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히도 추운 날이다. 눈이 내리고 길이 꽝꽝 얼어붙었다. 2학기의 마지막 수업 시간에, 나는 배가 아프다고 화장실로 가는 척하면서 사실은 빵셔틀을 하러 학교 앞 빵집으로 가고 있었다. 맨발에 신은 실내화가 커서 발이 질질 끌렸다. 물론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난 양말이 있었고, 학기 초 내 자리에는 정 사이즈의 실내화가 있었다. 하지만 실내화는 울 반에서 제일 예쁘고 공부도 잘하지만 성격은 제일 쌍스러운 쌍둥이들이 매번 찢어버렸다. 또 오늘 아침에 신고 온 흰색 양말은 둘 중에 한 명이 ‘실수로’ 쏟은 ABC 주스에 핏빛으로 젖어버렸다. 쌍년들, 나는 아무도 안 들리게 읊조렸다. (내가 쌍둥이들에게 지어준 별명이다) 쌍둥이 그 애들이 교실의 최상위 포식자라면 나는 초식동물, 아니 풀떼기 정도였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신고 있는 실내화는? 우리 반의 또 다른 풀떼기인 ‘뙈지’가 건네준 거였다. 커다란 몸뚱이 때문에 늘 놀림을 당하는 그 애는 빵셔틀을 하러 가는 내가 맨발인 걸 보더니, 자기 실내화를 몰래 벗어주었다. 마음은 고마웠지만, 우리 반에서 몸무게 나가기로 1등인 그 애가 건네준 신발 사이즈는 260이었다. 난 225인데.
빵집에 들어가자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에 조금 살 것 같았다. 추위에 감각이 없던 발에 조금씩 피가 통하자 저릿저릿했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거대한 실내화를 끄는 소리가 덜거덕 거리며 매장 안에 울려 퍼졌다. 난 서둘러 쌍둥이들이 수업 끝나기 전까지 사 오라고 한 빵을 찾았다. 딸기 요거트 크림빵 그리고 딸기 크림 치즈롤이었다. 그런데 약속이나 한 것처럼, 두 빵이 있어야 할 매대가 텅 비어있었다. 어쩌지… 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식은땀이 나면서 입술이 벌벌 떨렸다. 이 빵이 없으면, 이 빵이 없으면… 학교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요즘 존나게 맛있다는 그 빵, 딸기가 잔뜩 박힌 그 빵을 사지 못했기에, 쌍년들은 번갈아 나를 두들겨 팰 것이다. 그것도 속옷을 벗기 전까지는 티가 나지 않는 곳 중심으로. 아침에 얻어맞은 가슴팍이 아려왔다. 나는 매장 구석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저기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내게, 점원이 말을 걸었다. 분명히, 매장에 앉아있으려면 빵을 사고 앉아라 따위의 소리를 늘어놓을 것 같았다. 내가 고개를 쳐들자,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저기… 너… 명신이… 맞지?”
빵집 유니폼을 입은 그 애는 나와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송민진이었다. 보이시한 목소리에 커트 머리를 한 민진이는 여중 아이들 사이에서 은근히 인기가 많았다. 말을 걸면 씩 웃기만 했는데, 그게 더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때 나는 친구가 많진 않았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빵셔틀은 아니었다. 민진이는 같이 일하던 다른 알바한테 가서 내 쪽을 보며 뭐라 얘기를 했다. 잠깐 자리를 비우겠다고 하는 것 같았다. 알바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진이는 나를 빵집 뒤편 주차장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우리가 친했나, 생각했지만 뭐가 됐든 별로 상관이 없었다.
민진이는 빨갛게 언 내 발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왜 이 겨울에 맨발이냐고 물어보겠지… 오랜만에 만난 동창에게 내가 빵셔틀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았다. 어떻게 얘기를 꾸며낼까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민진이는 의외로 자기 얘기를 수다스럽게 늘어놓았다. 학교는 작년에 자퇴하고, 제빵을 배우며 빵집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고 했다. 갑자기 우울증이 빡- 하고 와서 학교를 그만두게 됐어, 난 아닌 것 같은데 상담쌤은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한 게 영향이 있다고 하더라고… 난 내 코가 석자인 데다가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듣고만 있었다. 민진이는 얘기를 하는 내내 라이터를 만지작거렸다. 딱히 시선을 둘 곳이 없어서 민진이 손에 들린 라이터를 봤다.
“너… 담배 피워?” 내가 물었다.
“아, 피는 건 아니고, 끊는 중. 억지로 끊으려고 하면 더 안 좋대서, 그냥 라이터는 갖고 다녀.”
민진이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 미소를 보니 중학교 때 생각이 나서 나도 따라 웃었다가 다시 슬퍼졌다. 언제부터 난 왕따가 된 걸까, 왜 하필 내가 쌍둥이들의 빵셔틀이 된 걸까. 담임 선생님이 예뻐하고 공부도 전교 1, 2등을 다투는 쌍둥이들. 그리고 그 쌍둥이들의 지옥 아래 갇혀서 사는 나.
찰칵. 민진이가 라이터를 켰다. 불꽃이 길게 생겨났다. 불멍을 하다보니 문득 학기 초에 나와 아이들과 친하게 지냈던 생각이 났다. 내가 빵셔틀로 지목되기 전까지 그 애들은 친구였었다. 배신자들. 심지어 몇몇은 쌍둥이들에게 잘 보이려고 날 같이 놀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쌍둥이들에게 낙인이 찍힌 뒤 난 말할 수 없는 마법에라도 걸렸는지, 그 애들에게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찰칵. 다시 불꽃이 일었다. 아침을 차려놓고 새벽같이 일을 하러 간 엄마가 생각이 났다. 매일 새벽, 나가기 전에 엄마는 명신아 사랑해, 이렇게 말했다. 이런 내가 희망인 엄마가 불쌍했다.
찰칵. 다시 불꽃이 일었다. 그러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에서 쏟아진 눈물이 시야를 가려버렸다. 쌍둥이들한테 얻어맞을 때도 꾹 참고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었다.
그때 눈송이가 콧등으로 떨어졌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쌍둥이들이 더 열 받기 전에 돌아가자. 용서해줄지도 몰라.’
나는 민진이에게 들키기 전에 눈물을 서둘러 닦아냈다. 그리고 학교로 돌아가야겠다고 했다. 민진이는 계산대 뒤에 가더니, 가게 문을 열고 나가려는 나에게 봉투를 하나 건넸다.
“이거 내가 연습 중인 빵인데, 먹어보고 어떤지 알려줘.”
봉투를 열어봤다. 내심 기대했지만 딸기 요거트 빵은 없었다. 그래도 제빵을 배운다는 것이 정말인지, 소보로 빵, 크림빵, 바게트 빵 같은 빵들이 들어있었다. 이거라도 있어서 다행인가, 생각하며 밖으로 나섰다.
교실 문을 열자, 쌍둥이들은 나에게 실내화를 빌려준 착한 뙈지를 작정하고 괴롭히고 있었다. 날씬하고 예쁜 쌍둥이들이 뙈지의 배를 쿡쿡 찔렀고, 뙈지는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마치 다이어트에 성공한 예쁜 여자들이 자신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지방을 괴롭히는 것 같았다. 그 옆에 다른 아이들은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초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때 쌍둥이 중 한 명이 교실 문 앞에 서 있는 나를 알아차렸다.
“병신아~ 이제 왔냐? 존나 오래 걸렸네.”
“… 명신이야.”
“뭐래~ 이 병신이~~”
그리곤 내 손에서 봉투를 채 갔다. 봉투를 열더니 어김없이 욕을 시작했다.
“이거 존나 킹받네. 왜 사 오라는 건 안 사 오고 어디서 이런 거지 같은 걸 돈 주고 사 왔어… 꼭 지같이 못생긴 빵을…”
그러더니 고개를 푹 숙인 뙈지의 입에 빵들을 처넣기 시작했다. 그리곤 까르르 웃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이 라이터를 켠 것처럼,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적어도 보고도 못 본 체할 수 있는 교실의 어두운 형광등보다는 더 밝아진 느낌이었다. 난 쌍둥이들이 바닥에 버린 바게트 빵을 들고 미친년처럼 쌍둥이들에게 돌진했다.
“야아아아아~~~~! 이 쌍년들아!!!”
그리고 기다란 바게트 빵으로 쌍둥이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민진이가 만든 빵은 대단한 실패작인지 아주 딱딱했다. 쌍둥이들을 아무리 두들겨도 빵이 부러지지 않았다. 나의 갑작스러운 반항에 어리벙벙해있는 쌍둥이들과 그 보다 더 나쁜 방관자들을 뒤로한 채, 난 괴롭힘 당하고 있던 뙈지에게 실내화를 벗어 돌려주었다. 그리고는 가방을 챙겨 들고, 한 손에는 바닥에 짓이겨져 있던 크림빵을 주워 든 채, 이미 어두워진 밖으로 나왔다.
거센 눈발을 뚫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갔다. 잠시 멈춰서 학교 쪽을 돌아보자, 흰 눈밭에 내 발자국만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야자 시간이 시작되었는지 어두웠던 도서관 창문에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마치 춥지? 이곳은 따뜻해, 하며 들어오라고 유혹하는 마녀의 성 같았다. 거짓말이야, 난 운동장에 눈을 맞으며 서서 크림빵을 보란 듯이 우적우적 씹었다. 난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거야. 교문을 나서며 빵이 담겨있던 비닐을 쓰레기통에 구겨 버렸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빵셔틀 소녀는 죽었어. 그러자 드디어 마법이 풀린 것 같았다. 푸른 달빛 아래 하얀 눈송이들이 자유롭게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