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이민) 다이어리
일본은 내게 매력적인 나라가 아니었다. 아내와 만나기 전까진 일본에 방문했던 적도 거의 없었으며, 그나마도 다른 나라로 여행 가던 도중 도쿄에 경유했던 것이 전부였다. 대도시의 구조와 사람들의 표정, 거리의 풍경이 한국과 너무 비슷해서였다. 해외여행 중에 갖는 신선한 감상이 부족했다고 할까?
물론 이는 상대적인 감상이었다. 이민을 온 뒤에는 오히려 이전에 갔던 어떤 나라들보다도 이색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는데, 그중의 하나가 빈티지 쇼핑이었다.
온라인 기반의 중고품 거래가 활성화된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거대 유통기업이 창고형 중고 매장을 운영한다. 덕분에 플리마켓 같은 소소한 시장이 아닌, 전문적인 고객 서비스와 광고홍보, 마케팅을 동원하는 거대 산업으로 성장했다. 코트라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일본의 중고품 시장 규모만 무려 3조 엔에 달한단다.
아무래도 일본의 장기침체가 원인이겠지만, 중고품 시장의 발달엔 일본인들이 가진 취미에 대한 열정을 무시할 수 없다. 일본은 취미의 왕국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젊은 층은 물론 중년 이상의 기성세대도 취미 활동에 많은 시간을 쏟는다. 그냥 즐기는 정도가 아닌 준전문가 급의 소양을 쌓거나 관련 분야의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등,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상당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한다. 그리고 취미용품들이 대부분 중고품 매장을 통해 유통된다.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만화는 물론, 헌책과 악기, 음반과 각종 수집품 등의 인기가 계속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고품 매장의 매력은 예측 불가능함이다. 최신 트렌드에 맞는 비슷비슷한 제품만 취급하는 백화점과는 달리, 중고품 매장에선 산업화 이후 생산된 모든 시대의 제품을 가리지 않고 판매한다. 찾아올 때마다 재고품도 달라서 보물을 찾으려면 시간과 운, 노력과 관심을 총동원해야 한다. 나는 우연하게 찾은 1984년산 매킨토시의 내부를 현대식 맥북으로 교체하기도 했는데, 지금도 브라운관의 비율로 촬영된 고전 영화를 시청할 때 만족하며 쓰고 있다.
초심자에게 권유하는 품목은 기능이 손상되지 않는 음반이나 책, 게임과 전자기기 등이다. 여기에 개봉하지 않은 결혼식 답례품도 추천하고 싶은데, 생필품이라 실용적인 데다 품질이 만족스러운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겐 이름 모를 부부의 이니셜이 박힌 머그컵이 몇 세트나 있다. 힘들게 초대한 친지들에게 그들의 성의가 무시당했다는 사실이 서글프기도 하지만…… 그 탓에 매일 아침 커피를 내릴 때마다 TK와 AH의 행복을 빌어주고 있다. 부디 즐거운 가족이었으면 좋겠다.
가끔은 타인의 흔적이 사랑스러운 때도 있다. 내가 가진 게임팩 중에는 1998년에 생산된 포켓몬스터의 RPG가 있는데, 게임팩의 뒷면에 <1999년, 아빠 최고!>라는 낙서가 적혀 있다. 많아야 예닐곱 정도로 보이는 어설픈 필체였지만, 1989년생인 나와 같은 또래일 수도 있다는 동질감이 들기도 한다. 세이브 파일엔 아이가 잡았던 포켓몬스터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텟짱(철이), 하사미(가위), 파칫치(찌리릿)같은 별명을 읽으면 24년 전 게임 속의 친구들과 모험을 떠나던 설렘이 재현되는 기분이다. 아빠의 선물이 얼마나 좋았을까?
중고 숍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나처럼 흥미를 보이는 분들도 있는 반면, 중고품 자체를 불신하는 분들도 있다. 개중에서도 친척 어르신을 모시고 갔던 경험이 충격적이었다. 처음에는 재밌게 구경하시던 그분의 안색이 어느 순간부터 어두워지기 시작했는데, 나중엔 팔에 매달리며 지금 당장 매장에서 벗어나자고 하셨다.
“되도록 구제는 입지 마라. 귀신 붙겠더라.”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과학적 근거로 부정하기에도 힘든 말이었다. 자신에 본 것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진 않으셨지만, 평소에 장난을 치거나 신소리하시는 분은 아니었고, 친족들 중 영감이 있기로 유명한 분이시기도 했다. 그렇다고 중고품 쇼핑을 중지한 것은 아니었으나 구제 의류나 액세서리 등은 기피하게 됐다. 귀신이 붙기 어려운(것 같은) 전자제품이나 게임 등에만 집중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내가 중고 시계의 매력에 사로잡혔다는 것이다. 내겐 시계가 20세기의 물건이라는 이상한 고집이 있었는데, 신품이 아닌 중고품을 물색한 것도 1990년대 이전의 기술발전을 반영한 제품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시계라는 품목 자체는 차고 넘칠 정도로 물량이 많았으나, 재고 속에서 적합한 물건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능하면 시계 전문 기업의 제품에, 브랜드 고유의 디자인과 개성, 그리고 시계사(史)의 맥락을 따르는 모델이기를 바랐다.
그렇게 시계에 대한 열의가 식어갈 때쯤, 어느 중고 숍의 시계가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직원 말로는 80년대에 만들어진 다이버 워치라는데, 보는 순간 그동안 찾아 헤맸던 시계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굴곡지고 투박한 디자인이었음에도 이음매가 드러나지 않는 정교함이 돋보였고, 소재는 공들여 다듬어진 스테인리스였다. 숫자판과 회전판, 용두와 스트랩도 같은 소재로 통일돼 있었다. 강물에 균질하게 깎인 조약돌 같았다.
매장 직원의 허락을 받아 시계를 점검했다. 약간의 흠집을 제외하면 기능상이 문제는 없어 보였다. 게다가 가격이 매우 저렴했다. 꽤나 인지도 있는 스위스 회사의 제품임을 감안하면 말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그렇게 인기 모델은 아니거든요. 기본적으로 오래된 모델인 데다 쿼츠 모델이기도 하고, 남자가 차기엔 사이즈도 너무 작죠. 원래는 남녀공용으로 나왔거든요.”
직원의 말이 맞긴 했다. 보통 남성용 시계는 지름 40mm 전후로 만들어지는데, 이 시계의 지름은 32mm로 여성용에 가까운 사이즈였다. 손목이 두꺼운 남자들에겐 대중적으로 팔리기 쉽지 않은 디자인이었다. 시세를 찾아보니 비교적 저렴한 모델이긴 했고, 정품 보중에 신경 쓰는 매장이라 가품 걱정도 없었다. 다행히 나는 웬만한 여자들보다 손목이 가늘었고, 시계가 잘 어울릴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그런데도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귀신 붙겠더라.”라는 어른신의 말씀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더욱이 나는 작가 지망생이었고, 작품 습작과 응모에 매진하던 때였다. 괜한 불운을 자초해 당선에 실패하게 될까 조심스러웠다. 어쩌면 전 주인이 야쿠자나 노숙자, 퇴직을 당한 회사원이거나 버블로 인해 투신한 사람일 수도 있다. 불행한 자들의 원한이 내게로 옮겨지진 않을까 싶은 기우였다.
갈팡질팡하는 나를 보던 아내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어째서 귀신이 나쁠 거라고만 생각해? 사람에 따라 좋은 기운일 수도 있잖아. 꽤나 비싼 시계였다니까 전 주인이 부자이거나 유명인일 수 있고, 인간적으로 성품이 훌륭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잖아? 운명을 느꼈다면 분명히 좋은 궁합일 거야.”
확실히 그럴듯하긴 했다. 생각해 보면 화랑에 걸린 작품과 유명인들의 사인, 경매장에 나온 귀중한 물건은 전부 누군가의 흔적이었다. 그럼에도 인간은 전 주인들이 남긴 영향력 속에서 각자의 기쁨과 희열, 보다 깊은 감정의 몰입을 발견하기도 한다. 문제는 내가 그것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일 것이다.
아내의 말에 따라 손목시계를 걸치자 스테인리스의 서늘한 감촉이 맥박을 휘감았다. 남국의 바다가 연상되는 청량함이었다. 손으로 물을 가르는 질감과, 체중을 떠받치는 바닷물의 느낌, 중력에서 벗어난 신체가 해방감을 안겨줬다. 순식간이지만 생동감을 가진 영상이었다. 시계에 깃든 전 주인의 상념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선 몇 주 뒤에 신인상에 당선됐다. 시계와 행운 간의 상관성을 증명할 순 없겠지만, 어쩐지 알 수 없는 존재에게 도움을 받은 느낌이었다. 동시에 내가 남긴 흔적들도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같은 곳에서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수십 년이 지나간 뒤엔 내가 쓰던 만년필과 시계, 랩톱 같은 물건도 다른 사람들의 소유가 되어 있을 테니까. 그들을 위한 즐거운 흔적을 남기며 살아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