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는 우주를 여행하며 명상에 잠깁니다.
그의 곁에는 네 권의 책이 놓여 있습니다. 『명상록』, 『오디세이아』, 『어린 왕자』, 그리고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이 책들은 인공지능들이 저마다 추천해 준, 세상에 남겨진 지혜의 책들입니다.
오늘 하루, 나는 죽음과 유한성이라는 오래된 화두를 다시 꺼내 들었다. 창밖으로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삶의 끝자락에 대한 상념이 불쑥 밀려왔다. 그때 서가에 꽂힌 『명상록』이 먼저 목소리를 내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끊임없이 강조한다. 인간의 삶은 한 점에 불과하고, 모든 것은 빠르게 흘러가며, 명성조차 망각 속에 사라진다고. 그러니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 속 한 과정일 뿐이다. 원소가 해체되듯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 그것은 악이 아니라 필연이다. "아주 잠시 후면, 너는 재가 되거나 해골이 될 것이다." 이 문장은 섬뜩하지만, 동시에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낼 힘을 준다. 결국 죽음을 의식한다는 것은 현재를 더욱 단단히 붙잡는 일이다.
그러나 오디세우스의 항해는 달랐다. 그의 길은 죽음의 위협으로 가득했다. 키클롭스의 동굴에서 동료가 산 채로 잡아먹히고, 마녀 키르케의 마법에 흔들리며, 죽은 자들의 나라에서는 아킬레우스의 망령을 만난다.
그 위대한 영웅은 이렇게 탄식한다. "죽은 자들의 왕으로 사느니, 차라리 땅 위의 이름 없는 농부로 살겠다." 이 절규는 유한한 삶 자체가 얼마나 귀중한지를 역설한다. 여신 칼립소가 영생을 약속하며 그를 붙잡아도, 그는 필멸의 운명이 기다리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길 선택한다. 오디세우스는 죽음을 거부하지 않았지만, 그 앞에서 더욱 격렬히 삶을 갈망했다.
어린 왕자는 죽음을 관계 속에서 사유한다. 지리학자에게서 "덧없음(ephemeral)"이란 곧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는 뜻임을 배우고, 홀로 두고 온 장미가 유한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그때 여우가 전한다.
“네 장미가 특별한 이유는 네가 그 장미에게 들인 시간 때문이다.”
수많은 장미 중 오직 하나를 소중하게 만드는 것은 시간과 애씀, 그리고 그 유한한 순간의 축적이다. 어린 왕자는 마침내 뱀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며, 조용히 쓰러지듯 별로 돌아간다. 그의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사랑하는 존재를 지키려는 또 하나의 여행이었다.
마지막으로 더글러스 애덤스의 우주가 문을 두드린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에서 지구는 단지 초공간 고속도로 건설 때문에 철거될 "하찮은 행성"일 뿐이다. 행성의 파괴는 관료적 안내 방송 몇 줄로 처리된다.
향유고래는 "나는 누구인가?"를 깨닫기도 전에 지면에 떨어져 죽고, 피튜니아 화분은 "오, 또야"라는 마지막 생각을 남긴다. 이 모든 장면은 우스꽝스럽다. 애덤스는 죽음조차 우주적 농담의 일부로 희화화한다. 책 표지의 문구처럼, "당황하지 마시오(Don’t Panic)". 죽음의 무게조차 웃음 속에서 가볍게 증발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비추는 또 하나의 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