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균열
감정 문자를 보낸 다음 날,
늙은 보스는 나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현 팀장을 통해서만 업무 지시를 내렸다.
그건 말이 없는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말의 통로를 끊은 것이었다.
“나는 너와 말하지 않겠다.”
“너는 지금, 나의 말 바깥에 있다.”
그것은 침묵이 아니라
관계에서의 배제였다.
그럼에도 나는
예정되어 있던 출장 일정을 변함없이 소화했다.
나는 평소처럼 SNS에 글을 올리고,
출장을 준비하고,
그날 아침, 아무 일도 없던 사람처럼 길을 나섰다.
나는 더 이상
그의 말과 시선에 내 감정의 리듬을 맡기지 않기로 했다.
과거의 나는
늘 '불쾌하지 않은 표정', '예의 있는 미소'를 먼저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것에서 한 걸음 물러서기로 했다.
늙은 보스는
내가 출장 간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걸 전해들은 순간,
급하게 나를 찾았다.
“자네, 지금 어딘가?”
그 목소리는 다급했고,
짧은 침묵 뒤에 조심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느꼈다.
이 관계의 중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그는 하루쯤 따돌리면
내가 다시 다가오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흔들리지 않자
그의 계산이 틀리기 시작한 것이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는 조용히 말을 꺼냈다.
“**님, 저는 요즘 감정 대화라는 걸 배우고 있습니다.”
그 말에
늙은 보스는 한동안 말을 멈췄다.
그러고 나서,
예상 밖의 말이 돌아왔다.
“나도 그런 걸 좀 배워야겠어.”
그는 평생
사람을 ‘지시’와 ‘기강’으로 다뤄왔던 사람이다.
감정 대화라는 단어는
그의 언어권에 없는 문장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말은 어쩌면
그의 내부에서 아주 작게 균열이 시작됐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그가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 말조차 또 다른 ‘관계의 조율’ 방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다.
나는 더 이상,
그의 말에만 반응하며 내 마음을 지우지 않는다.
이제 나는
그의 언어를 관찰하고,
그 감정의 구조를 기록하는 사람이 되었다.
#모사꾼이라불린날 #감정의전환 #말의침묵 #감정대화 #조용한저항 #나는기록한다 #권력과감정 #브런치수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