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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 Nov 27. 2022

면접관이 되어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구직할 때는 미처 몰랐던…. 미리 알았더라면 도움되었을 요령이랄까.

면접 10분 전 어김없이 캘린더에 설정해둔 알림이 뜬다. 가슴이 두근두근거린다.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나 괜히 스트레칭을 했다. 내가 구직자로 면접 볼 때도 이것보단 덜 떨었던 거 같은데… 난 왜 이럴까 자괴감이 든다. 어쩌다 보니 새로운 디자이너 포지션의 채용 담당자를 맡아버렸고 무려 두 달 만에 새로운 사람을 뽑으라는 임무가 떨어졌다.


그동안은  매니저가 채용을 담당하고 있었다. 간혹 2차나 3 면접쯤에 내게도 요청이 오면 면접에 참여해 디자인 과제를 평가하거나 팀에  어울릴지 같이 검토했다. 나는 보조 역할이었기 때문에 미리 이력서 한번 훑어보고 들어갈  부담이 거의 없었다. 내가 담당자가 되고 보니 그동안 몰랐던 신세계가 펼쳐졌다. 신경   한두 가지가 아니라 시행착오도 많이 거쳤다. 리크루팅을 담당하는 동료들은 따로 있어 처음 스크리닝과 커뮤니케이션은 그들이 해주었지만,  손에 넘어온 이력서   우리가 찾는 프로필을 엄선해 미팅을 잡는  순전히  판단에 달려있다.


여기서 내게 가장 부담이 된 건 나의 결정에 우리 팀 사람들과 지원자 모두 영향을 받는다는 것. 모두의 시간은 매우 소중하고 한정적인데 내가 중간에서 판단을 잘해야 효율적으로 진행이 가능하다. 내 역량이 부족한 탓으로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는데, 그러면서 배운 점을 적어보고자 한다.


모든 회사들이 그렇겠지만 우리 팀에서도 까다롭게 사람을 뽑는 것 같다. 우리 팀의 규모가 작다 보니 (프로덕트 팀 자체는 10명이 안된다) 한 명 한 명이 주는 존재감이 크기 때문이다. 사실 제일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찾는다기 보단 (나부터가 그런 평가를 할만한 깜냥이 안되고) 어느 정도 스킬이 확인되면 팀과 어우러져 일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출처 Pexels

우리 회사는 공식적으로는 면접이 네 차례 있다. 


제일 처음엔 리크루터와 job requirement를 충족하는지 확인하고 비자 상태, 희망 연봉 등을 물어본다. 필수 조건만 맞으면 리크루터는 이렇다 저렇다 할 가치 판단 없이 내게 프로필을 넘겨준다. 첫 대화에서 받은 간단한 인상도 전해주는데 아주 특이한 경우가 아니고는 다음 단계에 큰 영향을 주진 않는다. 필수 조건이 맞더라도 간단한 대화임에도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되는 경우엔 리크루터가 거른다. 반복적으로 묻는 말에 아주 딴 소리를 한다던가 성의 없는 태도를 보이거나 하는 식인 것 같다.


팀 적합성 (Team compatibility) 질문에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경험치를 보여준다.

다음 단계에서는 채용 담당자와 1:1로 미팅을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우선 자기소개를 주고 받고, 팀과 포지션에 대한 소개를 한 후 지원자가 원하는 바와도 잘 맞는지 대화를 한다. 그리고 지원자의 스킬에 대해 구체적으로 예시와 함께 물어본다. 그리고 기존 회사에서의 역할과 일하는 방식은 어떤지도 물어본다. 여기서 단순히 정보만 얻지 않는다. 지원자가 자기 경험을 풀어낼 때 어떤 점을 특히 강조하는지, 긍정적으로 보는 부분과 불만이 있었던 부분은 무엇인지를 열심히 파악한다. 이럴 때 사례를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 교과서 적인 뻔한 말들은 듣기엔 그럴 듯 하지만 경험의 깊이를 보여주지 못한다. 성공 사례뿐 아니라 시행착오와 자기만의 인사이트를 곁들이면 더 “있어 보인다”. 경력직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학교 프로젝트나 동아리 등에서 했던 사례를 빗대어 얘기하면 더 설득력 있다.


비슷한 방식으로 팀 적합성을 돌려서 물어보는 대표적인 질문들이 몇 가지 있다. 소통 방식, 갈등 해결 방식, 리더십 스타일, 과거 팀에서의 경험, 선호하는 스타일 등이다. 예를 들면 일하면서 의견이 충돌했던 경험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어떻게 해결했는지, 혹은 팀 모든 사람들이 yes 할 때 내가 no 한다면 내 입장을 어떻게 관철시킬지 등등이다. 질문 자체는 흔한 면접 질문 리스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얻는 인사이트가 많다.

예를 들어 의견이 충돌했던 경험에서 없다고 한 사람도 있었다. 평화를 지향하는 모습을 어필했지만 면접에 들어간 사람들 모두 안돼를 와쳤다. 한국에서는 모르겠지만 네덜란드에서는 자기 주관을 갖고 펼쳐갈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데, 동료와 충돌한 경험이 없다는 건 강력한 적신호다. 자기 의견이 딱히 없어서 남들에게 휘둘리는 경우이거나 남의 말을 일절 듣지 않아 자기 의견만 밀어붙이는 경우일 수도 있다.

회사에서 묻는 질문들의 의도를 생각해보면 회사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


당시 우리 팀에 트러블 메이커가 있었는데 후자의 경우였다. 고집이 너무 센데 본인만 몰랐다. 주변 사람들은 힘든데 본인은 행복한 스타일이었다. 그 동료에게 다들 질려있다 보니 이런 성향이 보이면 뿌리부터 잘라내려고 했던 것 같다. 반대로 지원자 입장에서도 이런 질문들을 연속으로 받는다면, 팀 내에 불화가 있음을 유추해볼 수도 있다.


솔직함은 무기이자 장기적으론 서로에게 이득이다.

혹시나 자기 포장을 위해 직장 동료와 싸워본 적이 없다고 했다면 솔직하지 않아보이기에 감점이다. 면접에서 적당히 포장하는 건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는 자기를 표현해야 한다. 그래야 회사 입장에서도 팀과 맞는지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고, 지원자 입장에서도 가감 없이 자신을 보여주기에 추후에 억지로 끼워 맞추며 힘들어할 일이 없다. 네덜란드 혹은 서유럽 문화에서는 지나치게 자기를 포장하고 부풀리면 의뭉스럽게 여겨진다. 면접에서 묻는 내용이라면 살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경험이기에 진솔한 대답을 추천한다.

출처 Pexels
과제 인터뷰는 머뭇거리지 않고 밀고 나간다

다음 단계는 케이스 스터디다. 간단한 과제를 주고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파악한다. 보통 사전에 5시간 정도를 준비 시간으로 요청하는데 사실 나부터도 이런 면접에서 기본 하루 정도는 준비한 거 같다.. 그런 이유로 최근에 화이트보드 챌린지로 포맷을 바꾸었다.

출처 Pexels


화이트보드 챌린지는 말 그대로 그 자리에서 화이트보드에 함께 다이어그램이나 스케치를 그려가며 문제 인식과 솔루션 탐색을 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형식의 장점은 함께 소통하며 대화하는 방식, 온도가 비슷한 지 바로 바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원자도 몇시간씩 공을 들여 준지할 필요가 없으니 양쪽이 덜 부담스러운 것 같다. 이때 중요한 건 자신감이다. 어차피 짧은 시간에 무언가 대단한 걸 보여주긴 어렵다. 자신감 있는 태도로 과정을 끌고 나가고 명확하지 않은 부분은 망설임 없이 질문하는 모습이 좋다. 적어도 우리 팀에서는 같이 일하기에 최적의 태도의 모델로 삼는다. 그리고 시간 관계상 디자인 프로세스를 하나하나 밟아가기엔 제약이 있는데 어떤 과정을 뛰어넘어 가는지 혹은 이러이러한 가정으로 이런 결론을 내렸음을 짚고 넘어가면 더욱 연륜이 드러나는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지원자 입장에서도 면접관으러 들어온 사람들의 디자인 이해도와 프로세스를 역으로 이해할 수 있어 유용한 기회다. 앞으로 길게는 몇 년을 일할지도 모르는 회사인데 나의 디자인 가치관과 프로세스와 소통의 흐름이 잘 맞았는지 생각해보면 좋다.

여기까지 분위기가 좋다면 질문으로 성의를 보인다

여기서 분위기가 좋으면 우리 팀은 바로 회사에서 할 업무에 대한 얘기를 꺼낸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어떤 식으로 접근할지 혹은 이런이런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물어본다. 이 정도까지 오면 지원자 입장에서는 여유를 가지고 이제 회사를 평가하기를 추천한다. 입사 제안을 받는다면 물론 연봉이 가장 큰 요소겠지만 회사 분위기, 일하는 방식, 팀 규모와 의사 결정 방식도 매일의 업무에 중요하다. 그러니 이런 점들을 차근차근 물어보면 좋다. 또 이런 질문으로 내가 얼마나 이 리쿠르팅 과정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지 성의가 드러나니 질문을 세개정도 준비하면 좋다.


우리 팀에서는 매 단계 인터뷰에서 마지막 10분 정도는 지원자에게 질문할 시간을 준다. 모든 대화가 물 흐르듯 잘 끝났는데, 질문 있냐고 하니 궁금한 게 없다고 한 지원자도 있었다. 한 시간 남짓 쌓아 올린 좋은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우리 쪽에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다음 단계로 가도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오퍼가 성사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위험 부담이 느껴졌다. 아주 기본적인 비즈니스에 관한 질문을 한 지원자도 있었다. 홈페이지에도 나와있는 정보를 물어보기에 간단한 사전조사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 실망스러웠고, 전반적으로 우리 팀에서 하는 일이 뭔지에 대해 이해도가 떨어져 보였다. 질문할 기회가 있다면 이 회사에 내가 내일부터 일한다고 생각하면 궁금한 내용을 물어보면 좋다. 그리고 기본적인 것을 물어보더라도 내가 찾아보니 이러이러한 내용이 있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게 맞는지? 등의 방식이 더 성의 있어 보인다.


마지막 단계로 갈수록 여유를 잃지 말자

출처 Pexels

최종으로 가면 사장님이나 팀원들 두셋이 더 만나게 되는데.. 평가한다기 보단 대화의 의미다. 서로 기대하는 바, 앞으로의 비전에 대한 얘기, 팀의 문화는 어떤지 많은 대화를 한다. 지원자를 설득하려는 목적도 있다. 여러 곳을 두고 재고 있거나 이직의 결정을 해야 경우 최종 결정 전 팀에 대해 더 소개하고 어필할 기회기도 하다. 그리고 최종 오퍼가 나가면 회사 입장에서는 여기까지 끌고 온 시간과 노력이 있기에 오퍼를 성사시키는 것이 우선순위가 된다. 지원자 입장에서는 좀 더 확신을 갖고 협상에 조금 세게 나가도 괜찮다. 어차피 회사에서 정 안되면 안 된다고 할 테고, 최대한 맞춰서 데려가려고 할 테니 말이다. 나는 여러 가지 정황을 생각하며 눈치를 많이 보았는데 밑져야 본전이니 세게 나갈걸 하고 가슴 아픈 후회를 했더랬다.


우리와 잘 안 맞는다고 해서 지원자의 능력치가 부족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저 서로 안 맞는 것일 뿐. 마찬가지로 지원자도 아쉬울 게 없단 태도가 더 어필이 된다. 을의 입장으로 면접에 임하기보다 나와 잘 맞는지, 내 적성과 성향에 맞는 일과 팀인지 열심히 파악하고자 하면 여유도 있어 보이고 회사가 아쉬운 입장이 된다.

결론은 여유와 솔직함이다

나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에 더불어 네덜란드와 IT업계의 문화 특수성도 섞여 있지만.. 내가 어디로든 다음 이직을 하게 된다면 꼭 명심할 것은 두 가지다; 나도 회사를 면접 보는 거라는 여유 있는 태도와 솔직하게 날 보여주기. 연차가 쌓일수록 그럴 껀덕지가 조금은 생기는 것 같기도 한데… 사실 별거 없이도 나 정도면 괜찮지 하는 사람이 더 많더라는 것, 그러니 겸손함보다는 자신감으로 승부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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