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가진 자만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된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며 이제 인간의 일자리는 계속 축소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몸을 써서 일해야하는 블루칼라의 일자리는 이미 산업 기계, 로봇들에 의해 많은 부분 점령당하다시피 했고, 머리를 활용해서 일해야하는 사무직, 전문직의 일자리 또한 많은 분야에서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거나 대체될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2013년 옥스퍼드 대학교의 칼 베네딕트 프라이즈와 마이클 오즈번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10~20년 내 미국 고용의 약 47퍼센트(약 6,400만개의 일자리)가 인공지능과 로봇에 의해 자동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거의 반 가까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얘깁니다. 일자리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인공지능은 인간의 영역을 계속해서 침범해 오고 있는데요,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첨단 IT 기업들은 이미 챗봇(Chatbot, Chatting과 Robot의 합성어)을 활용, 인간과의 일상적 대화는 물론이고 쇼핑, 예약, 기상정보, 뉴스 등 가상의 비서 역할까지 해내고 있는 수준입니다.
인공지능 ‘왓슨(Watson)’의 사례를 살펴보면 향후 인공지능이 어떻게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2011년 미국의 대표적인 퀴즈쇼인 <제퍼디>에서 인간을 제치고 우승한 IBM의 인공지능 왓슨은 그 뛰어난 학습능력을 발휘, 의료계에 진출하여 기존 의사들에게 매년 쏟아져 나오는 학술정보를 신속, 정확하게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과거의 수 많은 임상 사례들을 분석, 의사들이 환자를 진단할 때 비교 분석가능토록 ‘의견’까지 제시하고 있죠. 이 정도라면 웬만한 의사보다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왓슨은 무한의 ‘복제’는 물론이고 언제 어디서든 최신 업그레이드까지 가능합니다(의사 한명을 키우기 위해 무려 6~10년이란 긴 시간과 함께 들어가는 큰 비용을 생각해보면 이런 왓슨의 효율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습니다). 현재로써 왓슨이 못하는 것은 실제 수술이라 할 수 있지만, 이 또한 기존의 의료로봇과 연결한다면 조만간 왓슨이 충분히 수술대에도 설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만약 이렇게 되면 지금의 의사들은 어디로 가야할까요?
왓슨은 의료계에서 보여주고 있는 능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에 진출을 꾀하고 있는데요, 맞춤형 투자와 자산관리, 대출신용도 평가와 투자 자문 서비스 등과 같은 금융 분야, 수 많은 보험사례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보험 분야, 그리고 특허를 위한 심사나 행정지원 그리고 모든 법률에 대한 자문까지 진출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최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사이버 보안 사고를 막기 위한 대응책의 하나로 왓슨의 투입을 검토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왓슨은 사이버 보안관의 역할까지 하게 될 겁니다. 또한 석유 탐사 프로젝트에도 왓슨이 참여할 예정인데요, 석유가 묻혀있을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알아내기 위한 다양한 시뮬레이션 작업에 왓슨이 활용됨으로써, 보다 빠른 그리고 좀 더 정확한 데이터를 산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왓슨 하나로 인해 최소 수백만명 이상의 사무직, 전문직 일자리가 없어질 듯 보입니다.
이러한 인공지능, 로봇의 엄청난 발달로 인해 향후 우리의 경제는 어떻게 바뀌게 될까요? 어떤 IT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의 발달이 인간의 일상 생활에 편리함은 물론이고,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까지 척척 해냄으로써 삶을 훨씬 윤택하게 만들어 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 말합니다.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는 철저히 결과론에 입각한, 그리고 모든 사람이 아닌 아주 일부 계층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인공지능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그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돈이 필요합니다. 만약 돈이 없다면, 인공지능이 주는 이로움은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 불평등, 새로운 가난을 야기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돈은 어디서 나올까요? 자신이 가진 일자리에서 나오죠. 하지만 인간의 일자리가 사리지고 있으니, 수입은 갈수록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인공지능이 주는 잇점을 이용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일반 개인들의 경제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지게 될 겁니다.
이렇게 본다면, 향후 인공지능이 활약하는 미래의 경제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더 부익부빈익빈에 의한 불평등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로봇의 부상>의 저자 마틴 포드는 미래 경제에 대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 가장 으스스한 장기적 시나리오는 세계경제 시스템이 결국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나가는 방법일 것이다. 그때가 되면 해괴한 창조적 파괴의 과정을 거쳐 오늘날 세상을 떠받치는 시장경제가 사라지고 최고의 부자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고가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산업만 남을 것이다. 인류의 거의 대부분은 모든 것을 박탈당할 것이다. 경제적 계층 간의 이동은 아예 사라질 것이다. 돈을 가진 사람들은 철문을 굳게 잠근 자신들의 거주 지역 혹은 엘리트 도시에 모여 살 것이며, 아마 이들을 군사용 로봇과 드론이 지킬 것이다. 달리 말해 중세에 흔히 볼 수 있었던 봉건 체제로 회귀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중세 시대의 농노들은 농업 노동을 제공했기 때문에 시스템에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자동화된 봉건주의가 지배하는 미래에 농민은 대부분 군더더기가 될 것이다.
아찔하지 않나요? 봉건체제로의 회귀라니 말이죠. 게다가 농민의 역할마저도 못하는 군더더기가 된다면 그야말로 인간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것 아닌가요? 물론 저자가 말한대로 위는 가장 최악인 워스트 오브 워스트의 시나리오라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이 아예 없어 보이진 않는다는데 문제가 크다 하겠습니다.
돈 가진 사람만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시대...
인공지능과 로봇을 개발하고 나아가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더불어 천문학적 비용이 투입됩니다. 이것을 감당할 수 있는 집단은 사실 구글, MS, IBM와 같은 대기업 혹은 대규모 투자를 끌어낼 수 있는 독자적 기술을 보유한 IT 기업(그나마 이런 기업들도 대기업에서 M&A를 통해 사들이고 있죠) 정도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완성된 인공지능, 로봇은 비싼 가격에 팔릴 수 밖에 없습니다. 투입된 비용자체가 워낙 컸으니까요. 하지만 이것을 구매하는 입장에서는 비쌀지라도 가소성이 더 중요합니다. 인건비를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와 관련된 여러 비용까지 한꺼번에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며, 이에 따라 초기의 대규모 비용은 일정 시간이 흐른 뒤부터는 수익으로 바뀌기 때문이죠.
이렇게 사람의 일자리가 줄어들게 되면 수입이 감소되고, 사용할 수 있는 돈의 규모가 작아지게 됩니다. 그러면 인공지능과 로봇의 활용도는 돈 있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죠.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돈 가진 사람만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오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돈을 벌게 될까요? 일단 기술을 가진 대기업들이 자본을 독점하게 될 것이고, 더불어 그들의 기술을 2차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또한 그것과 연관된 사업을 벌이는 자본가들이 돈을 쓸어 모으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IT를 활용한 인공지능의 시대에는 자본의 불평등이 심화될 수 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글로벌 경제는 일부 계층을 위한, 그리고 그들에 의해 경제체계로 재편될 것입니다.
그래서 MIT의 에릭 브리뇰프슨 교수를 비롯한 많은 생각있는 지식층들은 기업인, 과학자, 경제학자들에게 ‘새롭고 위대한 도전’을 시작할 것을 촉구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노동을 대체할 기술이 아니라 이를 보완할 기술을 발명해야 하며, 인원 감축과 자동화에 고정된 사고방식을 창조자의 사고방식으로 대체하라”고 말이죠. 하지만 당신이 철저하게 생산성과 이윤의 논리로 무장된 자본가라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못 하죠. 왜냐하면 당장의 이익을 포기함은 물론, 손실의 가능성까지 안는 모험을 해야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인공지능의 발달은 엄청난 자본투자를 필요로 하며, 그 경쟁은 사실 무한대라 할 정도로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는 죽느냐 사느냐의 생존경쟁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환경에서 자본가는 옆을 쳐다보며 달릴만한 여유조차 가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내면 안됩니다. 다시 한번 경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봐야만 합니다. 자본 불평등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움직이는 건 공급된 재화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소비자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는 바로 우리와 같은 일반 개인들입니다. 소비자층이 얇아지게 되면, 경제 또한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뿐 아니라 아예 체계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릭 브리뇰프슨 교수의 주장은 현재의 과학자들뿐 아니라 향후 인공지능의 시대를 이끌어 갈 기업인, 자본가들이 반드시 새겨 들어야 할 명제라 하겠습니다. 경제란 일부 사람들만을 위한 시스템이 아니라 모두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한 터전을 구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이야기는 이들에게 던지는 함축적 메시지라 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 당시 포드 자동차의 최고경영자였던 헨리 포드 2세는 전설적인 자동차 노조 지도자 월터 류터와 자동차 공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포드 2세는 로봇 자동화로 인해 공장의 인원이 현격히 줄어들고 있음을 뿌듯해하며 류터에게 다음과 같이 조롱하듯 물었다.
“위원장님, 저 로봇들로부터 노조회비를 어떻게 받으실 건가요?”
그러자 류터는 곧장 이렇게 맞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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