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간 감정들

이너피스

by 서내

머리가 어지럽고 복잡해지는 날이 있다.

괜한 짜증이 늘어나 가족들을 힘들게 한다.

나도 모르게 치솟아오는 신경 쓰이는 일들과 찌릿찌릿한 두통은 내 마음속,

저 심해 깊은 곳에서 일어난 작은 기포들을 시작으로 작은 물방울이 일렁이더니 뇌 속까지 침범해 휘몰아친다.


30대 초반까지는 직장인 친구들이 참 부러웠다.

월마다 따박따박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이.

일의 성과나 주의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는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매 달 들어와 꽂히는 안정적인 수입이 있다는 것이 말이다.


학원의 경우, 수강생에 따라 매달 들어오는 수입이 다를 수 있다.

반면, 정기적으로 나가는 금액은 또 일정하다.


고정적인 수입이 없다는 것이 어린 시절의 나는, 참으로 불안했다.


어느 날은

- 내가 노예지, 건물주에게 돈 바치는 노예

- 지주에게 상납하는 소작농이 된 기분이야

- 내가 그동안 건물주에게 바친 돈이 얼마야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문득 '나도 건물이 갖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아니야, 이 건물은 하자가 너무 많아'라며 내 알량한 자존감을 채우기도 했다.


지금은 각자의 상황을 인정하는 법을 배웠다.

고정수입이 있어도 그들만의 불만이 있고,

고정수업이 없더라도 나만의 행복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아이들과 만나 수업하는 것은 정말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수업만 진행하면 문제 되지 않겠지만,

부모님 상담이 있는 날이나 교육청 점검 등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예민해진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면, 학원 스케줄 짜는 것은 필요 이상의 피로감을 선사한다.

요즘은 대부분 학원들이 단과로 운영되고 있어서,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예체능 등 학원 스케줄이 겹치면 수업이 어렵다.


상황에 따라 다른 학원을 포기하고

우리 학원에 등원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예전에는 학생이 수업을 중단하면 참 마음이 좋지 않았다.

자책하게 되고, 소심하게 신경 쓰이고, 자꾸 이유를 곱씹게 되는.

특히나 예뻐하던 학생이 이유 없이 나가게 되면 배신감과 내 마음의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후로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학생들을 믿지 않는다.

아니 마음을 잘 열지 말아야지가 더 맞는 표현일 듯싶다.

나를 보호하기 위한 나름의 방어기제였다고나 할까?


어느 정도 선을 지키며 정을 주지 않으려 애쓰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참 쉽지 않다.

나도 모르게 학생에게 빠져 홀라당 내 모든 정성과 정을 쏟아붓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수업을 열심히 듣고, 호응하며 수업 태도가 좋은 아이들을 어찌 예뻐하지 않을 수 있으리라..


- 아니야. 정을 주면 안 돼. 언제 또 나갈지 몰라.

했던 어리숙하던 마음.


세상살이라는 것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인데

아직 어렸던 20대의 나는 사회 경험이 부족한 탓에 '나'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중심이니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야 하는데 내 예상 밖의 상황들이 생기니 쉽게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는 어느덧 학원 수업을 중단하더라도 응원해 줄 수 있는 짬이 되었다.


다른 곳 가서도 열심히 하길,

수능까지 좋은 성과 거두길,

혹시나 모르는 것이 있으면 연락해서 물어보길

문자 한 통으로 아이에게 나의 진심을 전한다.


진심으로 나를 믿고 학원에 와 준 인연에 감사하고, 아이의 앞날을 응원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웃으면서 이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학원에서도 많은 인연들을 만나고 보내고 다시 만나고를 반복한다.


그래서 지금은 있을 때 세상 쿨하게 잘해주고,

보낼 때는 세상 쿨하게 보내 줄 수 있는 그런 '나'가 되었다. (좀 멋있네?)


쿨한 척했지만, 사실 갑자기 원생이 나가면 아직도 마음 한 구석이 아리긴 하다.




옛 선인들이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이 있으면 만남이 있다는 그 말을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었다.

이 진리를 깨닫고는 유레카처럼 세상 이치를 터득한 내가 성인이 된 듯 기뻐하던 날이 떠오른다.



아직은 미성숙한 어른이라 더 배워나갈 것이 많다.




브런치가 마치 나에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은 소통 창구가 되는 것 같다.



내 앞 날과, 나와 인연 있는 분들의 행복한 앞 날을 축복한다.

물론, 이 글을 읽어주신 인연이 되어 주신 분들께도 행복한 일들이 가득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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