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달리기를 연습할 때 아파트 단지 내 공원을 연습장소로 잘못 고른 후 마음에 쏙 든 곳이 학교운동장이었다. 오늘 간 곳은 외벽에는 외부인 출입금지를 붙여 놓았지만 교문은 열려 있었다, 자세히 읽어보니 동절기에는 20:00까지 개방하는 것으로 쓰여 있었다. 대략 7시에 도착해서 5km를 뛰니까 그전에는 충분히 퇴거할 수 있는 시간이라 주 2~3회는 그 중학교 운동장에서 달렸다.
저녁 하늘이 예쁘다, 가을로 넘어가는 하늘은 도시가 만든 조명을 받아 구름이 하얀 꽃 같기도 했고 푸른색 조명이 쏘아 올린 밤공기는 터코이즈 빛이 났다. 최근 달렸던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운동장에 조명이 켜져 있었다. 외부인 출입금지라고 엄포를 놓았어도 운동장을 달릴 때 넘어지지 말라고 켜 놓은 것이라고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나니 학교 운동장 코스가 더 좋아졌다.
달리기를 한 지 한 달 정도 되자, 이제는 팟캐스트를 고집하지 않아도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쯤이면 1km는 뛰었을 시간인데, 왜 멘트가 안 나오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5km를 가볍게 뛰게 된 내가 기특하다.
장범준, 태연, 장국영, 우효
200곡이 넘는 플레이리스트를 랜덤으로 듣다 보면 6분 대 페이스로 5km를 완주한다. 빨리 걸어가면 발레수업에 늦지 않을 만큼의 시간을 계산해서 달리기한 후 스탠드에 던져 놓았던 짐을 챙겨 출구 쪽으로 나가는데, 맙소사, 교문이 닫혀 있었다.
'옆으로 밀면 열리겠지? 아까 손전등 들고 순찰 도시던 경비아저씨, 저 달리는 거 보셨죠? 보신 거 다 알거든요? 왜 이래요? 안 열리잖아요!'
지체하다가는 발레 수업에 늦을 시간이었다. 에티켓이 중요한 무용수업에 늦게 들어가면 선생님, 수강 회원들에게 민폐다. 바를 다시 꺼내야 한다든가 거울에 서로가 잘 보이도록 배열을 다시 맞춰야 하든가 하면 수업 흐름이 깨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분들의 시간을 지체하게 되니 닫힌 교문을 앞에 두고 서둘러 나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철문은 너무 무거웠고 자물쇠가 잠겨있었다. 조금 더 흔들다가는 경비업체 알람이 울릴 것 같아 할 수 없이 담장을 넘기로 했다. 말랐어도 발레와 달리기로 하체는 튼튼했고 울타리 꼭대기에 다리를 뻗어도 여유로울 만큼 유연했다. 팔이 후들거렸지만 철재 울타리를 잘 넘었고 담장 틈에 발을 잘 고정했다. 이제 점프만 남았다. 뛰어내리기만 하면 되는데 그 밑으로 지나가던 동네 주민이 소리를 꽥 지르셨다.
'어휴, 이거 뭐야. 깜짝이야.'
'어! 죄송해요. 문이 잠겨서 담 넘었어요. 놀라셨죠.'
'아, 운동하다가 그랬구나. 그래서 여기는 운동 못 해. 잠그더라고.'
아, 학교 담장을 넘은 선배님이셨구나.
러닝을 하다 보면 학교 담장을 넘을 수도 있는 거구나.
발레학원까지 빠른 걸음을 재촉했다.
서둘러 도착한 학원에서 재빠르게 겉옷을 벗어 안에 미리 입어 둔 발레복을 정돈한 후 스커트를 갖춰 입고 배열에 합류해 바워크를 시작했다.
학교 담장을 넘으면서, 초보 러너에게는 서른한 가지는 아니어도 그에 준하는 러닝코스가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