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열심히 최선을 다해도 하루종일 혼나기만 하던 회사 새내기 시절, 퇴근하는 차 안에서 조니미첼을 크게 틀어놓고 울면서 집으로 왔었다. 상사와 선배들이 퇴근하고 나면 빈 사무실에서 더 일을 하다가 불을 끄고 나와 차에 앉기까지는 표정에 아무 변화가 없다. 시동을 걸고 조니미첼이 노래하는 순간 시작된 눈물은 집에 도착할 때까지만 흐르다 멈춘다. 마치 여기까지가 정해진 일과인 것처럼 그렇게 1년을 출퇴근했었다. CD로 음악을 듣던 그때, 러브액츄얼리 OST 9번 트랙은 퇴근길 내 차에 필수품이었다.
이렇게 음악은 나를 공감해 주는 말 없는 친구와도 같았다.
맛집 도장 깨기라는 것이 있다. 나는 작가 도장 깨기를 하는 사람이다. 헤르만헤세 도장 깨기를 시작으로 1년 전에 시작한 독서습관인데, 무작위로 단편집을 읽다가 인상 깊었던 작가의 책을 모두 읽는 것이다. 박완서 선생님의 책은 권수가 많아서 아직 완성하지 못했지만 출판한 책이 많지 않은 작가들은 도장 깨기를 완성하고 있다. 책을 한 권 읽을 때마다 그 작가가 만들어낸 캐릭터와 서사로부터, 결국은 그 작가의 삶이겠지만, 긍정의 에너지를 얻는다. 아무리 저명하고 인기 있는 작가라도 '긍정의 에너지'를 얻지 못하면 나는 도장 깨기를 멈추고 다른 작가로 넘어간다.
조니미첼도 구하지 못한 내 고난의 회사를 잠시 쉴 때 동네 발레학원에 무작정 등록했었다. 뻣뻣하기가 마른 나뭇가지와도 같던 나는 발레리나가 준비한 음악과 함께 매트, 바, 센터워크를 해나가며 내 몸과 마음에 집중할 수 있었다. 지금은 일주일에 적어도 3회, 많을 때는 5회 수업을 듣는다. 학원에 수업이 없는 날이면 연습실을 대관해서 스스로 짠 순서로 바워크, 센터워크를 혼자 하기도 한다.
음악, 독서, 발레 이 세 가지 취미를 영유하면서 스스로의 만족도는 높았다. 아쉬운 점은 이걸 내 평생 친구인 남편과 공유하기는 힘들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본인이 있는 공간에 음악이(본인 취향이 아닌) 흐르는 것을 소음으로 여긴다. 사업으로 바빠진 생활 패턴과 쉴 새 없이 울리는 스마트폰은 그를 독서에 집중할 수 있게 돕지 않았다. 헬스장에서 쇠맛을 즐기는 남편에게 발레는 바라보기만 해도 고개를 젓게 만들 뿐이었다.
러닝을 하면서 남편이 매일 같이 하는 말이 있다, '너랑 같이 달리는 게 너무 좋아.'
나도 그렇다, 달라도 너무 다른 남편과 같이 빠져서 할 수 있는 취미가 있다는 것이 달리는 순간마다 좋다.
러닝 기록은 달린 후 자동으로 어플에 기록되지만 아이폰 캘린더에 그 기록을 숫자로 기록해 두다가 발견한 것이 있다. 내 캘린더에는 기념일뿐 아니라 발레 수업, 스케줄, 읽은 책을 색깔별로 다르게 표시해 두는데 러닝을 시작한 이후로 책을 단 한 권도 완독 하지 못한 것을 발견했다. 분명히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긴 했는데 그 노력에도 몇 챕터만 선택해서 읽거나 다 읽지 못하고 반납한 것이다. 최근 권여름 작가의 도장 깨기를 시작했는데 단편집 말고는 단 한 권도 깨지 못했다.
고작 10km 대회를 준비하며 독서량이 달라졌다니, 10km를 언더60에 들어온다면 하프 마라톤에 도전할 수도 있겠다는 목표를 세우려고 하려던 찰나에 위기였다. 러닝은 다른 취미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아 좋았는데 의외의 시간 괴물이었나. 아니면 힘들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몸이 힘들어서 내가 그냥 누워버렸던 건가.
취미를 시작하면 내가 늘 하던 것들이 침해받지 않아야 오래 할 수 있다. 다시 책을 빌리러 가야겠다. 달리기와 함께 가려면 이걸로 인해 다른 것을 못한다는 핑계를 원천 차단해야 하니까.
그래서 대여한 책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무라카미 하루키)
-오늘도 달리기를 합니다(러닝해영)
-지지 않는다는 말(김연수)
모두 달리는 책이다. 어쩔 수 없다, 난 빠져버렸다.
러닝으로 잃은 독서량을 러닝으로 채우리라.
(러닝으로 잃은 것은 독서량만이 아니다. 발톱 네 개가 벌써 빠지려고 한다. 일주일에 100km를 뛴다는 '션'이 발톱 여섯 개가 빠졌다는데, 달리기 7주 차가 네 개가 빠지면 어쩌라는 건지. 그래도 얻은 것이 더 값어치가 크니까 괜찮다, 남편과 친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