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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거 봤어
by 박하 Sep 09. 2017

109분의 시를 쓰다

영화 <시인의 사랑>


*본문은 주관적인 견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극의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하였습니다.


보통 시인의 이미지는 조용하고 남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그런 까닭에 생기는 편견이 사람을 얼마나 몰아붙일까. 시인 이전에 사람인 그는 퍽 선명하지 않다. 낙관이나 달관의 투가 많지 않고 온갖 장면에서 글을 건져 올리는 그에겐 애석하게도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다.



제주에서 사는 시인이 기껏 나갈 수 있는 건 시내의 장터 뿐. 삶의 범위가 이토록 작다니 한탄하면서도 매일 펜을 붙들고 삶을 적는다. 이루지 못한 성공, 아내에게 의존하는 돈벌이, 그 와중에 여가 시간을 두어 게임을 놓지 않으니 염려가 짚이는 곳이 이토록 많다.


글모임에 나가도 시원치 않다. 서로 칭찬해주기 바쁜 무리 속에서 위안을 얻나 싶다가 이내 제 속에 쓴 말을 뱉는 사람들. 문학적 고찰보단 함께 마시는 술친구 쯤 되어 보이니 작은 세계에 갇힌 양 답답하기만 하다. 시와 사랑에 빠졌다는 그는 드러내놓고 환경을 탓하지 않지만, 환경을 탓하는 듯 보이는데 그건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시인의 아내

볼 수록 놀라운 것은 시인의 아내였다. 자신밖에 모르는 시인이 라면을 자신의 것만 끓이거나 자신에게 분풀이를 할 때도 아내는 위트있게 상황을 헤쳐간다. 남편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줄 이가 자신 뿐이라는 확신이 놀랍도록 아내는 시인을 끔찍이 아낀다. 원하는 것은 사랑 뿐이었으나 사람이 간사하게 욕심이 생긴다며 꼭 아이를 갖고 싶다는 그녀. 그리고 시인은 없는 것들에 더하여 정자까지 없다.


적은 수의 정자를 가지고 인공수정까지 시도하는 아내는 내색을 않았어도 속이 곪는다. 끊었던 담배를 피우는 아내. 시인은 그런 아내가 무척 신경쓰인다. 어딘가 서늘한 마음이 드는 건 그것이 사랑인지 함께 살아온 정때문인지 정의 내릴 수 없는 분위기 탓이었을까. 학교의 방과 후 수업으로 시 쓰는 일을 가르치는 게 최소한의 책임은 아니었을런지.



어떻게 저런 사람이 시인의 아내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한 나 역시 어찌나 편견 덩어리였나. 중간중간 아내가 던지는 말들은 시인의 은유보다 직접적으로 폐부를 찌른다. 촌철살인과 다를 바 없는 그녀의 본심은 날카롭게 마음을 후빈다. 어디서 품위를 찾아.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날 선 말로.


어느 날 집 건너의 도넛 가게에서 아내가 느닷없이 사온 도넛은 시인에게 충격적인 맛(?)이었나 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게를 들리던 시인은 그 곳에서 일하는 소년을 만난다. 이후 가게를 작업실 삼아 종일 앉아 소년을 바라보니 시인은 자신의 감정이 낯설기만 하다.



저 사람도 고아구나.

창 밖에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보고 따라와 목도리를 단단히 둘러주는 아들의 모습이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시를 적던 시인은 소년의 말에 불현듯 놀라고 만다. 소년이 지칭하는 고아는 어떤 의미였는지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아니나 다를까 병환이 깊어 누워있는 아버지를 모시는 소년의 사정을 알게 된 시인. 자신이 버티던 삶이 생각나 본가를 찾아 어머니께 욕청매트를 찾는다.


시인이 마음을 쓰는 일이 잦아지면서 소년은 자격지심이 든다. 동정하는거냐며 소리를 질렀다가 아니라는 그의 말에 금세 사과하길 몇 번. 동정이 아닌 진심을 느끼곤 마음의 문을 열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소년에 삶에 시인은 점점 깊이 다가오고 있었다.




처절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냐.

아버지가 죽고 장례식장에서 시인에게 호상의 의미를 묻는 소년. 어떤 죽음도 좋은 일이 없는 법이라며 탄식하는 모습은 자못 현실적이다. 무려 사랑하는 사이의 의미로. 그 둘의 어떤 종류의 애정인지 정의하기 이전에 비인간적인 주변인의 태도는 불쾌하다. 어미가 맞나 싶을 정도로 슬픔이 없는 엄마의 말에 소년은 그래도 남아있던 피붙이의 애정을 달래다가 분노한다. 지금껏 감정의 동요를 그리 드러내지 않던 시인의 분노는 기껏해야 다툼을 말리는 말로 들릴 수 있지만 그 의미는 소년에게, 관객에게마저 느껴질 정도로 대단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소년과의 관계가 깊어진 것을 알게 된 아내는 소년을 만난다.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이 상황이 어이없지만 아내로서 해야 할 말들을 한다. 만나지 말아달라. 그러나 시인은 결국 짐을 싸서 나가려 하고 여태 강해보이던 아내는 무너지고 만다.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임신했다는 아내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떠나버리는 시인.


그러나 고작 그 정도의 마음이었던 것일까. 소년은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며 시인의 마음을 몰라준다. 자신과 같은 마음이라 생각했던 시인은 아내가 자길 붙잡았던 것처럼 처절해진다. 아이러니함 속에 결국 아내에게 돌아온 시인. 그는 곧 시집을 출간 하고 아이를 낳은 아내와 행복하게 산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듯.



세상에 홀로 남은 사람에게 있어 줄
단 한 사람이 있다면 망가지지 않아.


시간이 흘러 배달업체에서 일하는 소년을 다시 만난 시인. 소년이 아내를 만나던 날. 아이가 있다는 그녀의 말에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고백한다. 그 아이를 자기처럼 고아로 만들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돌봐 줄 아버지가 없는 채 자랄 지옥을 두고 볼 수 없었다며.


소년은 전에 그랬듯 농담삼아 말한다. 돈 줘요. 아무렇지 않게 주머니에서 통장을 꺼내 3천만원이라며 건네는 시인. 비밀번호는 아버님 기일이야. 넌 여길 벗어나 어디든 떠나. 가장 시적인 장면은 이 부분이 아니었을까 한다. 적지 않은 금액을 미련없이 주는 장면을 보며 관객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터져나온다. 아픈 마음을 빌어 쓴 책으로 번 돈을 소년의 것으로 돌려주는 시인에게, 너라도 이 섬을 벗어나라는 시인에게. 사랑은 그런 것이었으리라.


당신에게 비극이 필요했던 것이라 시인의 마음을 매도하는 아내라던가 산 속 깊은 곳 버려진 비닐봉지에 죽은 개가 들어있을 것이라는 상상에서 어떤 먹먹함이 드는 건 좋은 결말이 아니리라는 예감이 짙은 탓이다. 때문에 슬픔을 캐는 시인에게 슬픔이 없는 세상이 온다면 자신의 일이 사라지는 듯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라 자신의 일을 설명했던 건 아닐까.





영화의 연관검색어에 '시인의 사랑 퀴어'가 뜬다는 건 슬픈 일이다. 이 작품은 시인의 사랑이지 시인의 동성애가 아니다. 아직 멀고 먼 시대의 중심에서 강경하게 그의 사랑을 응원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는 시인을 알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그래서 '시인의 사랑'이라는 한 편의 걸쭉한 시를 제작한 시인, 김양희 감독을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작고 섬세한 장치들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감독은 분명 시인이다.


우리는 영화에서 오롯이 한 가지 질문만을 받는다. 사랑은 무엇인가. 인류의 수십세기 동안 여태 비슷하고 완전에 가까운 대답들이 나왔으나 완전하지 않은 대답에 결국 질문으로 돌아간다. 마음이 쓰이면 사랑인가. 책임이란 사랑인가. 벗어날 수 없는 삶의 반경, 섬으로 돌아간다. 안경을 벗은 이후 솔직해진 시인의 사랑처럼.


아픔이 값어치로 남는 것은 많지 않다. 답 없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건 역시 사랑이기 때문이라고.


다시 너와 나에게 묻는다.

우린 대체 어디서 부주의한 까닭에 사랑에 빠지고 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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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긴 생명력의 낭만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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