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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애플을 ‘혁신의 아이콘’이라 부른다. 하지만 정작 Huxe 같은 서비스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건 애플이 만들었어야 하는데, 왜 스타트업이 먼저 했을까?” 아이폰 속에 이미 일정, 메일, 건강, 음악까지 다 들어 있는데, 단지 그것을 오디오로 바꿔 들려주기만 하면 된다. 조건은 완벽하다. 그런데 애플은 왜 여전히 움직이지 않을까.
Huxe는 최근 등장한 맞춤형 오디오 브리핑 앱이다. 일정과 메일, 뉴스, 심지어 뉴스레터까지 분석해 하루를 라디오처럼 요약해 들려준다. 단순 기계음이 아니라 감정을 얹어 “오늘은 조금 여유가 있겠어요”라고 말한다. 심지어 브리핑 도중 질문을 던지면 바로 대답까지 해준다. 나는 이 기능을 보며 곧바로 애플이 떠올랐다. 아이폰 속 데이터와 연결만 하면, 이건 사실 애플이 훨씬 더 잘할 수 있는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상상해보자. 아침에 일어나 아이폰을 집어드는 순간, “오늘은 오전 9시에 회의가 있고, 오후에는 여유가 있습니다. 어제 못 읽은 메일 중 중요한 건 두 개, 그리고 ‘AI’ 관련 뉴스 다섯 건이 있습니다.”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화면을 보지 않아도 마치 나만의 라디오 방송국이 하루를 준비해주는 느낌이다. 지금은 Huxe가 이런 경험을 제공하지만, 만약 애플이 직접 했다면 더 매끄럽고 강력한 생태계가 완성됐을 것이다.
그런데 왜 애플은 하지 않았을까. 흔히 말하듯 공룡은 걸음이 느리다.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기술 기업이지만 동시에 가장 보수적인 회사다. 수억 명의 사용자와 브랜드 신뢰를 고려해야 하기에 작은 스타트업처럼 빠른 실험과 실패를 반복할 수 없다. 애플은 항상 완성된 경험만을 내놓으려 한다. 이 철저한 완성주의는 안정성을 보장하지만, Huxe 같은 날것의 혁신을 늦추는 아이러니로 작동한다.
그러나 공룡의 느림이 항상 실패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애플은 후발주자임에도 성공한 대표 사례를 갖고 있다. 아이폰은 이미 노키아와 블랙베리가 장악하던 스마트폰 시장을 직관적 UI와 앱스토어 생태계로 뒤집었다. 애플워치 역시 삼성이 먼저 진입했던 시장을 디자인과 건강관리 기능으로 장악하며 프리미엄 웨어러블의 표준이 되었다. 후발주자라도 완성도가 압도적이면 시장을 재편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반대로 타이밍을 놓쳐 실패한 사례도 있다. iTunes는 디지털 음원 유통을 혁신했지만 스트리밍으로의 전환이 늦어 Spotify에 주도권을 뺏겼다. Siri는 가장 먼저 나온 음성비서였지만 발전이 더뎌 구글과 아마존에 뒤처졌다. 애플은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품고 있는 전형적 공룡이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교훈이 드러난다. 애플은 완벽주의로 혁신을 늦추기도 하지만, 한 번 성공하면 시장을 장악한다. 스타트업이 속도로 승부한다면, 애플은 완성도로 판을 뒤집는다. 문제는 AI 오디오 브리핑 같은 시장은 속도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사용자 습관을 선점하는 쪽이 장기적 승자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 Huxe가 빠르게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질문은 단순하다. “애플이 하면 가장 알맞은 서비스인데, 왜 만들지 못할까?” 아마도 답은 하나일 것이다. 공룡은 걸음이 느리다. 느림은 때로 성공을 낳고, 때로 실패를 낳는다. 중요한 것은 타이밍과 경험이다. 시장은 완벽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불완전해도 먼저 경험을 제공하는 쪽이 사용자의 습관을 차지한다. 지금은 작은 스타트업이 그 자리를 차지했지만, 언제든 애플이 나설 가능성은 남아 있다. 다만 그 순간, 이미 사람들의 일상 속에 뿌리내린 루틴을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