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할 것 없는 초겨울의 오후였다. 대학입시 업무를 마치고 동료들과 뒤풀이를 가는 대신 그곳으로 향했다. 지난여름, 동네 청년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자며 의기투합했던 시간들이 서려있는 곳. 우리 동네 청년연구소.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들르지 못했던 터라 발걸음이 살짝 무거웠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소장이 생글생글 반갑게 맞아주었다. 미안한 마음과 감사함이 교차했다. 간단한 안부와 함께,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소소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이전에 보지 못했던 진열장 하나가 눈에 띄었다. 색은 좀 바래었지만 고풍스러운 풍격을 뽐내고 있었다. 진열장에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카메라들이 놓여있었다.
궁금해 물으니, 요즘 저 필름 카메라를 활용해 사진을 찍고 찍은 사진은 다시 인스타그램에 올린다고 했다.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핸드폰을 꺼내 자신의 계정에 올려놓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제법 잘 찍었다. 사실 눈에 들어오는 사진들보다 그의 다음 말이 내 귀를 솔깃하게 했다.
“요즘, 필름 카메라 판매를 통해 월 천만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어요.”
“뭐라고요?”
나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다음 화제는 인스타그램으로 정해졌다.
연구소를 나오며 나도 모르게 마음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월급쟁이 생활이 뻔한 지라 소소한 부업거리를 찾던 내게 이 소식은 가슴 뛰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어떻게 월 천만 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지?’, ‘도대체 인스타그램이 뭐 길래?’
예전에 학생들의 성화에 만들어 놓고는 1도 신경 쓰지 않았던 인스타그램 계정을 꼼꼼히 연구하기 시작했다. 정사각형의 다채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샵, 음식, TV 및 영화, 여행, 애완동물, 음악 등등 테마별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신세계였다. 이게 바로 월 천만 원을 만들어낸다는 그 보물 상자였다. 나는 이걸 활용해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잘할 수 있고, 쉽게 지치지 않을 만한 아이템이 필요했다.
궁리 끝에 신춘문예에 도전했던 경험을 밑천 삼아 시를 써보기로 했다.
마음이 정해지자 전화통화, 카카오톡 메시지 보내기, 사진 찍기가 전부였던 내 핸드폰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문득문득 뭔가 떠오를 때마다 핸드폰 메모장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언어로 세공했다. 네이버 어학사전은 세공장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잠깐 떠오른 것들을 다시금 꺼내 끼적거리니 한 편의 시가 됐다. 그리고 그 시는 곧바로 인스타그램에 올려졌다.
메모장은 종종 나를 멍하게 만든다. 분명히 무언가를 쓰려고 메모장을 열었는데 막상 쓰려고 하면 그 무언가를 잊어버리고 다른 내용을 쓰곤 한다. 며칠이 지나서야 그날 진짜 쓰려고 했던 것이 생각나곤 한다.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잠시라도 무언가를 쓸 수 있음이 좋다. 스스로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호젓한 공간과 시간이 좋다. 가만히 몇 번 돌아볼 수 있는 하찮은 순간순간들이 새라 새롭게 다가온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이 즐거움을 왜 즐기지 못했을까 의아할 정도다.
최근에 한 지인을 통해 “글 그램”이라는 앱을 알게 됐다. 이 앱에는 아름다운 배경 사진에, 내 사진에, 컬러 배경에 글을 쓸 수 있는 기능이 있다. 나는 요즘 “글 그램”의 다양한 기능을 활용하여 메모장에 적어 두었던 시를 채워 넣고 있다. 시구에 걸맞은 배경 사진을 찾고, 그 배경 사진에 시를 채워 넣는다. 왜 예전에는 이런 유용한 앱이 눈에 띄지 않았을까 싶게 기발하고 유용하다.
이 일련의 행위는 단순히 생계를 위해서 일하는 것과는 다른 재미와 설렘을 준다.
가슴 한 귀퉁이에 걸려있는 이야기. 그 이야기들의 작은 입자들이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유영한다. 생각이, 사람이, 어느 한순간이 글쓰기라는 자장 주위를 맴돌며 조그마한 파동을 일으킨다. 그 파동에 이끌려 그것들을 한데 모아 조물조물해본다.
생각은 마냥 분주하고 일상은 여전히 따분하다. 그 지난한 일상을 메모장에 담아내고 아름다운 배경 사진에 채워 넣는다. 그럴싸하다. 이 그럴싸한 일련의 과정이 설렘이 된 지 오래다. 요즘 이 설렘은 내 일상에서 어찌할 수 없는 것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함부로 설레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