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하 Aug 20. 2017

선택이 이루어지는 공간

영화 <더 테이블>


*본문은 주관적인 견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극의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관람하였습니다.



우리가 상상하던 카페의 하루. 조용한 카페에 마련된 테이블. 영화 <더 테이블>은 하루 동안 테이블을 거쳐간 사람들의 사연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한 네 가지 이야기다. 시사회의 무대인사에서 극 중 은희 역을 맡은 한예리가 말한다. 촬영은 일곱 번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영화가 이렇게도 만들어질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여러분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보통 카페에서 무엇을 하는가.

이 영화의 시발점은 지독한 관찰과 상상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고 짐작할 수 있는데, 카페에 들리는 구구절절한 사연이야 이루 말할 수 없어도 '카페에서의 만남’ 그 본질은 대화에 있다. 영화 자체의 이야기에 집중한 감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최소한의 공간을 이용하여 촬영한다. 무한한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영화에서 극히 제한된 공간과 앵글만 사용하는 것은 관객에게 지루함을 줄 수 있으나, 충만한 이야기로 극을 이끌어간다. 이 역발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우리가 몰입할 수 있는 요소가 스토리텔링이라는 사실.


오픈을 준비하는 시간, 테이블에는 꽃이 놓인다.



#오전 열 한시, 유진.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유진(정유미)은 연예인으로서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다. 어쩌다 모자란 전 남자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지 이유는 없지만, 그 테이블에 앉은 이유는 있었다. "이 테이블에만 꽃이 있어." 유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창석(정준원)은 유진을 함부로 대한다. 은근슬쩍 선을 넘으며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실례를 한다. 스타의 사생활, 돌고 있는 찌라시를 믿는 창석. 유진은 소문에 대하여 해명하지만 그는 이미 들을 생각이 없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대중들과 다를 바 없이 유진을 할퀸다. 불쾌하더라도 이 만남을 망치고 싶지 않은 유진은 소심하게 몇 번 대꾸할 뿐, 잠자코 있다. 전 여자 친구의 성공을 자랑하고 싶은 창석은 유진과 함께 사진을 찍고 넘치는 과시욕에 직장동료들까지 몰래 불러낸다.


벌써 가려고? 아쉽다.
.. 나도 그래.


에스프레소와 맥주.

둘의 연애가 어떻게 끝이 났을지 짐작이 가는 대화. 옛 애인과의 추억을 생각하며 약속 장소에 나왔을 유진은 실망을 잔뜩 머금고 돌아간다. 유진을 챙기는 듯 마음대로 칼자루를 휘두르는 창석은 변함없이 유진보다 위에 선 듯 행동한다. 에스프레소가 그 마음을 대변하지만 그보다 더 쓰라린 마음을 숨길 길이 없다. 둘의 아쉬움은 분명 다른 지점을 향하고 있다.



#오후 두 시 반, 경진.

표정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경진(정은채)의 떨떠름함. 여행을 다녀온 민호(전성우)는 들떠서 여행 이야기를 한다. 하룻밤의 사랑 후 곧장 떠나버린 민호가 경진은 야속하다. 두고 갔던 민호의 시계를 다시 건네주고 불편한 자리를 피하려는 경진을 붙잡는 민호. 그러나 주제를 벗어나 맴맴 도는 민호의 말은 그 밤에 대한 침묵과 다를 바 없다. "일기에는 나와요 제가?" 이렇듯 그는 짓궂다. 몇 번이나 도망치려는 경진을 붙잡아 먼저 꺼내 보이는 진심은 그런대로 훌륭하다.


마음 상했어요?


초코 무스케이크.

삐졌냐는 말이나 화났냐는 말은 늘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마음이 상했냐’는 대사는 치명타였다. 알고 보면 그토록 다정한 민호의 진심을 기다린 경진은 충분한 보상을 받는다. 사실 당신을 생각하며 샀다는 시계를 꺼내 매일 밥을 줘야 한다는 담백한 고백이 그녀에게 만족스러웠을까. 매번 당신이 떠올라 산 선물이 줄줄이 나오고 그 서툰 고백에 덧붙이는 변명마저 로맨틱하다. “재미없는 사람이라 포장은 못했어요.” 포장 없는 사랑처럼 진득한 진심으로.



#오후 다섯 시, 은희.

맵시가 단정한 여인 은희(한예리)가 중년의 여자와 앉았다. '저 아직 법적으로 처녀예요.' 익숙한 듯, 대화는 이미 몇 번이나 결혼을 시도한 티가 역력하다. 결혼사기를 중심으로 가짜 모녀가 된 은희와 숙자(김혜옥). 서로의 역할과 해야 할 일을 받아 적고 무미건조한 대화를 이어간다. 가진 것 없는 신랑과 결혼한다는 은희의 말을 듣고 숙자는 태도가 바뀐다. 숙자의 추궁에 “좋아서 하는 거예요, 아직까진.” 은희의 알듯 모를듯한 대사. 우연찮게 숙자의 죽은 딸이 결혼했던 날짜에 혼인하는 은희. 사기 전과로 감옥에 있을 때 결혼한 딸의 예식장에 입고 가려했던 옷을 입고 오겠다는 숙자의 말은 어딘가 진심이 묻어난다. 살짝 눈가를 훔치는 은희 역시도 그 마음에 감동한 듯 진심이 묻는다.


이렇게 살다 보면 솔직할 기회가 없잖아요.
허수아비들이 나아요.


두 잔의 라떼.

우유 향 짙게 내려진 두 잔의 커피는 거짓말로 덧입혀진 둘의 인생이 비슷하다는 걸 느끼게 한다. 어떤 형태의 동질감을 가져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을 주는데 그 무게가 미묘하다. 인스턴트 같은 삶의 이미지를 돌이킬 수 없듯 그들의 진심에는 의심이 고개를 반짝 든다. 숙자가 은희에서 자신의 딸을 떠올리는 듯 안쓰러워하는 모습이 연기는 아니었을까, 또한 은희 역시.



#저녁 아홉 시, 혜경.

비가 내리는 밤. 테이블에 있던 꽃잎을 찢어버린 운철(연우진)을 혜경(임수정)이 타박한다. “어차피 죽은 꽃이야.” 결혼을 앞두고 만난 운철과 만난 혜경. 결혼 생활을 잘 해낼 자신이 없는 혜경은 여자가 매달릴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운철에게 매달린다. 결혼 전까지 바람을 피자, 운철 씨가 잡으면 당장 돌아갈 수 있다, 오늘 밤 함께 있자는 등의. 갖은 말로 마음을 흔드는 혜경의 말을 쉼 없이 튕겨내다가 그는 딱 한 번 솔직해진다.


함께 자는 꿈을 꾸었어.
당신과 꿈속에서 걸었어.


식은 커피와 홍차.

이미 식어버린 찻잔과 죽은 꽃잎이 든 잔을 두고 둘은 멈춘 빗길에 선다. 다신 연락하는 일 없을 거야. 정리된 듯 담담한 혜경의 말에 운철과는 다시 씁쓸하게 웃으며 헤어진다. 당신을 먹여 살릴 자신이 없다던 운철은 혜경을 가만 지켜보다가 돌아선다. 사실 혜경이 바라던 건 어떻게든 자신과 함께 있어달라는 운철의 말이 아니었을까. 끝내 하지 않던 야속한 그에게 말하는 타임 오버가 서글프게.





카페 주인은 시종일관 책을 읽는다. 책의 제목은 <녹턴>, 밤의 분위기를 살린 야상곡이다. 한여름밤의 꿈처럼 이어지는 이야기는 큰 갈등 없이, 명확한 설명 없이 관객에게 온전히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그 분위기를 어렴풋이 책 한 권으로 집약한다. 또한 에피소드에 드러나는 감정선을 컵에 담긴 음료로 표현하는 감상. 어쩌면 뻔하지만 그 올드한 감상을 직접 시도할 용기가 남아있는 감독을 한국 영화에서 만나지 못했다.(꽤 슬픈 일이다.) 이렇듯 나는 소품으로부터 비롯된 이런 종류의 섬세함을 사랑한다. 길지 않은 러닝타임이지만 단조로운 앵글에서 관객이 지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디테일의 힘이라고 믿기에.



김종관 감독의 전작 <최악의 하루>에서도 한예리는 역시 ‘은희’라는 역을 맡았다. 스핀오프 느낌을 주고 싶었던 건지 두 작품을 모두 본 관객은 은희가 반갑다. 연출에 있어 일종의 실험작처럼 평가받는 <더 테이블>은 독립영화에서 시도될 법한 장르를 메이저 반열에 오른 감독이 시도하는 일종의 부채감을 준다. 이미 독립 상영관을 넘어 메이저 상영관을 넘보았던 전작의 성공이 있었지만 그는 비주류의 영화를 차기작으로 선보였다. 여기엔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 내가 착각하는 것만큼 아직 성공하지 못했거나, 실험작에 투자할만한 배급사가 한국에 남아있지 않거나, 감독이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멋쟁이 거나.


마이너스의 미학.


남자와 여자의 언어가 서로 다른 온도 차를 지니고 있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감독이 대사를 빌어 시도하는 부분은 그 보다 더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언어유희를 하기 위해 우린 아주 뛰어난 기본 베이스인 한글을 가지고 있고 십분 활용하는 점에 있어 문장 하나하나가 더할 나위 없다. 반면 세 번째와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도덕적 딜레마가 될만한 부분을 건드린다. 결혼사기나 불륜현장으로 단순하게 치부할 수 없는 그들의 대화는 아슬아슬한 선을 타고 넘나드는데 오지랖이라곤 전혀 없는 카페 주인은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지켜보는 우리 역시 함부로 돌을 던질 수 없다. 영화는 그렇게 흘러 끝을 맺는다. 따분한 설명이 없는 어느 정도의 답답함으로 하여금 좋은 비율의 커피를 마신 것처럼.



서로 다른 에피소드를 전부 모을 수 있는 유일한 공통사는 본심이다. 누구에게나 쉽게 들킬만한 것을 아닌척하든, 돌고 돌아 힘겹게 꺼내어 놓든, 의도치 않게 우연히 밝혀지든, 대놓고 보여도 끝끝내 모른 체 하든. 때로 숨기고 싶고 미처 알지 못할 때도 있는 완벽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진 본심을 홀로 가득 머금은 ‘테이블'이 진정한 주인공은 아니었을까 한다.


가끔 등장하는 너무나 어려운 영화에서 해석을 놓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관객의 시야를 끌어올리는 지점을 잘 파악한 그의 다음 영화는 어떤 것이 될까. 나는 진지한 성격인 탓에 위트 있는 대사에서 관객들과 함께 웃지 못하고 사이에서 홀로 무표정했으니, 그 뼈 있는 말들을 곱씹어야 소화할 만큼 나에게 참 아프게 다가왔다고 변명을 해 본다. 좋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테이블은 관객과 마주할 시간을 앞두고 있다.

테이블에 부디 꽃이 놓여있었으면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예견된 과거의 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