통의 맥락'이라는 뜻이다. 현대자동차에서 출시해온 과거 모델들에서 조형적 맥락을 이어옴과 동시에, 앞으로 제시할 디자인에서 공통으로 나타날 조형을 보여주는 모델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현대에 따르면 2009년 YF 쏘나타부터 거의 10년간 발전시켜 온 디자인 언어인 플루이딕 스컬프쳐에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센슈어스 스포티네스(Sensuous Sportiness)의 시대를 여는 모델이다. 새로운 디자인 언어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기존보다 좀 더 감각적이면서 역동적인 모습이다.



디자인 언어가 바뀐 만큼 한눈에 보기에도 기존 현대차와는 아주 다르다. 프론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그릴이다. 완전한 전기자동차 시대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모델이라 그릴이 뚫려 있지 않고 패널로 깔끔하게 덮여 있다. 형태 자체는 현행 현대차들의 캐스케이딩 그릴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헥사고날 그릴의 흔적을 완전히 집어 던지고 위가 넓은 사다리꼴 형태를 채택했으며 헤드램프를 아예 없애고 그릴을 양옆으로 길게 찢어 과감하고 사나운 인상을 만들었다. 패널 안쪽에는 패턴 형태의 라이트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이는 사람이 운전할 때와 자율주행할 때 다른 모습으로 빛난다. 사실 이런 그릴은 현대자동차 라인업에 이미 존재하는데, 바로 현대의 수소전기차 넥소다. 물론 넥소는 SUV이고 두 개로 나눠진 헤드램프 디자인을 채용했으며 양산차인지라 형태상에 조금 차이는 있지만, 현대가 지향하는 조형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아마 미래 현대차는 르 필 루즈 컨셉처럼 그릴과 램프가 통합된 모습일 것이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공기를 유입시키는 본래의 기능을 수행할 뿐 아니라 프론트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부분인지라 차량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조형적 요소다. 그릴의 형태를 패밀리룩으로 확장한 경우 한 차량 뿐 아니라 브랜드 전체의 이미지 또한 구축할 수 있다. BMW의 키드니 그릴이나 렉서스의 스핀들 그릴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사실 전기자동차에는 그릴이 필요 없다. 공기를 주입해야 할 엔진이 없으니, 공기저항을 줄이는 용도의 액티브 에어 인테이크 정도는 들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거대한 그릴은 오히려 방해다. 이를 디자인 자유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당연했던 기존 조형 요소가 사라지면 그 자리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그릴이 존재하는 디자인에 익숙한 소비자들의 안목과 공기역학 같은 기능적인 요구, 그리고 차체의 다른 조형들과의 조화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현대는 그에 대한 답으로 그릴 형상의 패널과 램프의 통합을 제시한 듯하다. 사실 그렇게 획기적인 방법은 아니고 이미 다른 브랜드의 몇몇 컨셉에서도 선보인 적이 있는 방식이지만, 캐스케이딩 그릴에서 새로운 조형으로 옮겨가는 과정이 유연하고 부드럽다. 플루이딕 스컬프쳐의 갑작스런 등장과 플루이딕 스컬프쳐 1.0에서 2.0으로의 급격한 방향 변경에 비교하면 어느 정도 흐름이 보인다. 쏘나타 뉴라이즈부터 코나, 신형 싼타페까지 현대의 최근 그릴 디자인을 눈여겨보면 캐스케이딩 그릴의 윗부분은 갈수록 좁아지고 아랫부분은 계속 넓어지고 있다. 코나에서는 헤드램프를 굉장히 얇게 만들면서 동시에 그릴과 헤드램프 사이를 좁혔고, 신형 싼타페에서는 크롬 장식을 더해 아예 램프와 그릴을 붙여 놨다. 그릴과 램프를 통합해 전기자동차 시대에 어울리는 디자인을 자연스레 구현하고 새로운 디자인으로 부드럽게 넘어가고자 하는 게 현대의 생각이 아닌가 싶다. '공통의 맥락'이라는 이름이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가.



사이드를 보면 후드가 무척 길고 휠베이스가 굉장히 넓다. 프론트 오버행은 거의 극한까지 좁혀 놨고 리어 오버행은 넉넉해 스포티한 비례를 완성했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건 세련된 패스트백 스타일과 유려한 더블 버블 루프다. 현대가 잘 선택하지 않던 감각적인 디자인이다. 특히 버블 루프의 부드럽고 풍만한 곡선은 현대차에서 볼 수 없었던 감성이다. 컨셉이니까 거리낄 것 없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건가 싶지만 앞으로의 양산차에도 적극 반영되었으면 좋겠다 싶은 부분이다. 


다음으로는 그릴에서 시작해 부드럽게 윈도우로 들어오는, 크롬을 덧댄 윈도우 조형이 돋보인다. 크롬이 분명하게 프론트 휠아치 위로 파고들며 C필러에서 부드러운 곡선을 형성하고, 계속해서 루프로 올라갔다가 A필러로 떨어져 점점 좁아지다 사라진다. 지나치지 않고 부드럽게 차체와 조화되는 모습이 감탄스러운데, 이 또한 생뚱맞게 등장한 디자인이 아니라 쏘나타 시리즈가 유지하고 있는 디자인 요소다. YF 쏘나타에서 시작해 LF 쏘나타를 거쳐 쏘나타 뉴라이즈까지, 플루이딕 스컬프쳐가 적용된 쏘나타 시리즈는 전부 램프에서 시작해 윈도우 아래로, 그리고 C필러에서 위로 올라가서 A필러까지 이어지는 크롬 라인이 있다. 그 디자인을 이어오면서도 굵기와 곡률을 조정해 매력적인 디자인으로 완성했다. 디자인을 살펴볼수록 과거와의 '맥락'이 존재한다는 게 확연히 보인다.



프론트 휠아치에서 시작하는 완만한 곡선의 캐릭터 라인은 그대로 리어로 이어져 리어 램프 역할을 하는 패널을 구성한다. 리어램프 역시 헤드램프와 마찬가지로 검은색 패널로 평소엔 숨겨져 있다가 필요할 때만 패턴 식으로 라이트가 나오는 듯하다. 패널만 봐서는 최근의 푸조 리어램프 디자인이 떠오르기도 한다. 머플러는 완전히 사라지고 보텍스 제너레이터가 달린 리어 디퓨저만 존재해, 이 모델이 완전 전기차 시대를 지향하는 것을 보여준다.



스케치에서는 현대가 말한 센슈어스 스포티네스가 무엇인지 조금 더 명확하게 감상할 수 있다. 차체 전반을 가로지르는 부드러운 라인들과 풍만한 곡선, 그리고 그 속의 날카로운 주름들이 만드는 역동성이 인상적이다.



인테리어는 굉장히 현실성 떨어지는 모습이고 현행 현대차 모델들과 큰 연결점도 없어 보이지만, 전반적으로 유기적인 곡선이 많이 들어간 것이 눈에 띈다. 특히 C자 형태 시트에서 윗부분이 디스플레이, 아랫부분이 수납공간이 되는 아이디어가 흥미롭다. 현재 자동차에 사용되는 디스플레이들은 전부 딱딱한 네모형이라 인테리어의 다른 조형들과 자연스럽지 못하게 연결되지 못하는데, 이를 무마하기 위해 팝업 디스플레이를 적용한다든가 계기판이 위치하던 곳에 디스플레이를 넣는다든가 하는 방법을 쓰곤 한다. 하지만 자유롭게 구부릴 수 있는 OLED가 자동차에도 상용화되면 저렇게 곡면 디스플레이를 적용해 다른 조형들과 부드럽게 연결되도록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아이폰X나 갤럭시S9에 적용된 디스플레이 역시 구부러져 있고 매 분기 몇천만 대 단위로 양산되니, 아마 디자이너들이 욕심을 낸다면 충분히 구현할 수 있는 부분일 것 같다.



플루이딕 스컬프쳐를 선보이며 일관된 방향을 선보이나 했던 현대차 디자인은 최근 몇 2~3년간 혼란스러웠다. 우선 플루이딕 스컬프쳐 1.0과 2.0 간의 격차가 너무 크고 새로운 디자인들이 기존의 철학을 무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새롭게 출범시킨 제네시스 브랜드의 디자인과 현대 브랜드의 디자인이 차별화되지 않는가 하면, 헥사고날 그릴을 살짝만 바꿔 크레스트 그릴이나 캐스케이딩 그릴로 부르는 등 디자인에 대한 깊은 애정 없이 적당한 포장과 미사여구로 새롭고 발전된 디자인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구를 무마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상엽과 루크 동커볼케의 투입으로 현대차 디자인은 어느 정도 새로운 방향성을 잡은 듯하다. 르 필 루즈는 현대의 기존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잇는다. 이름처럼 분명한 '맥락'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훨씬 정제되고 우아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물론 이제 막 발표된 컨셉이니 당장 현대차 디자인에 대대적인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현대의 행보를 보면 새로운 디자인 도입이나 시도, 디자이너 영입에 있어 굉장히 적극적이기 때문에 센슈어스 스포티네스라는 디자인 언어와 르 필 루즈의 디자인 특징이 별 반향 없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몇 년 안에 더욱 발전된 디자인의 현대차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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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자동차 디자인 이야기
23살.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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