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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Jun 03. 2021

편리함은 누군가의 구질구질함으로부터 만들어진다

가끔의 귀찮음과 당장의 편리함이 맞물릴 때.


 시골 태생인 나는 배달음식을 먹는 게 소원이었다. 내가 살던 마을엔 배달은커녕 편의점도 없었다. 짜장면이라도 한 번 먹을라치면 과정은 이랬다. 먼저 자주 가는 짜장면 집에 전화를 걸고, 주인아주머니에게 내 소개를 한껏 하며 어느 동네의 누구임을 알리고, 마당에서 기르는 개의 안부까지 물으며 서로 하하호호 한바탕 웃다가 아주머니는 “그럼 뭘로 드릴까?”한다. 간신히 주문에 도달했으나 신속배달은 이미 물 건너갔다. 나는 가족이 먹을 짜장면과 짬뽕이나 볶음밥 같은 식사류부터 개수를 줄줄 읊은 뒤 마지막으로 탕수육까지 추가한다. 주문이 끝났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 잠자코 기다릴 시간이 없다. 아버지와 함께 외투를 챙겨 입고 음식을 받으러 가기 위해 차에 탄다. 시내는 10킬로미터가 훌쩍 넘었다. 당연히 배달이 되지 않는 동네였다.


 배달은 도시의 특권이다. 도시로 진학하여 첫 배달을 시켰을 때, 막상 음식을 들고 온 배달원을 보곤 ‘고도로 발달한 미래도시’적 특성으로만 치부했던 환상이 무참히 깨졌을 때. 그래도 빨간 우비는 참 아니지 않냐고 생각하며 내심 호텔 룸서비스 같은 면모를 기대한 심보가 후줄근해졌다. 그것도 익숙해져서 이젠 뭐든 곧잘 주문한다. 돈을 주면 집 문 앞까지 말도 하기 싫다면 ‘문 앞에 두고 가세요’ 적으면 확인 문자까지 정성스레 남겨주는 이 서비스가 푼돈 혹은 '배달 팁 무료!’ 따위의 문구로 공짜라니. 직접 요리하기 싫어하는 세상의 바쁜 현대인들이 어찌 마다할 수 있겠는가.



 한 친구는 배달이 영 어렵다며 앱 쓰는 법을 묻곤 했다. 그렇게 공부해놓고 아무래도 배달음식은 먹지를 못하겠다면서 관두고 그랬다. 가끔의 귀찮음과 당장의 편리함이 맞물릴 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누차 이야기했지만 “뭐든지 쉬운 세계가 내겐 어려운 거야.”라는 대꾸를 들었다. 아차 싶었다. 세상은 이미 편리함에 종속되어 회귀할 수 없게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과거 운동선수 최배달의 이름을 빌려 배달의 민족이라고 일컫던, 현대사회를 평하는 자조 섞인 우스개가 이제는 온오프라인을 점령한 공룡기업이 되었고 사람들은 배달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커피도 배달이 되냐는 놀라움이 엊그제 같은데 요즘은 삼겹살을 구워 재빠르게 집까지 배달하는 곳도 여럿이다. 편의점 물품마저 배달이 되는 시대라니 이젠 더 이상 가릴 것이 없다.


 한동안 배달음식을 먹지 않다가 서울에 와서 바쁘단 핑계로 다시 이것저것을 주문해먹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값비싸고 불균형한 식단에 매몰되어갈 즈음 현생이 위태로워졌고 결국 이렇게 배달일을 부업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넙죽넙죽 갖다 주는 대로 받을 줄만 알았지 가져다 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렴풋이 상상하던 배달의 세계는 유추하던 그 느낌보다도 훨씬 날 서있고 날것의 세계였다. 인간 문명 초기부터 이루어진 재화의 거래 가치가 그 무엇보다 ‘속도’에 치중된, 그야말로 시간의 값으로 환산된 세상이다. 배달물품이 시시각각 변하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신선한 먹이’를 위해 가려진 위험을 한사코 외면하는 게 아닐까. 분명 편리함은 누군가의 구질구질함으로부터 만들어진다. 통쾌하지도 유쾌하지도 않은 사실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며 목돈이 나갔고 때마침 이직을 하게 된 탓에 모아둔 돈을 야금야금 까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돈을 벌어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이런저런 사유로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곤란한 와중이었다.


 당장에 교육 신청을 했으나 답변은 보름이나 지나서야 도착했다. 도대체 뭘 하길래 이렇게 늦는 건지. 하루빨리 돈을 벌어야 하는 마음으로 괜히 회사에 불만이 일고, 답답함과 짜증으로 도착한 교육장소엔 온갖 이상한 차림의 사람뿐이었다. 그들은 배달원들이었다. 난 오토바이 헬멧을 벗은 배달원의 모습을 난생처음 보았다. 어디든 프로의 세계는 있는 법. 배달이라고 예외가 있을 리 없다. 차림이 풀어진 무방비의 배달원들은 땀에 절어있었고 머리가 제각기 짓눌렸으며 공간엔 구취와 체취가 뒤범벅이었다. 그들에겐 몸가짐을 정리할 시간조차 없어 보였다. 그러나 담배연기는 하염없이 피어올랐다.



 내가 지원한 곳은 알고 보니 다른 배달대행업체보다 웃돈을 준다는 소식이 돌아 경력이 오래된 전업 배달원까지 전부 몰렸다고 한다. 나는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위험하다며 만류한 주변 친구들의 말이 떠오르고 그때의 나는 왜 그리 멍청했는지 무슨 자신감에 부풀어 여기까지 온 걸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머뭇거리지 말아야지.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나는 여기 돈을 벌러 온 것이다. 꾸준히 나를 설득했다.


 진행자는 좁은 공간에 옹기종기 앉은 지원자들에게 꼬투리를 잡을 것이 없나 괜한 지적으로 입을 열었다. 회사의 이미지에 먹칠하지 말아야 한다는 예시를 줄줄 소개하면서. 내가 괜찮은 학생이었다면 진행자는 괜찮은 교육자라 할 수 있을까. 난 여기 앉은 사람들이 전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길쭉한 직사각형 테이블에 둘러앉은 모두와 한 번씩 눈이 마주쳤지만 진행자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자리에 앉은 지원자들의 생각만 메아리처럼 웅웅 울렸다.


이 사람들보다는 내가 조금 더 낫겠지.

상대방을 바라보는 눈빛과 비릿한 공기는 끔찍하게 속내를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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