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음식을 좋아하세요? 한때 이 질문은 내겐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가난하고 배고팠던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무엇하나 가리지 않았지만 행여 내게 메뉴 선택권을 넘겨주는 이가 있더라도 "난 아무거나 잘 먹어", "뭐든 좋아"라고 말하기 일쑤였다. 값을 주고 사 먹는 음식은 대부분 맛이 있었고 마다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고, 배를 든든히 채우는 날에는 세상의 전부를 가진 듯이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선호하는 음식이나 장소에 대한 어느 정도 취향이 생기다 보니, 나름 까탈스러워진 건 사실이다.
초, 중학교 시절 자장면 한 그릇 2,000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저렴한 가격이겠지만, 당시에 자장면은 뭔가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참고로 난 국민학교를 다녔다.) 특히, 졸업식 때 먹은 자장면의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문득, 몇 년에 한 번 사 먹는 자장면이었지만, 가벼운 주머니 탓에 탕수육을 시켜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마음을 알기에 500원을 추가해서 먹을 수 있는 자장면 곱빼기면 충분하다고, 더는 필요 없으니 아저씨 단무지 많이 주세요~라고 했던 어린 내 마음도 오버랩이 된다. 참, 그렇다고 우리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다고는 하지 않으셨다.ㅎㅎ
성인이 되고 취업을 하고, 월급을 받으면서 어려웠던 생활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평소 내가 먹고 싶었던 음식을 큰 고민 없이 먹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자장면을 참 좋아한다. 연애시절 와이프는 내게 자장면을 왜 이렇게 좋아하냐고 묻길래 "그냥, 맛있어서"라고 간단하게 말을 했지만, 자장면에는 나의 추억과 나의 감정과 나의 한(恨)과 나의 서러움과 나의 그림움과 나의 사랑이 깃들어 있는 것이라 복잡하게 이야기를 해 봤자 누가 들어도 그 마음을 다는 이해를 하지 못할 것 같아 그저 짧게 대답하곤 한다.
"광복절 특사"라는 차승원, 설경구 주연의 영화가 생각이 났다. 숟가락 하나로 탈옥에 성공한 차승원이 국밥집을 들러 식사를 하는 순간 한 맺힌 숟가락을 보고 눈시울을 붉히는 장면이 있었다.
사연이 있다.
나에게 자장면은 그런 것이었다. 잘 삶아진 면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맛난 자장으로 덮인 한 그릇, 단무지, 나무젓가락을 보면 참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내게는 자장면이 그런 음식인데, 여러분도 나름대로 생각에 잠기게 하는 음식들이 한두 가지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국내 여행을 다니면서 중국집에 들러 자장면을 먹는 것을 꽤 좋아한다. 지역마다 맛이 달라 먹을 때마다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데 면발의 굵기, 자장의 농도, 오이가 들어가기도 하고, 삶은 메추리알이 들어가기도 하고, 계란 프라이가 들어가는 자장면도 있어 참 재미있다. 그중에서 제일인 것은 걸쭉한 농도의 자장면+완두콩 3개.
지금은 자장면을 먹고 싶을 때는 망설임 없이 중국집을 방문하거나 배달을 시킨다. 내가 자장면을 좋아해서 인지 우리 가족들도 자장면을 무척 좋아한다. 3살 아이도 자장면을 좋아하는데 꼭 탕수육을 시켜달란다. 아주 잘 먹는다. 역시, 자장면에 탕수육은 빠질 수 없는 조합이라는 걸 어린아이도 잘 아는 것 같다.
어느덧 모시던 홀어머니도 세상을 떠나셨다. 지금은 추억으로 남은 그때 그 시절. 자장면 하나 배불리 먹여주지 못해 늘 미안해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가끔 선하게 그려진다. 아이를 키워보니 알겠더라. 자식 배불리 못 먹이는 부모의 심정이 오죽했으랴. 아이가 우걱우걱, 냠냠하고 맛있게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가 굳이 먹지 않아도 배부른 감정. 우리 어머니도 그랬으리라. 정말 없이 살았지만 이따금씩 사주시는 자장면이 많이 기억이 난다.
이제는 자장면 10그릇, 아니 100그릇도 사드릴 수 있는데.. 아들이 이렇게 장성했는데 돌아가신 어머니는 말이 없으시다.
"사장님, 여기 자장면 곱빼기 두 개요!, 그리고 탕수육도요!. 참, 그리고 아주 맛있게 해 주세요!".
어머니, 아들 이제 주머니 두둑해요.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시면 마음껏 드세요. 다음 생에 어머니를 다시 만나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자장면을 대접해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