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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Jun 02. 2021

을의 세계

먹이를 옮기고 돈을 받는다


 궁지에 몰린 기분이었다. 수중엔 몇 푼 없는데 나갈 돈은 지치지도 않고 때마다 나를 찾았다. 월세, 식비, 생활에 필요한 각종 부대비용이 한 달간 쌓여 숫자로 더해졌다. 아니 비싼 옷을 잔뜩 사기를 했나 매일같이 술 마시기를 했나 애초에 내가 그리 많은 것을 원해왔던가, 돌이켜보아도 씀씀이가 헤프다거나 할 정도의 삶은 아니었다. 도리어 꽤 악착같이 살았다고 말할 자신도 있다. 돈이다. 그렇게 매일같이 입에 달고 살던 돈이 필요하다. 책을 내든 글을 쓰든 사진을 찍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유지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뤘지 않느냐 말하는 주변인들에게 '그러나 난 이만큼 가난뱅이요' 하며 꾸준히 신세 질 뻔뻔함, 그 변두리를 이루는 염치를 놓지 말아야 했다.


형, 나 배달이나 해볼까?


 친한 형의 가게. 마침 먹음직스럽게 구운 닭꼬치를 잘 포장해 기사님에게 건네는 형에게 물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리는 형에게 역시 그렇지 하며 대충 대꾸하다가 '아니, 그런 게 어디 있어.' 마음을 고쳐먹었다. 어디 세상에 만만한 것 있나. 일이란 게 모조리 만만치 않은데 왜 배달은 만만히 보고 마는 것이냐. 다행히 나는 남아도는 시간과 더불어 오토바이가 있었다.


 인간이 현대의 삶을 이룩하는 과정에 있어 난 배달이 역사 속에서 그 한몫 단단히 챙기고 있었으리라 자신할 수 있다. 이 나라 한국과 같이 배달을 하나의 문화로 돋보이게 일컫는 곳을 차치하더라도 인류에겐 결코 낯설지 않은 것이라고. 원시의 인류가 사냥감을 획득해 옮겨오는 과정, 아프면 약이라도 챙겨 환자에게 전달하는 게 배달이 아니면 무엇인가 생각하는 거다.


 그렇다면 반대로 어째서 배달은 우리가 느끼기에 참 만만한 일이 되었나. 길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오토바이의 횡포. 신호위반, 과속, 인도주행과 같은 여러 범법행위에서 비롯된 인식. 우리가 나이를 먹으며 오랜 시간 마주한 축적된 경험이 하나의 혐오로 완성되는 데 이견이 없다. 나 역시 숱하게 들었다. 젊은 날 배운 것 하나 없이 놀던 아이들은 저런 일을 하게 된다고. 난 놀진 않았다. 배운 것 하나 없는 부분은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나는 배달을 시작했다. 기초적인 안전교육을 받고, 개인 소유의 오토바이를 가져온 사람에게 들어주는 유상운송보험 약관을 읽고, 전용 프로그램을 휴대폰에 설치해 이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함께 교육장에 있는 사람은 말 그대로 남녀노소. 미성년이 아니고서 돈벌이에 나설 사람으로는 마땅한 제한이 없었다.


먹이를 옮기고 돈을 받는다.


 이 단순한 진리에 모두가 편승하여 배달이라는 세상의 참가자가 되었다. 속해 있는 동안 난 내가 전 세계를 유랑하며 마주친 사람보다 더 다양한 온갖 군상을 얕고 짧게 만날 수 있었다. 배달 대행사로부터도 을이고 식당으로부터도 을이고 손님으로부터도 을인 입장의, 더불어 배달원을 하찮게 여기는 세상 모든 시선으로부터도 을이 되는 을의 세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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