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직후만 빼고 평생을 일했는데도 계속되는 사업 실패로 우리 부부에게는 대출이 많아도 너무 많이 남았다. 나는 출산과 육아 기간 동안 1년 남짓을 쉬었지만 남편은 쉬지 않고 평생 일한 셈이다. 그 많은 시간을 돈을 버는데 썼는데도 왜 갚을 것이 많은지, 이쯤 되면 대출은 우리 미래였다. 얼마를 갚아야 하는지를 계산하기보다는 그저 모시고 살아야 하는 짐 같은 걸로 여겨야 했다.
회사 일이 힘들어도 집에 오면 충전이 되었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끈끈하니까. 그럼에도 경제적 위기는 언제든 우리를 위태롭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우리를 흔들지 못하게 하려면 우리가 더 돈독해져야 했다. 같이 갈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위기일 수 있었다.
같이 살 수록 우리 둘은 음악, 음식, 영화, 운동 등 취향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 확연해졌다.
같이 가려면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야 하는데 취미는 왜 이렇게 돈과 시간을 많이 써야 하는지. 부부가 같이 할 수 있는 취미로 골프를 권하는 회사 동기가 있었다. 같이 해 볼 수 있는 것들을 나열하자면 여행, 캠핑, 낚시, 테니스, 배드민턴, 악기, 요리, 등산이 있는데 이것들을 같이 한다고 생각하니 아름다운 그림은 아니었다.
- 돈이 많이 드는 것(대출과 교육비 만으로도 벅차다.)
- 레슨을 별도로 받아야 하는 것(퇴근 후 레슨을 받아 취미로 즐기기까지 시간 투자가 많으면 아이들과 시간이 줄어들 수 있고, 그 단계에 오르기 전에 포기할 확률이 높다.)
- 부부 외의 멤버가 필요한 것(약속을 조율하고 회원들 기분을 맞추는 사회생활을 취미에서까지 하고 싶지 않다.)
우선 피해야 할 큰 세 가지를 정해놓고 판단해 보니 위에 나열한 것들은 하나같이 불합격이었다. 우리 부부가 평생 같이 할 취미 선택이 이렇게 힘들어서야.
사업 실패로 바닥을 칠 때마다, '그래도 같이 늙자.'라고 다짐하면서 서로 건강하기로 약속했었다. 정적인 운동을 하다가 잠이 들어버리는 남편은 동네 YMCA 헬스장에 시간이 날 때마다 가서 순간 스퍼트를 올리는 근력운동을 위주로 하고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나는 집 근처 학원에서 4년 가까이 발레를 배우고 있었다.
쇠 냄새 가득한 헬스장은 근처도 가기 싫어하는 나와 기구 없이 내 몸 하나에 의지해서 아름다운 선을 만들어 내는 것에 진저리 치는 남편은 이렇게 같이 가지는 않고 각자 가고 있었다. 그래, 이것도 어쨌거나 각자 길을 가는 거니까 같이 가는 건 맞겠지. 그러다 정말 그렇게 각자 가면 그 끝은 어떻게 되는 건지.
그러던 중, 지인이 티켓을 선물했다. 오픈과 동시에 완판 돼서 정말 구하기 힘든 거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2024 JTBC마라톤 2
대회-11월 3일까지 두 달하고 이틀이 남았다.
돈을 주고 달리는 티켓을 구하기가 힘들다? 대체 왜?
마라톤이 유행이라더니 그 유행이 결국 우리 집에도 도착했다. 이렇게 시작되었다, 부부의 러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