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접합니다
결혼을 하고 제일 신기한 점은 평소에 나 혼자 통제가능한 삶이였다면 절대 접하지 않았을 것들을 접하게 된다는 거다. 다르게 말하면 내 인생을 내가 통제하기 힘들다는 거고, 공동생활으로 시간이 쭉쭉 빠진다는 거다. 또 다르게 말하면 내 삶의 영역이 아주 넓어진다는 거다. 모든 일에는 장단이 있듯이 이건 되게 장단이 강하다.
어제 저녁에 남편과 육아교대를 하면서 조금 눈이 일찍 떠졌다. 조금 더 자고 바꿀까 싶다가 매번 나를 배려해 늦게 바꿔주는 남편이 생각나 일찍 거실에 나갔다. 그냥 맞교대였으면 바로 이불덮고 누웠을텐데, 남편은 아직 잠이 안온다며 티비를 더 보고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솔직히 조용히 방에 들어가주면 했다. 하지만 분명 서운할게 뻔해 그래 나도 같이 보자고 했다.
그는 간식이 먹고 싶다며 쭈쭈바 반을 뚝 짤라왔다. 매번 이런식이다. 본가에서 원가족은 꼭 함께 해야하는게 아니라면, 상대가 원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더 제안하지 않는다. 나는 먹을 의사도 없었는데, 어쩔 수 없이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혀에 닿자 잠이 확 깼다. 초코하임과 홈런볼도 가득 꺼내왔다. 출산으로 약간 더 붙은 몸무게를 좀 줄이려 어제 까페에서도 베이컨을 참고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만 마셨는데.. 약간 짜증이 났지만 새벽의 단 것은 참기 힘들었다. 평소라면 잘 꺼내먹을 일 없는 과자들이였다.
남편은 하이브 사옥이 나오는 놀면뭐하니?를 보고있었다. 평소라면 절대 보지 않았을 예능인데, 덕분에 하이브 사옥이 이렇게 크고, 구내식당이 이렇게 잘 나온다는걸 알게 되었다. 서울에서 이정도 사이즈에 이정도 건물이면 이게 다 얼마야.. 큰 회사에 근무해본적이 없어서 아주 큰 회사에 근무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났다. 나도 이런 좋은 복지들을 몇 년이라도 누려보고 싶었다. 방송에서는 기존 jyp와 yg도 사옥이 좋다고 떠들어댔다. 물론 나는 엔터테이먼트의 사옥을 한번도 궁금해본적조차 없다. 예능을 보고 있자니 연예인도 다 똑같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 다음에는 이것도 재밌었다며 국수장인편을 보여줬다. 자꾸 이이경의 멘트가 웃기다는데.. 나는 그가 좀 예의없어 보였다. 오히려 함께 나온 부승관이 참 사람 좋아보였다. 이렇게 혼자 수제 국수를 서울에서 만들어내는 분도 있구나. 몰랐던 세계라 신기했다. 같이 예능보면서 홈런볼을 먹는데, 홈런볼 상자가 기존에 내가 알던 상자와 달랐다. 친환경적으로 종이로 만들거라고 했다. 원래는 네모난 플라스틱 상자였는데 라운드 종이 상자가 훨씬 고급지고 예뻐보였다. 지금 여기서 같이 대화하지 않았다면 따로 먹지 않았을꺼고, 분명 패키지가 바뀐지도 몰랐을 거였다.
오늘도 덕분에 내 삶이 한 뼘 넓어졌구나. 엊그제는 지금까지 노력한 것에 비해 이룬게 없다는 생각에 살짝 우울했었다. 외모도, 직업도, 자산도, 커리어도.. 모든게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 중에 그를 보니 너무 애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신기하지,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렇게 애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다니. 하나도 애쓰지 않아도 잘만 살고 있는 그를 보면서 내 사고가 너무 편협했구나를 깨닫게 된다. 모두가 열심히 살라고 등떠미는 세상에서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니. 오늘도 내 생각이 한 뼘 더 넓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