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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선생님_박준


말 보다 술이 많았던 독대는 매일같이 이어졌다.
점심시간에 반주로 시작한 것이 저녁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고 눈이 오늘날에는 혜화동에서부터 성북동까지 걸어가 술을 마셨다.
저녁 약속이 있어 시간이 여의치 않은 날에는 지금은 철거된 혜화고가차도 밑의 공터, 전복이나 해삼을 썰어 파는 포장마차에서 각자 소주 한 병씩만 마신다는 약속을 하고 마셨다. 물론 약속을 어기는 때가 더 많았다.
선생님은 휴일에도 댁이 있던 사당역 근처로 나를 부르셨고 나 역시 약속이 없는 주말에는 “어제는 겨울이었는데 오늘은 봄입니다. 선생님 어떠신지요?” 하고 슬쩍 문자메시지를 넣는 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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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빈소에서 나는 어찌할 바 몰랐다. 유족들이나 문상객들의 눈에 고인의 손자뻘로 보일 어린 내가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밤을 새울 수고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서운하고 슬픈 마음을 두고 집으러 갈 수도 없었다.
생각 끝에 장례식장 로비에 머무르기로 했다.
다음날 새벽, 발인을 마치고 벽제로 이동할 때까지 나는 산울림의 <안녕>을 들었다.
오래전 사당동 막 횟집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무엇이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답을 했던 노래. “안녕 귀여운 내 친구야 멀리 뱃고동이 울리면 네가 울어주렴 아무도 모르게 잠든 밤에 혼자서”로 시작되는 노래. “안녕 내 작은 사랑아 멀리 별들이 빛나면 네가 얘기하렴 아무도 모르게 울면서 멀리멀리 갔다고”로 끝나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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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들을 때나 글을 볼 때 작가의 인생 속에 나와 닮은 부분들을 발견하면 이 사람 이런 부분도 있구나 하며 가볍게 넘기곤 했었다.
에둘러 넘기던 페이지들 쉽사리 정독하지 못하고 빙빙 도는 손끝에 걸린 몇 문장들이 나를 세웠다.
아련한 마음이 떠올랐다. 울컥한 마음이 생각났다.
어쩌면 나에게도 존재했을 아니 존재했던 소설가 김선생님.

영경아 걔가 좋아하는 노래가 산울림의 “안녕” 이야
나도 그 노래 떠올리니까 눈물이 나더라
이제 막 이 글을 적고 나니 그렇게 엄마가 말하셨다.

나를 다듬었던 그 시간들 그리고 노래들.

“안녕 귀여운 내 친구야 멀리 뱃고동이 울리면 네가 울어주렴 아무도 모르게 잠든 밤에 혼자서”로 시작되는 노래.
“안녕 내 작은 사랑아 멀리 별들이 빛나면 네가 얘기하렴 아무도 모르게 울면서 멀리멀리 갔다고”로 끝나는 노래.


장례식장 로비 그 새벽의 짧지 않았을 시간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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