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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레 언니 Oct 26. 2024

러닝화_신데렐라는 없다.

긴 발가락은 언제나 말썽이구나

회사에서 나눠 준 운동화를 신고 달린 지 2주째, 공원을 달리며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내서인지 발에 통증이 생겼다. 발가락이 긴 편이라서 신발 안에서 이것들은 다른 발가락과 자리싸움 끝에 서로가 충돌한다, 그래서 조금 오래 걸었다 싶으면 발가락 측면에 물집이 잡히고 심하면 물집이 생기거나 상처가 나기도 한다. 발레에서 긴 발가락 덕분에 를르베 할 때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토슈즈를 신을 때는 나무로 만들어진 좁고 딱딱한 토박스 위에서 정말 곤혹이 아닐 수 없다. 물집방지 쿠션 테이프로 발가락마다 감싸거나, 실리콘 토스페이서를 발가락 사이에 넣어야 해서 발레 할 때도 긴 발가락은 늘 골칫덩어리였다. 


러닝에서도 역시나였다.

발레 센터워크에서 점프를 하다가 발가락이 꺾여 골절되기도 했었던 발가락들은 러닝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발가락이 또 말썽이구나, 그러려니 하고 다음 날 일어나 보니 발톱 두 개가 이미 가지색으로 멍들어있었다. 1km씩 연습한다고 놀려대던 사무실 후배는 러닝화를 신지 않아서 그렇다며 혀를 찼다.


운동은 장비가 먼저라는 주의인 후배의 말을 흘려듣다가 마라톤 코치의 글을 인터넷에서 읽고는 내가 무지했구나를 깨달았다. 러닝화도 없이 무작정 달리기를 했던 무지함으로 발가락이 고통받고 있었다. 러닝화에 대해 인터넷에서 찾아본 정보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발이 부었을 때, 오후 다섯 시쯤 구매한다.

-신발을 신고 발가락을 최대한 앞꿈치에 붙인 뒤 뒤꿈치에 검지 손가락 한 개가 들락날락할 정도의 사이즈가 달리기에 적합하다.

-평소 신는 운동화보다 5~10mm 큰 사이즈를 고른다.

-누적 거리가 500~800km를 넘으면 새 러닝화로 교체한다.


인터넷에서 읽은 마라톤 코치들의 조언대로 스포츠용품 매장을 가서 점원에게 러닝화 사이즈를 물으니 몇 킬로를 뛰는지 되물었다. 10km를 뛴다고 하자 5mm 정도 큰 사이즈를 권했다.


러닝화를 고르는 데 있어, 신데렐라 구두처럼 나에게 딱 맞는 신발을 찾기란 어렵다. 처음에는 평소 달리는 거리 또는 목표로 한 거리에 맞는 모델을 고르고 위에 나열한 대로 약간 큰 사이즈를 골라 먼저 신어봐야 한다. 달리기 연습한 지 2주가 돼서야 러닝화를 착장하고 달려보니, 쿠션감이 달랐다. 운동화 속에서 자리싸움을 하느라 충돌했던 발가락들이 편했고 무엇보다 사이즈가 넉넉하니 발톱이 신발에 닿지 않아 통증이 없었다. 운동 시작부터 장비를 갖추고 하는 편이 아니라서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지금이라도 맞는 신발을 찾아 다행이었다.


평소 사이즈보다 5mm 큰 사이즈를 골랐던 남편은 러닝 중 발이 부어서인지 그 영향이 무릎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서 10mm 큰 사이즈로 다시 주문해 선물했더니 이제 그 운동화로만 연습을 한다.


이제는 달리기를 하기 전에 발가락마다 밴드를 감고, 발목 보호대, 무릎 보호대를 착용한 후 러닝화를 신으며 주문을 왼다. 장비까지 갖췄으니 발가락들아, 이제 제발 버텨줘라.


*두 달을 신어보니 처음 산 러닝화는 나에게 맞지 않는 신발이었다. 왼쪽 발 아치 부분이 오른발에 비해 낮았는지 한 곳이 계속 물집이 잡혀 달리는 내내 불편했다. 명절에 방문했던 꽤 고가의 브랜드에 3D스캐너로 발 길이, 발볼(너비), 발 높이, 아치유형을 측정해서 개인에게 맞는 신발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곳이 있었는데 문전성시라 지나쳤었다. 기회가 되면, 지금 신고 있는 러닝화가 수명이 다하면, 그곳을 방문해 보려고 한다.


러닝화는 달리기의 가장 기본이다. 그 외 어떤 장비를 추가로 구입했는지 정산을 하자면 발가락에 감는 쿠션테이프와 실리콘 테이프, 발목과 무릎 보호대, 관절 테이핑용 테이프, 핸드폰을 넣는 암밴드가 있다. 날이 추워지면 손 끝이 시리니까 장갑이 필요할 거고 귀마개 그리고 비니와 같은 체온 조절용 모자가 필요할 것 같다. 러닝 장비는 처음부터 모든 걸 구비하는 것보다는 필요에 따라 추가하는 것이 좋다. 무릎 보호대가 혈액순환을 막는 것 같아서 테이핑용 스포츠테이프를 잔뜩 사두었는데 우리 부부 둘 다 켈로이드 피부인 걸 간과했다. 켈로이드 피부에게는 스포츠테이프를 붙였다 뗀 자국이 남아 사라질 때까지 흉터가 남고 엄청 간지럽다. 회복하는 데 1주일이 넘게 걸린다.  


암밴드 대신 스마트폰과 간단한 소지품을 보관할 수 있는 허리에 매는 러닝벨트, 헤드밴드, 예쁜 러닝복, 러닝양말 등등 갖추기 시작하면 끝이 없겠지만 지금 4년째 배우고 있는 발레에 비하면 정말 장비가 적게 드는 운동인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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