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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은지 Aug 01. 2017

대한민국에서 20대 여자 대표로 산다는 것은

어느 날의 푸념

나는 대표다. 1989년생, 그러니까 우리나라 나이로 29살(만 28살) 대표다. 그리고 여자다. 그래서 그냥 대표보다는 여성을 나타내는 접두사 '여'짜가 붙어 '여대표'로 불리기도 한다. 사업을 시작하게된 건 2년전, 사실 그 전까지는 내가 여자라는 사실이 그렇게 특별하게 다가오진 않았다. 여대를 졸업했고, 이전에 다녔던 조직은 여자가 많은 조직이었다. 때때로 사회에서 만나는 유리장벽을 실감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 전의 삶이 지독히 운이 좋은 케이스였을지도.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매일 같이, 내가 여자 대표라는 사실을 각인하고 있으니까! 꺄하!



그래, 나는 여자 대표다!

어머나, 대표님이 여자세요?

보통, 이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 우리 직원들이 미팅을 하다가 대표인 나를 끼우면 대개 업체나 클라이언트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그러니까 이 말을 역으로 치환하면 '대표는 주로 남자'가 많다는 얘기다. 이건 다른 자영업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의사결정권자(Dicision Maker)는 대부분 남자다.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예산을 주무를 수 있는 결정권자가 여자였던 경우는 한번도 본적이 없다. 대부분 사원/대리/과장급의 여성 매니저가 우리와 컨택하고 남성인 부장 혹은 임원에게 보고하는 형태로 업무는 굴러갔다. 그리고 이 구조는 우리 클라이언트 뿐만 아니라, 어느 시스템에서나 같았다.


대표님의 남편을 뭐라고 불러야해요?


이런 패러다임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서도 나타난다. 어느날, 우리 직원이 우리 남편을 뭐라고 불러야 하냐고 물어봤다. 벙쪘다. 나도 몰랐기때문이다. 통용적으로, '대표님'이나 '부장님', '나보다 높은 상사' 아내는 보통 '사모님'으로 불린다. 그래서, 상사가 여자의 경우 '사모님'의 반대말인 '사부님'이라는 말을 써야하는데, 매우 낯설다. '사부님'. 어색하고도 낯설음이 주는 묘한 느낌은, 정말 우리 나라에 여자 의사결정권자가 참 없구나. 하는 참담한 심정을 여실히 느끼게 한다.


언어는 한 나라의 문화의 단면을 나타낸다. 네이버 국어사전에는 '신어'로 사부님이 분리돼있다.

'사모님'의 뜻 부인이 '유의어' 뜨지만, '사부님'의 호칭은 '신어'로 뜬다. 그만큼 많이 안쓴다는 얘기다.
 여자들끼리 이걸 할 수 있어요?

우리 회사의 직원 총 8명 중, 산학협력으로 일하고 있는 남성 인턴 1명을 제외하고 모두 20대 여성이다. 그럼에도 월별 평균 1억여원 정도의 매출을 달성하고 있다. 우리와 함께 일한 클라이언트들은 우리의 열정과 불꽃 추진력, 기민한 기획력이 얼마나 가치있는지 알고, '여자여서'가 아니라, '셜록컴퍼니여서' 계약하는 경우가 다수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대부분의 직원이 여자라서 최종 계약이 안된 건도 있다. '곧 없어질 수도 있는 회사'라는 걱정과, '광고 홍보는 힘든 일'이라는 이유때문이였다.


어이가 없었다. 우리 직원 중 1명은 하이네켄 페스티벌, 글로벌게더링(GGK) 기획자, 자라섬 페스티벌을 실행/기획하며 매달 야외에서 굴렀고(...), 또 다른 직원은 3번이나 창업을 한 강단있는 커리어를 갖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모두 고생을(...). 여튼, 여자만 있으면 조직이 잘 굴러가지 않을 거란 사람들은 상상력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조직은 성비가 문제가 아니라, 팀원들의 촘촘한 마음가짐에 따라 잘 굴러간다.


이보다 더 폭력적인 말은, 50대 정도의 부장/임원급들이 포진한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할 때였다. 내가 미팅 중에 스케줄이 바뀐 것을 알아 구글캘린더에 바꿔서 저장하는 것을 본 클라이언트는, "그게 뭐야? 그런건 여직원한테 알려주면 되잖아?"라고 했다. 여기서 내가 충격받은 포인트는 반말이 아니라, '여직원'이었다. (사실 반말은 워낙 많이 들어서 아무렇지도 않다.) 왜 이부분이 포인트인지 많은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나는, '아, 저희 회사 직원은 다 여자입니다.ㅎㅎ 따로 '여직원'이 없어요. 그리고 스케줄 관리하는건 각자의 일입니다. 제 일은 제가 해야죠.ㅎㅎ' 하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대한민국엔 수많은 여성들이 일하고 있고 그들은 절대 연약하지 않다. 남녀간의 프레임을 굳이 나누고 싶지 않지만, 여자들이 대부분의 남성들보다 업무에 더 기민하고, 섬세하고 확실하고 깔끔하게 일처리를 할 수 있다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자들끼리 있는 우리는
야외 행사도 48시간만에 만들기도 했었ㄷf...★
ING생명의 1월 13일의 금요일 프로젝트, -10도 강추위에도 우리는 사흘 밤을 새워, 48시간만에 이 공사를 끝냈다.
K리그 클래식미디어데이 개최, 이 일은 무려 2주만에 진행됐다.





20대 여성이 주는 클리셰에 대하여

'20대 여성'이 우리나라에서 갖고있는 상징은, 어떤 클리셰보다 강력한 것 같다. 대부분 미팅이나 네트워킹 파티를 가면 80%이상은 남자. 비율만큼 좋은 사람도 물론 많지만 요상하게(?) 접근한 사람도 많다.


나는 여자고, 20대고, 비지니스 마인드가 외향적으로 분류되는 '사업'을 하는 대표다. 그것들이 주는 상징성때문에 들을 필요도 없는, 별별, 은밀하고, 더럽고, 듣자마자 귀를 씻고 싶은 이상한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들을 이유도 까닭도 모른채 그저 외향적인 대표라는 생각때문일까. 그들의 무례함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또한, 20대 여자여서, 이용하기 쉽다고 생각한다. 주로 내가 낄 수 없는 라인업에 종종 초대받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이런 경우,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대표님들의 네트워킹자리에 분위기 메이킹용으로 부른 것이다. 내 능력이 아니라 여자라서, 분위기상 불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기분이 아주 별로다. 그래서 어느샌가부터 네트워킹 파티를 잘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다른 여자대표보다 '그나마 다행인' 무기가 있다. 나는 사업 1년차에 결혼을 했다. 이 부분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우리나라에는 여자 위에 '아줌마'라는 성별 또한 있는 것 같다는 생각했다. 그래도 미친놈은 언제나 존재한다. 내가 결혼을 했다고 말해도, "결혼을 해도 유부녀면 어떠냐, 나도 유부남이다" 라고 하는 상식밖의 사람도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_-.. 확..




아이는요? 남편 분이 안 싫어하세요?

그렇다! 나는 결혼을 했다. 여기서는 반드시 남편 이야기가 나오고, 아이 얘기가 필수로 나온다.



나는 결혼 2년차 정도고, 아이 계획은 당분간 없다. 이유는 일을 해서가 아니라 아직은 내가 엄마가 될 준비가 안됐기 때문이다. 여러가지로 내가 성숙해지고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여건이 되면 낳고 싶다. 이 말을 하게 되면, 많은 분들에게 '지금 내게 필요하지 않은 따스한 조언'을 받게 된다. 그 조언들은, '아이는 일찍 낳아야 한다', '준비 됐을 때 낳으면 안생긴다', '너무 늦으면 남편이 싫어한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낳아야 나중에 안 힘들다' 등의 것들이다. 혹은 '아직 애가 없으니까 일하지', '너도 애 생기면 사회생활 끝이다' 등의 이유없는 저주를 듣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우리 직원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나는 작지만 8명의 월급을 주는 작은 회사의 대표이고, 회사 대표가 아이를 낳으라는 클라이언트 혹은 다른 사람들의 조언에 의해 2년간 공백이 생긴다면, 얼마나 희망적인 미래를 그릴 수 있을까. 그 질문을 받는 순간부터 나의 회사 운영 목표는 -우리 직원들 육아휴직 보내도, 내가 아이를 갖더라도 회사가 굴러가게 하는 것-이 되었다. 내가 클라이언트라도 당장 배가 부른 대표에게 몇 천만원이 넘는 돈을 맡기며, 외주용역을 맡길 마음은 들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엄마가 될 준비를 한다는 것이, 우리 직원들의 생계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마음은 나를 우울하게 했다. 결혼하고 나서, 입버릇처럼 '손주 보고 싶다'고 말하는 시댁어머니&친정엄마의 순수한 마음을 알면서도, 현실은 그럴 수 없으니까, 반사적으로 날카롭게 반응하게 됐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마다 좌절했고, 그냥 다 때려치고 아이나 낳을까, 가 옵션으로 마음 속 떠오를 때마다 자괴감이 들었다. 무심코 내게 안부인사를 물었던 사람들+친구들 덕분에, 나는 지난 여름 심리상담을 하면서 새로운 멘탈로 태어났다. 옆에서 이 모습을 같이 지켜본 남편은, 본인이 해줄 수 있는 일은 고작 '강요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 뿐이라며, 기꺼이 그러겠노라 약속했다. 우리 부부는 우리가 아이를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시기에 낳아, 풍요로운 마음으로 아이를 아끼고 싶는 합의를 했다.


그래서 남들의 걱정처럼 내가 사업하는 것을, 아이를 낳는  것을 신중하게 생각하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  그는 내가 지금처럼 일을 사랑하고, 일을 즐길 수 있는 한 사람이길 바란다. 언젠가 그러면서도,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된다면 자연스럽게 아이를 가질 마음이 열리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 문제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지만, 결혼한 여자 대표는 언제나 무차별적으로 이 질문을 듣는다.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여전히 불편한 이유는, 둘러댈 이유가 마땅히 없기 때문이 아닐까.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아요"라고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면, 아이를 여자가 빨리 낳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혹은 우리 땐 다들 그랬어, 의 일장 연설을 들어야 하니까... 그 시간에 일을 조금이라도 하지..



그래도 20대여서, 여자대표여서, 좋다 :)

앞서 말했듯, 우리나라에 여자 대표는 정말 드물고, 20대 여자대표는 더 없다. 정글같은 자본주의 세상에서, 대표님들 세계의 막내 of 막내로 세상의 모든 경험을 A to Z까지 할 수 있는 좋은 '청소년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쌓여있는 역사가 없었다는 건, 그만큼 발굴할만한 것들이 많다는 이야기니까.


우리나라에 여자대표가 없어서 처음 부딪히고 개선하는 많은 것들, 실패해도 금방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 우리의 열정을 열정페이가 아닌 진짜 '열정'으로 봐주는 클라이언트, 같은 마음으로 똘똘뭉친 팀원들을 구할 수 있는 행운. 내가 20대여서, 여자대표여서 더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들인 것 같다. 그래서 좋다.


사실 그냥 정말 다르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난 정말 다르지 않은데, 사람들은 다르게 보는 것 같다. 일을 하는 데 중요한 것은 실력과 그사람이 갖고 있는 진정성이지, 여자여서, 어려서, 라는 이유로 신기해 할 필요도, 대단해할 필요도, 그냥 유별나게 여길 필요도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더 많은 여자들이 더 많은 도전을, 더 많은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면 좋겠다! :D  30대, 40대까지도, 아이를 낳고도 계속 일을 하고 싶으니까! (무슨 일을 할지는 모르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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