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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Jun 20. 2022

아버지도 땡땡이가 치고 싶다

자식놈일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야기 #86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은 출근하기 싫은 날이 있다.

몸살기가 있어 따뜻한 이불 밖으로 나오기 싫다거나

전날 과음을 해 컨디션이 영 안 좋은 날이 그렇다.


오랜 세월 꾀 부리지 않고 열심히 샐러리맨으로 살아왔으니

하루이틀쯤 나한테 휴가를 좀 줘도 되지 않겠냐는 심리도 있다.

아이들처럼 한번씩 이유없이 땡땡이를 치고 싶어지는 거다.


그러다가 문득 우리 아버지를 떠올리곤 한다.

옆이나 뒤 한번 돌아보는 일 없이 평생 소처럼 우직하게 사셔서다.

지나가는 말로라도 아버지가 출근하기 싫다 얘기하는 걸 나는 들은 기억이 없다.


유행가 가사처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정말 한결 같으셨다.

잔업이나 특근 같은 걸 할 기회가 있으면 기를 쓰고 자청해서 하는 모습도 종종 봤다.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정말 소처럼 우직하게 사셨다.



그런 아버지와는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삶을 살고 있는 나를 돌아보며

아버지도 나처럼 가끔은 땡땡이 치고 싶은 날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아버지도 사람이고, 몸 아픈 날도 있었을 텐데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하지만 아버지여서 차마 그럴 수 없었던 날들이 대부분이었을 거란 판단이 든다.

생각은 굴뚝 같았을지 몰라도 한 집안의 기둥으로 불리웠던 아버지라서

서까래와 지붕이 무너질까 두려워 우직하게 버티고 서 계셨을 거다.


한번씩 땡땡이를 치고 싶단 생각에 침대 이불 속에서 바르작거리며 버티다가도

결국은 영차 몸을 일으켜 기어코 출근길에 오르고 마는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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