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결혼한 신혼부부가 주변으로부터 듣는 질문은 꽤나 다양하지만 신기하게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예비 신혼부부들에게 항상 빠지지 않고 들었던 질문은 아래와 같다.
'결혼 생활은 재밌어? 이전이랑 많이 달라?'
'이 사람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어?'
'결혼 준비하면서 많이 싸우진 않았어?'
4년간의 연애 후 작년에 결혼한 나로서도 '기분은 좀 다르겠지만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적어도 나에게는 결혼 전과 후는 다른 세상이다.
와이프가 본가에 가는 주말을 손꼽아 기다리던 책임님을 이해 못 했지만 이제는 어떤 기분인지 알 수 있으니 말이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바뀐 것인가.
결혼을 하면 달라지는 것들부터 이 사람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 결혼 준비하면서의 갈등까지
결혼을 생각해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궁금했을법한 질문들에 나만의 답을 해보고자 한다.
01. 어느 날 하루아침에 사위, 제부, 형부가 됐다.
새로운 가족의 탄생
직관적으로 와닿는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
물론 상견례도 하고 결혼 전 찾아뵙기도 하면서 예비 사위(며느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지만 확실히 달라지는 건 결혼식 전, 후로 양가 부모님의 반응이 달라진다.
1시간 남짓한 결혼식이지만 단순히 식 자체의 의미를 넘어 양가 모든 가족들 앞에서 부부가 됨을 선언하는 것이기에 예비 사위(며느리)에서 찐 사위(며느리)로의 변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른들께 큰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결혼 전에는 되게 조심스러워하셨던 장모님께서도 결혼 후에는 '우리 사위' '우리 아들'로 불러주시는 것만 봐도 느낄 수 있다. 수많은 가족이 생긴다는 것이 첫 번째 큰 변화다.
02.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매일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
두 번째 몸소 느낄 수 있는 직관적인 변화는 각자의 생활공간이 물리적으로 합쳐진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변화가 생기길래 연애할 때는 잠시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 4-5시간 거리를 달려온 남자 친구가 결혼 후 와이프가 본가에 가는 순간을 기다리는 유부남이 되는 것일까?
1) 유부남 전용 결재선이 추가되었습니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환경에 놓이는 것.
연인이 부부가 되고 물리적인 공간을 공유하게 되면 가장 큰 변화는 '모든 선택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당장 눈앞에 있는 설거지부터 내일 있는 팀 회식, 이번주 주말 계획, 다음 달 장모님 댁 방문까지 100% 온전히 내 의견대로 할 수 있는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적어진다.
좋고 안 좋고를 떠나서 내 의사대로 바로 하던 행동들 사이에 허락이건, 통보건 어떤 형태로든 와이프(남편)를 거쳐가는 한 스탭이 더 생긴다.
이런 중간 과정의 추가로 인해 혼자서는 절대 안 했을 일을 같이 함으로써 오는 행복감도 2배가 되기도 하고 혼자였으면 했을 일을 못해서 오는 답답함이 2배가 되기도 한다.
장, 단점이 공존하기에 뭐가 좋다 얘기할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모든 순간을 내 마음대로' 100% 통제할 수 있었던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 있는 순간은 오로지 와이프(남편)가 본가에 갈 때 밖에 없다.'
막상 와이프가 본가에 가도 대다수의 유부남들이 대단히 특별한 뭔가를 하지 않음에도 그 순간만을 기다리는 이유가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제 와이프가 친구와 놀러 간 토요일 오후 내가 한 일탈은 넷플릭스 보면서 컵라면 먹고 설거지를 방치한 것. 짜릿하다.)
2) 쉼표로 남겨둔 모든 문제를 마침표로 바꾸는 과정에서 오는 충돌에 대비하라.
의사 결정이 필요 없던 모든 문제를 이제는 선택해야 한다.
아무리 연애를 오래 하고 서로의 집을 자기 집처럼 공유했어도 결혼 전에는 데이트하고 나면 각자의 생활 반경으로 돌아가게 된다.
기본적으로 '나'의 공간과 '너'의 공간이 분리된다는 얘기다.
놀러 간 남자친구 집에 설거지가 깨끗하지 않아 보여도, 창틀에 먼지가 많이 쌓였어도, 이불 빨래를 자주 하지 않아도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않는다. 아무리 결혼할 사이라 해도 아직까지는 '님'이 아닌 '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 너의 집이 아니라 '우리 집'이 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때부터는 누가 무엇을 하건 관계없이 '앞으로 이렇게 하자'는 방향 설정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바로 이때 서로가 생활해 오던 방식과 입장 차이를 하나씩 조율해 나가야 하는데 아주 사소한 집안일부터 집안 설, 추석 행사, 양가 부모님 용돈까지 암묵적으로 둘 다 언급하지 않았던 수많은 질문들을 마침표로 바꾸는 과정에서 결혼했음을 몸소 실감할 수 있게 된다.
바로 이 단계에서 이전에는 몰랐던 서로에 대한 모습들을 알게 되고 놀라고 실망하기도 한다.
그렇다. '오빠 변했어'가 아니라 '오빠 이랬었구나?'가 오히려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여자친구가 와이프가 되면 달라지는 것들을 한마디로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물리적으로 생활공간이 합쳐지기 때문에 각자가 내리는 모든 선택이 서로의 영향을 받는 환경에 놓이고
나와 네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는 단계에서 수많은 질문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글을 마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혼은 무조건! 좋다고 외친다.
매년 눈에 띄게 감소하는 혼인 건수 (출처: KOSIS)
2013년도부터 2022년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매년 혼인 건수가 줄이 들고 있는 통계자료를 보게 됐다.
내 주변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결혼하는 것 같은데 이 정도로 감소한다는 건 신기한 감정을 넘어 놀라울 정도다.
물론 주택 청약이라던지 복잡한 상황들 때문에 결혼을 하고 혼인 신고만 안 하는 그런 케이스들도 많겠지만 어찌 됐건 '반드시 해야 하는 결혼'에서 '하면 좋고 안 해도 괜찮아'로 바뀌는 추세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변화의 다양한 원인들이 있겠지만 나와 같은 90년 대생들의 경우 천문학적인 결혼 비용에 대한 걱정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 속 내 평생의 반려자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위에서 언급한 결혼 하면 겪게 되는 크고 작은 변화들(혼자일 때가 편하다고 느껴지는 것들)때문에 어쩌면 망설여질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결혼하면 무조건! 좋다고 외친다.
분명 겪어보지 않아서 서로에게 불편한 순간들이 많을 수 있다. 또 몰랐던 부분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당혹스러운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어디서나 나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 누군가 항상 내 곁에 있어준다는 것. 이 넓은 세상에 든든한 내 편이 있다는 것.
그런 생각만으로도 이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마음의 충만함을 얻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이 모든 행복감, 충만함, 불편함 마저도 오롯이 온몸으로 같이 느끼는 이 과정이 결혼이라고 생각하기에 앞으로의 결혼생활 역시 종잡을 수 없고 예측불가한 상태다.
하지만 확실한 건 결혼 후 나의 세상은 바뀌었다.
때론 와이프가 본가를 가는 순간을 기대리는 동시에 퇴근하고 같이 맥주 한 잔 기울일 생각에 하루 종일 기분이 좋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 좋은 걸 나만 할 수 없지. 모든 예비 신혼부부들이여. 어서 오라 유부월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