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이다. 돈벌이. 그깟 돈벌이
배달은 대체로 수월했다. 길을 훤히 꿰고 있는 마포구 일대를 중심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주 고역인 것은 가게를 찾는 일이었다. 물론 꽁꽁 숨어있는 가게가 있기도 하지만 난 떡하니 드러난 가게를 코 앞에 두고도 못 찾는 일이 많았다. 새삼 한국엔 간판과 입간판, 온갖 네온사인으로 치장한 가게가 많다고 생각했다. 정말 아닌 게 아니라 겹겹이 쌓인 활자, 크고 작고 제각기 다른 폰트를 훑다 보면 아찔하다. 외국인이 그 휘황찬란한 거리와 배경을 놀라워하여 사진 한 장 남기는 건 예삿일이다. 가게는 많고 손님도 많고 배달도 많다. 난 길눈이 밝지만 가게를 못 찾아 늘 시간을 버린다.
배달은 건수로 돈을 계산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배달원들은 끼니마저 거르며 배달을 잡는다. 점심시간에 점심을 먹지 못하고 저녁시간에 저녁을 먹지 못한다는 말이다. 식사 때 주문이 가장 활발히 몰리고 최대한 많은 주문을 빠르게 쳐내야 하루 벌이가 판가름 난다. 그래서 시간은 중요하다. 주문 알림이 뜨면 배달원들은 가게와 고객의 거리를 확인하고 나의 현재 위치로부터 동선을 짠다. 대강의 조리 시간이 뜨고 효율적인 동선과 배달 우선 지역을 결정한다. 빠른 판단력과 실행력, 어마어마하게 머리를 써야 한다.
피크타임에 걸리는 식당 중에 꼭 그런 곳이 있다. 조리시간이 무척 오래 걸리는 식당 말이다. 그렇다고 가게가 크거나 사람이 많이 몰리는 것도 아닌데 시간을 전부 잡아먹는다. 최대한 빨리 해줘야 배달이 빨리 완료되고, 그로 인해 배달 하나라도 더 처리할 수 있는 배달원으로서는 최악의 식당이다. 나도 마음이 급해 몇 번 닦달을 하기도 했다. 따지지는 못하고 소심하게 “사장님, 얼마나 걸리려나요..?”하는 식이다. 그럼 중국집 전유물인 줄 알았던 대사가 반복된다. “다 나왔어요!” 그러나 나오지 않는다.
다 포기하고 오늘 벌이는 망했구나 하는 심정이 되어 요리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보면 이런 집이야말로 도리어 맛집이 아닌가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조리가 오래 걸리는 건 무슨 이유일까.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겠지.
그럼 왜 시간이 걸릴까.
만들어두지 않았으니까.
그럼 주문 즉시 만든다는 말이겠구나.
가장 정성스러운 식당인 셈이다. 주문한 손님이 배달 오래 걸린다고 화를 낼지언정 나는 나중에 외식을 하게 된다면 이런 식당이나 오게 되겠지. 이거야말로 진정한 맛집이잖아.
그런 집에게 몇 번 호되게 당하고서 좀 느긋하게 다닌다. 어차피 이제 만들기 시작했을 거 위험하게 달려보았자 무얼 하겠는가. 그래도 음식이 나오지 않았으면 넌지시 말을 건네기도 한다. 사장님도 참 정신없으시겠어요.
늦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런 가게에서 시작되는 배달은 늦게 된다. 난 고객으로부터 호되게 욕을 먹는다. 위험을 감수하여 더 빨라야 할는지 잠시 잠깐 욕을 먹고 마는지. 그러나 후자를 선택하더라도 내게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맛이 훌륭할지언정 기분은 별점으로 남아 가게에 해가 된다. 식당은 최선을 다하여 조리했고 나 역시 안전운행의 영역 안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고개를 숙여 할 수 있는 만큼 사죄하는 선택지 말고는 내게 없다. 배달이 늦어 죄송합니다. 변명으로 들리시겠지만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아직 길이 낯설어 그렇지만 다음엔 꼭 만족하시도록 배송하겠습니다. 일시적인 분노를 진화하는 방식엔 별다른 요행이 없다. 요컨대 맛집처럼, 준비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 마주하는 화에 대하여 그 즉시 인정하는 것.
다만 고객이 알아줬더라면 하는 야속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제가 봤습니다.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겠지만 미리 만들어 놓는 것 없이, 깨끗한 주방과 신선한 식재료로 주문 후 바로 만드는 맛집입니다. 때문에 늦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감히 어떤 배달원이 주제넘게 그리 말할 수 있겠는가.
명심해야 한다. 고객은 배가 고플 때가 되어서야 주문을 실행하고 조리부터 배달이 되기까지 굶주림을 견딘다. 배달지연에 대한 분노는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공복에게 던지는 분노라는 걸. 그 분노에게마저 나는 순순히 사죄해야 한다. 그렇지만 시늉이 진심이 되어선 안된다. 노력을 잘못으로 여기면 쉽게 무너지니까.
돈벌이다. 돈벌이.
그깟 돈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