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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세연 Jul 15. 2021

뜻밖의 안식 휴가에 대처하는 5년차 직장인의 태도

[휴직일기 프롤로그] 당신에게 갑자기 1달의 안식 휴가가 주어진다면?

‘안식휴가’에 대해 물론 들어본 적은 있었다. 트렌드에 민첩하게 반응하는 IT회사 또는 교수님 같은 전문 직종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장시간의 휴가. 어디는 3년을 일하면 1달을 쉴 수 있다고도 했고, 10년을 일하면 1년을 쉴 수 있다고도 했다.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내게는 그저 남의 이야기라 그리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누가 집을 샀대, 걔는 승진을 했대,’처럼 멀고 아득하게 느껴지는 좋은 일일 뿐이었다. 애초에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기회라 구체적으로 부러워할 수도 없었다. 추운 겨울 나라의 펭귄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그리워할 수 없듯, 나에게는 긴 휴가를 상상할 수 있는 상상력 조차 결여되어 있었다. 5년 전만 해도 여름방학이다, 겨울방학이다 1~2달은 가볍게 쉬어 왔던 것 같은데, 그놈의 밥벌이가 뭔지 어느새 방학 없는 삶에 나는 완벽 적응을 해버린 것이다.   


물론 휴가가 없는 건 아니었다. 친구들과 슬쩍 비교해보면 평균의 기업들보다 외려 많은 편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연속성이었다. 나는 내 휴가를 영혼까지 끌어 모아 붙여다가 1달을 쉴 수 있는 깡이 없었다. 어디 이게 내 깡만의 문제랴. 사람은 본디 무리 지어 사는 동물이고, 나는 무리의 구성원으로 살아남기 위해 ‘분위기’를 몸과 마음으로 읽는 습관을 들여왔다. 제아무리 MZ세대여도 분위기를 온몸으로 들이받는 건 무리의 구성원으로서 썩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한 달 쉬면 안 된다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나는 그냥 그걸 알았다. 아, 안되는구나. 짧으면 주말 간, 때로는 큰 맘먹고 1주간 감질나게 휴가를 다니며 나는 직장인의 휴식 사이클에 점차 적응하고 있었다. ‘이제 내게 방학은 없구나. 아마 내가 아이를 낳거나 크게 아프지 않은 이상 이 사이클에서 벗어날 일은 없겠지?’ 생각하며.


그리고 어느 날, 회사에 안식월이 생겼다. 5년을 일하면 1달을 쉴 수 있는 제도였다. 보수적 이미지의 업계라 이런 복지는 상상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기쁘게도 내가 틀린 것이다. 무려 업계 최초의 안식월 도입이었다. 큰 틀에서는 구성원들의 휴식권 보장을 위해서, 아마 내부적인 계산으로는 구성원들의 연차 소진을 장려하기 위해서. (추측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마침 5년을 꽉꽉 채운 상태의 직장인이었던 나는 갑자기 찾아온 행운을 믿을 수 없어 밥을 먹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문득 생각에 잠겼다. 안식월 때 도대체 뭐하지?
스물셋, 만으로는 스물둘에 회사에 처음 입사했다. 만 나이를 굳이 붙인 건 짐작하는 의도가 맞다. 내가 사회생활을 얼마나 빨리 시작했는지 강조하고 싶어서다. 신속하게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리를 잡는 게 목표였던 나는 여유를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휴학은 내 사전에 없었고, 관심 있는 것보다는 취직에 도움이 되는 동아리에 가입했다.


역설적이게도 취직을 그토록 갈망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놀고 싶어서’였다. ‘돈을 아주아주 많이 벌겠다, 회사의 경영진으로 성장하겠다.’와 같은 원대한 포부는 없었다. 나는 그저 미래를 걱정할 필요 없는 단단한 신분의 회사원으로써 ‘돈 걱정 없는 해외여행’ 이 하고 싶었다. 학생 때 훌쩍 떠나버리기에 난 미래에 대한 걱정이 큰 겁쟁이였고, 경비를 충당할 수입도 없었다. 하지만 대학 친구와 떠난 3박 4일간의 가난한 홍콩 여행, 잠시 맛본 교환학생 시절의 유럽 등의 달콤했던 찰나의 기억은 내 머릿속에 선명했기에, 고통스러운 취업준비 과정 내내 ‘돈 벌면 여행하는데 다 쓰고 말 테다’라는 맹세를 되뇌었다.


입사 후, 드디어 회사라는 단단한 안전망과 고정 수입을 얻은 나는 굳은 맹세를 잊지 않고 틈만 나면 비행기를 탔다. 신입 주제에 1년에 4번 이상 여행을 간다고 휴가를 쓰는 나를 보며 사수는 ‘혹시 꿈이 세계일주니?’ 물었다. 그 질문 덕에 오히려 명확해졌다. 나는 정말 여행이 좋았다. 새로운 것을 먹고, 낯선 것을 보고, 내가 몰랐던 나 자신을 만나는 그 모든 과정을 사랑했다. 그런 내게 드디어 제대로 놀아볼 수 있는 ‘안식월’이라는 판이 깔린 것이다.


하던 짓도 멍석 깔면 못한다는 말을 여기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멍석이 깔렸는데, 5년 만에 처음으로 무려 회사가 날 위해 판을 깔아주었는데, 웬걸 시국이 날 도와주지 않았다. 전염병으로 인해 하늘길이 딱 막혀 버린 것이다. 이 상황만 아니었더라면 한 달의 휴가를 받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남미로 떠났을 거다. 남미는 언제나 마음 한편에 있던 목적지였으니까. 3일 이상의 연휴가 돌아올 때마다 고민을 했다. ‘연휴 끼고 최대한 붙이면 10일 정도 나올 텐데. 남미, 갈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빠듯하다는 답만 나오고, 결국 혼자만의 결론을 내렸다. ‘신혼여행을 남미로 가야겠다.’ 설마 결혼하면 10일보다 더 쉴 수 있겠지?


이 엉뚱한 고민도 모두 과거의 일. 남미는커녕 내가 갈 수 있는 외국은 한 군데도 없었다. 절호의 기회가 왔는데 그토록 사랑하던 해외여행을 할 수 없다니 통탄할 일이었다. 하지만 슬퍼만 하기에는 이 기회가 너무나도 귀중했다. 정신 승리 모드로 돌변해 상황을 재 해석하기 시작했다. 요새는 국내도 좋은 곳 많다던데? 새로운 곳을 발견할 수 없다면, 우리나라를 재 발견해보는 거야! (잠깐 눈물 좀 닦고) 반강제적으로 국내로 목적지를 제한한 후, 어떤 여행을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학교 1학년 때 갔던 국토 대장정처럼 무진장 걸어볼까? 가보고 싶었던 도시들을 모조리 다녀볼까? 아니면 어딘가에 콕 박혀 한 달 살기?


마지막 선택지는 떠올리면서도 나와는 썩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욕심이 아주 그득한 여행자였기 때문이다. 어디로 향하든 내 여행에는 늘 일관된 목표가 있었다. ‘한정된 시간 안에 최고의 것을 경험할 것.’ 평소에는 안 그러면서 여행만 가면 어찌나 부지런을 떠는지. 좋다는 곳은 다 가보고 싶고, 맛있다는 건 다 먹어보고 싶었다. 계획이 틀어지거나, 생각했던 곳에 가지 못하면 화까지 났다. 욕심 주머니와 더불어 심술주머니까지 찬 여행자가 바로 나였다. 그런 내게 한 곳에 진득하게 머무는 건 곧 갈 수 있는 수많은 다른 여행지를 포기한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였기에 내키지 않았다.


지난한 고민 끝에 내가 택한 것은? 결국 ‘제주 한 달 살기’였다. 깃발 꼽기 게임을 하듯 더 많은 목적지에 가는 것에 집착하는 욕심 많은 내 성향을 알고 있었지만, 그 성향도 결국 ‘새로운 경험을 언제나 환영하는’ 더 깊은 뿌리에서 나온 가지였다. 나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낯 선 도시에서의 한 달 살기’라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그동안의 나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고, 가능하지도 않았을 여행. 그 안에서 나는 한 달간 어떨까? 같은 도시에 있는 게 지루할까? 그토록 좋아하는 바다도 매일 보면 질릴까? 의외로 새로 만든 일상을 사랑하게 되지는 않을까? 물음표를 가지고 나는 안식월을 활용해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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