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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Jun 15. 2024

좋은 곡을 만들기 위한 작곡의 구성 요소

최근 온라인 작곡 강의를 들으면서 좋은 곡을 만들기 위한 작곡의 구성 요소를 한번 생각해 보았다. 짜깁기 식으로 알고 있던 작곡에 필요한 지식들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정리할 필요를 느껴서 수강한 강의였다. 강의는 DAW 사용법과 믹싱, 마스터링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좋은'이라는 수식어를 앞에 붙이고 뒤에 무슨 단어를 놓든 방정식은 다 비슷한 것 같다. 좋은 음식을 만들거나 좋은 집을 짓거나 좋은 곡을 만드는 데 필요한 요소들은 무엇일까? 혹은 좋은 가족, 좋은 친구로 인정받거나 좋은 삶을 살기 위한 구성 요소도 그러할까?


건축가 안도 다다오처럼 독학으로 배우고 성공한 사람을 롤 모델로 삼아 자기 삶에 적용할 사람은 어쨌거나 이러한 구성 요소를 정리하고 각인할 필요가 있다.


당연히 내가 지금 제시하는 구성 요소들은 정답이 아니다. 다만 그간 내가 시행착오를 거쳐 오며 깨달았던 것이고, 현재 내 위치와 단계에서 느끼는 정답일 뿐이다. 내가 더 발전하고 성장한다면 구성 요소나 순서가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1. 좋은 멜로디


좋은 멜로디는 소설이나 에세이의 이야기 흐름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자기를 드러내려고 애쓰기보다 자연스러운 흐름이 중요하다. 언어가 아닌 음으로도 우리는 상대에게 말을 걸고, 뭔가를 호소할 수 있기 때문에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음을 적절히 사용하고 그 음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물론 음악에는 빠르고 단순하게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콜라 같은 멜로디도 존재한다. 그런 멜로디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깊은 감수성을 추구하는 작곡가라면 여기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2. 어떤 리듬을 부여할 것인가


'쿵짝쿵짝'과 '쿵짜작쿵짝', '쿵짝짝쿵짝짝'은 각각 다른 느낌을 부여한다. 작가마다 다른 문체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짧고 힘 있는 문장을 선호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유려하고 섬세한 문장을 선호하는 작가도 있다. 연인과 이별 후에 혼자 하는 식사 장면을 두고 '딱 한 숟가락 뜨고 경멸하듯이 식탁을 바라보고는 이내 정나미 떨어지는 그놈 같은 숟가락을 벌레처럼 떨궈 버린다.'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고, '밥그릇과 입 사이가 마치 서울과 부산 거리라도 되는 양 슬로비디오로 가져가더니 밥알을 세듯 우걱우걱, 꾸역꾸역 한없이 씹어 돌린다. 밥알들 하나하나가 역겨운 악취를 풍기는 듯하다. 나의 이별을 축하라도 하는 것인가'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다.


화음도 물론 그렇지만 리듬은 멜로디에 우선적으로 구조와 분위기를 부여한다. 건축물의 뼈대라 할 수 있다.



3. 화음


화음은 그림으로 말하면 채색이다. 색을 입히는 것이다. 스케치만으로는 아무래도 건조한 그림이 되듯이 화음이 없이 멜로디로만 구성된 음악은 건조하고 앙상하다. 화음은 멜로디를 떠받들고 함께 조화를 이루는 지원군이자 친구다. 어울리는 색의 조합처럼 화음도 진행이 중요하다. 너무 뻔하게 어울리게만 흐르는 화음은 재미없고, 너무 엉뚱한 화음의 진행은 낯설어서 적응이 어렵다. 모든 것이 그렇듯 적당한 익숙함 속에서 약간의 낯섦이 좋다. 안정감과 함게 긴장감과 설렘을 부여한다. 파격적인 이질감으로도 대중을 휘어잡을 수 있는 천재가 아니라면 이 법칙은 대체로 유용하다.



4. 영감


흔히들 오해하고 있는 이 '영감님'은 불쑥 찾아오거나 수없이 악보를 찢는 와중에 불현듯 떠오르는 그런 게 아닌 것 같다. 훌륭한 작가나 작곡가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 창의적인 영감은 수많은 다른 작품의 카피와 연습 중에 자연스럽게 오는 것 같다. 카피와 연습만으로는 부족하고 영화, 문학, 미술, 여행,  몸을 움직이는 것, 새로운 사람과의 교류 등도 역시 필요하다. 예술은 일단 무료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려고 예술을 하고 예술이 필요한 것 아닌가. 표면적으로 무료한 우리 삶에서 무료하지 않고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려고 말이다. 그러니 영감님이 안 오신다고 한탄하는 건 초보자의 행보다. 자신의 삶에 마음을 열고,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해 나가면 된다. 그러면 산책 중이든, 화장실에서든, 피아노 연습 중이든 영감님이 오실 것이다.



5. 음향


이 음향에 해당하는 영역이 작곡의 마지막 단계인 믹싱과 마스터링이다. 물론 이미 기반을 잡은 작곡가는 이 단계를 전문가에게 맡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맡기더라도 자기가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요구를 할 수 있다. 트로트와 가곡과 발라드와 댄스 곡의 사운드 질감이 같을 수 없다. 클럽 댄스 타임에 나와야 할 곡의 킥드럼이나 베이스의 사운드 질감이 깡통 두드리는 느낌이 나서야 되겠는가. 심장이 벌렁벌렁할 정도로 육중하고 묵직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너무 먹먹하거나 붕붕거리는 싸구려 행사장의 소리여서도 곤란하다.


아직 안정된 수익이 없는 작곡가 지망생이나 초보 작곡가는 데모를 보내기 전의 이런 단계에 계속 쌩돈을 투자할 수 없으므로 결국 본인이 믹싱과 마스터링을 어느 정도 그럴듯하게 해내야 한다. 믹싱은 말 그대로 섞는 것인데, 드럼의 각 파트별 소리(킥, 스네어, 하이햇, 심벌)와 베이스, 건반, 기타 소리를 제각기 다듬은 후에 다시 그것들이 합쳐졌을 때 어울리게끔 재차 손을 봐야 한다. 악기들의 음역대가 겹치면 좋지 않은 소리가 나기도 하고, 미세하게 튀는 소리가 전체 음악을 망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화장에 비유하면 메이크업을 하기 전에 피부 톤을 좋게 하는 등의 기초화장쯤 되겠다. 마스터링은 이렇게 완성된 믹싱 위에 최종적으로 하는 메이크업이다. 색채와 분위기를 입힌다.


이전에 실내체육관에서 한 나훈아 공연을 본 적이 있다. 나훈아 님은 아주 열정적으로 공연을 하셨지만, 그곳은 공연장이 아니라 체육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라 쇠로 된 구조물이었다. 반사되는 소리들이 날카롭게 찢어지고 튀어서 음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귀에 거슬리고 피곤한 느낌만 많이 받았다. 한참 전에 본 조용필 공연은 야외무대였는데, 그곳도 공연장은 아니었지만 차라리 야외라 최대의 적인 반사판이 없었고, 조용필은 자신이 관리하는 최고의 음향 장비를 직접 가져와서 공연을 했기 때문에 사운드가 굉장히 탄탄한 느낌을 받았다. 어떤 공간 안에서 우리가 소리를 들을 때는 직접음과 반사음을 함께 듣게 되는데, 음악 청취를 위한 반사판으로서 건축 재질 중 유리가 최악이고, 그다음이 쇠 같다. 흡수를 잘하는 목재도 무조건 좋은 건 아니고, 콘크리트와 적당히 섞일 때 좋은 음향 환경을 만들어 내는 듯하다. 이렇듯 음향은 음악을 망가트릴 수도 빛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가수들이 음향에 민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작곡가 역시 음향을 무시할 수 없는 게 음악이 최종적으로 음향의 형태로 대중의 귀에 가닿기 때문이다.



6. 자신감


작곡가 뿐만 아니라 창작자(요리사든 소설가든 건축가든 화가든)에게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내 이야기를 누가 들어줄 것인가 하는 두려움보다 나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늘 앞서는 게 좋다. 그 이야기를 묵힐 수는 있지만 묻어버리려 하는 것은 예술가의 태도로 적합하지 않다. 대중은 언제나 변하기 때문에 대중의 반응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내 이야기를 세상에 분명히 전해야겠다는 믿음이 있다면 현재 실력과 기술이 부족하더라도 계속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직접 하는 것만큼 많이 배우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나의 존재와 나의 작품이 누군가에게 스팸메일 같을 수 있다. 그렇다고 훌륭하고 완벽한 작품만을 쓰겠다고 고집한다면 아마 평생 쓰지 못할 것이다. 완벽의 기준은 언제나 주관적이고 나와 언론과 인터넷과 대중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모두 주관적이다. 객관적으로 완벽하고 훌륭한 작품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7. 지속


시작보다 지속이 중요하다. 모든 일이 그렇다. 내가 절실히 느끼고 있고, 40대 중반까지 실천하지 못했던 덕목이다. 이것은 엄밀히 말해서 끈기라기보다는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존중이자 사랑이다. 마치 결혼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이 뜨겁고 열정적인 사랑이거나 강력한 의지가 아니라 상대에 대한 고마움과 측은지심과 동료애인 것과 비슷하다. 부족한 나와 이렇게 오랜 세월을 같이 살아준 게 고마운 것이다. '부족한 내가 계속 음악 안에 머물 수 있을까? 스킬이 뛰어나지도, 이론이 박식하지도, 감성이 탁월하지도 않은데?' 내가 음악을 버리지 않으면 음악은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신을 버리지 않으면 신이 나를 버리는 일은 없듯이. 나를 한탄하지 말고, 음악 시장을 원망하지 말고, 할 일을 하고 갈 길을 가자.




어찌 보면 항상 뭔가 부족하기 때문에 더 좋은 곡을 만들고 싶은 욕구 속에서 하루하루를 사는 게 아닐까. 좋은 건축물이 안락을 제공하고, 좋은 음식이 기분을 좋게 하듯 좋은 예술 작품도 가치가 있다. 하지만 나 같은 범인(凡人)은 너무 작품에만 몰두하는 것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삶 자체도 예술 작품이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을 위해 나의 건강을 해치고, 내 삶을 망친다면 작은 예술 작품을 위해 삶이라는 큰 작품을 망치는 꼴이 아닌가. 예술 작품은 죽음을 이기지만 작가는 그렇지 못하다. 아름다운 작품만큼 아름다운 삶을 살다 가는 것이 좋지 않은가.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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