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유튜브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다. 한국에서 어렵게 살던 한 젊은 개발자가 해외 취업을 미끼로 불려간 곳은 다름 아닌 보이스 피싱 조직의 소굴이었다. 그는 무리한 요구와 마감 압박 속에서 일했고, 실행이 되지 않으면 폭행이 이어졌다. 가장 소름 돋았던 장면은 엘리베이터 안에서였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멍든 얼굴을 한 남자가 범인과 함께 탔는데, 순간 그 범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하는 것이었다. 마치 죄책감조차 없는 듯, 강아지를 발로 차는 사람처럼 무표정하게 말이다.
그 영상을 보며 생각했다. 인간에게 최소한의 브레이크는 무엇일까?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사람을 때리기 전에 “멈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그러나 폭력에 길들여진 이들에겐 그 브레이크가 고장 나 있다. 절제가 사라지면 폭력은 너무 쉽게, 너무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다.
돌아보면 나 역시 브레이크가 고장날 뻔한 순간들이 있었다. 이유 없는 손님의 욕설, 억지로 끼어드는 차량, 주차 자리 시비…. 그 순간 머리가 하얘지고 온몸이 뜨거워지며, “나도 똑같이 해주고 싶다”는 충동이 올라왔다. 누구에게나 화를 유발하는 상황은 많다. 중요한 건 분노 자체가 아니라, 그 분노를 어떻게 다루느냐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노력적 통제(effortful control)’라 부른다. 뇌의 전두엽이 편도체의 충동적 반응을 억제하며, 이 기능이 약할수록 분노가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진다. 연구에 따르면 분노조절장애 환자는 이 연결이 약해 항상 과도한 공격성으로 치닫는다. 반대로 명상이나 인지행동치료를 꾸준히 한 집단은 전두엽 기능이 회복되며, 분노 억제력이 향상된다는 결과가 보고됐다. 절제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훈련으로 길러진다는 것이다.
폭력에 길들여지는 과정도 비슷하다. 반복적 폭력 경험은 죄책감과 공감 능력을 무디게 만든다. 실제 연구에서 폭력 노출이 많은 집단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뇌 반응이 현저히 약화됐다. 조폭이나 전장 경험자들이 쉽게 폭력으로 반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역으로 경찰·군 훈련에서 폭력 사용과 동시에 자제 훈련을 병행했을 때, 실제 현장에서의 폭력 사용 빈도가 감소했다는 사례도 있다. 습관은 폭력을 길들일 수도, 절제를 길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사회적 차원에서도 브레이크의 상실은 치명적이다. 최근 한국 사회의 우발적 분노 범죄는 경제적 불안, 고립, 인간관계의 단절과 맞닿아 있다. 전문가들은 공감 교육, 사회 안전망, 분노 표출구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개인의 절제가 사회적 안전망과 연결될 때 비로소 사회 전체의 브레이크가 작동한다.
나는 다시 생각한다. 폭력은 훈련으로 길러지듯, 절제도 훈련으로 길러진다. 화가 치밀 때 숨을 고르고, 한 발 물러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나 자신이 무너지는 순간, 사회도 함께 위험해진다. 절제는 개인의 생존법이자, 사회를 지키는 최소한의 브레이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