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어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두 번이나 겹친다. 왜 ‘하필’ 추석인가. 그리고 가까운 지역도 아닌 무려 ‘대구’다. 거기에 때아닌 비까지 추적추적 많이도 내린다. 마치 장맛비처럼.
친한 친구이자, <여유로운 퇴직을 위한 생애설계>의 공저자 그리고 나를 강의의 세계에 연착륙하도록 애써준 친구의 어머니가 소천하셨다. 톡으로 그 소식을 접하는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추석에, 대구에 그리고 계속되는 비까지. 최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전화를 했다. 내려오지 말라고 한다. 빈소리로 들릴까 봐 거듭 당부를 한다. 혹여나 민폐일까 많은 분들에게 연락도 돌리지 않았다 한다.
고민이 된다. 물론 당연히 가는 게 맞다. 하지만 사정이 너무 좋지 못하다. 차를 가져가면 여러모로 편하겠지만, 그 밀리고 또 밀리는 길을 견뎌내야 한디는 게 아찔하다. 용인에서 대구까지 빠르면 3시간 30분 이내면 갈 거리를 5시간 이상 걸리며 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진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혹시나 해서 대중교통을 찾아본다. 아들이 내 얘기를 듣고 옆에서 거든다. 수원에서 동대구로 가는 버스가 있다. 하지만 수원터미널까지 가는 시간만 1시간이다. 이건 쫌. 혹여나 용인에서 가는 차편도 있지 않을까. 아, 있다! 신갈에서 동대구 가는. 시간도 9시 20분이니 괜찮다. 오케이.
문제는 올라오는 차편이다. 거의 다 매진이다. 그런데 딱 1 좌석이 남아 있다. 오후 5시 40분. 더 이상 고민할 이유가 없다. 왕복 차편이 있는데, 뭘 더 주저하랴. 바로 결제. 차로 가면 아내가 함께 가겠다고 하는데 거절한 것 같아 좀 미안하다. 물론 아내와 함께 데이트 삼아 가는 건 좋지만, 그래도 밀리는 길을, 더군다나 비까지 오는 밤운전을 하면 정말 몸살이 날 것 같아 자신이 없다. 결제를 할 수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이렇게라도 갈 수 있게 되어서.
가는데, 역시나 전용차선이 좋긴 하다. 승용차들이 쭉 밀려 있는 구간도 버스는 시원하게 달린다. 다만 아쉬운 점은 대전까지만 그렇다는 것. 사람 마음이 이토록 간사하다. 아마도 차를 가져갔으면 어서 대전만 벗어나길 바랐을 텐데 말이다. 버스는 구미터미널을 거쳐 동대구로 간다. 약간의 밀리는 구간과 경유, 그리고 15분간의 휴게소 정차를 했지만 그럼에도 1시를 조금 넘어 동대구에 도착한다. 상당히 양호하다.
터미널 앞에 장례식장으로 환승 없이 한 번에 가는 일반버스가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꽤나 많다. 특히나 삼성라이온즈 야구 유니폼을 입은 젊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니 딱 알겠다. 오늘이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2차전이 있는 날이구나. 뉴스를 보니 표가 다 매진되며 만원 관중이 몰렸단다. 아마도 여기가 경기장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곳인가 보다. 내가 기다리던 버스가 온다. 헉! 이미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타 있고, 거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버스로 달려든다. 그러지 않아도 길이 밀리고 있는데, 도저히 타긴 어려워 보인다. 다음 버스를 보니 몇 분 뒤 온다고 되어 있지만 아무래도 지금 상태라면 역시나 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다음 선택지를 찾아본다. 밀리지 않는 지하철이 있다. 한번 환승을 해야 하고,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고 되어 있지만 차라리 이게 나아 보인다. 역사로 들어서니 수도권이 아닌 지방의 지하철이지만 크게 달라 보이는 건 없다. 그래서 약간의 아쉬움이 든다. 뭔가 지역 만의 특색을 담아도 좋지 않을까.
병원 지하에 있었다. 식장 안내판을 보니 어, 한 가족 밖에 없다. 이번 추석 명절에는 돌아가신 분도 거의 없는 모양이다. 들어가니 예배 중이다. 몇 번 같이 만난 적이 있는 친구 아내가 날 보더니 그냥 일반적인 인사를 하려다 깜짝 놀란다. ‘어떻게 여기까지?’하는 표정이다. 역시나 놀란 친구가 나오더니 한마디 건넨다. 오지 말라고 했는데.. 그래도 와야지. 뭔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잠시 후 예배가 끝난 후 입관식을 진행한단다. 조문은 나중에 하고 먼저 식사부터 하라 권하고 친구는 자리를 비운다. 장례식장이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조문 온 사람이 거의 없으니 그럴 수밖에. 추석, 연휴, 지방, 비. 오기 힘든 게 사실이다. 게다가 친구 말에 의하면 지금 이때 부의 소식을 알리면 민폐 같아 연락도 하지 않았단다. 그러니 더욱 그럴 수밖에.
20 여분 정도가 흘렀나 보다. 다시 온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조문을 한다. 90세까지 사셨으니 호상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아무리 오래 살아도 자식의 가슴에 새겨진 멍울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새겨진 짙은 자욱이니 그럴 밖에. 시간이 흐르면 옅어지겠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을 멍자욱.
준비한 조의금을 건네니 친구가 마다한다. 안 받기로 했단다. 왜 안 받느냐며 봉투를 밀어 넣는다. 그래도 안 받는단다. 그러면 아이들 뭐 사주라며 쥐어주니 그제야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그러면서도 이건 아닌 거 같은데라며 구시렁 거린다. 그냥 받으라고. 내 작은 마음이라고. 사실 돈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그래도 힘든 친구를 위해 무언가라도 했다는 마음의 평화 아닐까.
맥주 한 캔과 이런저런 얘기들. 부스스한 친구의 얼굴을 보니 힘든 상황이 느껴진다. 사람이라도 북적였다면 그동안만이라도 모친상의 아픔이 조금이라도 잊혀질 수 있을 텐데. 이제 그에게는 추석이 마냥 즐겁지만은 아닌 그런 날이 되리라. 웃프다란 표현이 적당할까? 영어의 Thanksgivingday(추수감사절)가 1년의 수확을 감사하는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추석 또한 감사함과 함께 즐기고 누리는 것이 당연한데, 이제 그에게 추석은 온전히 그렇지 못할 것 같아 짠한 마음이 든다. 스스로 잘 적응하기를.
그래도 1시간 20분 정도 있었나 보다. 이제는 올라가는 버스를 타러 가야 할 시간. 친구 아내가 커피와 과일, 떡을 싸주며 올라갈 때 간식으로 먹으라 한다. 마음이 고맙다. 친구에게 상 잘 치르고, 연말에 보자며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장례식장에서의 이별은 항상 마음이 편치 못하다. 함께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큰 짐을 떠넘기고 오는 느낌이랄까? 많이 울고, 슬퍼하며 가시는 어머니와 함께 그 오랜 기억들을 덜어 내기를. 그래서 웃으며 미소 지을 수 있는 좋은 기억과 추억 만을 남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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