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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석 Oct 24. 2024

레드 콤플렉스 7화

도시의 Delight(1)

이후로 매일같이 지하철에 올랐다. 늘 같은 시각, 같은 역, 같은 칸이었다. 점심시간만 되면 교실의 외딴 섬에서 도시락을 먹고, 뛰쳐나가듯 학교를 나왔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단 교문에는 수위 아저씨가 있었다. 처음에 그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멍하니 교문을 향해 뛰어가는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 내 몸이 교문을 빠져나간 뒤에야 다급하게 ‘이봐, 학생!’하고 외쳤다.


그런 날이 며칠 이어지자 이번에는 온 몸을 던져 나를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나는 그의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는 빨랐고, 건장했다. 그가 아무리 긴장하고, 마음을 굳게 먹는다고 해도 쉽게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자 그는 교문을 닫아버렸다. 교사들이 점심 식사를 위해 차를 타고 학교를 빠져나가야 했으므로, 그 일은 제법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는 일단 내가 점심을 다 먹고 난 뒤에야 탈출을 시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어느 정도 교사들이 빠져나간 뒤에 교문을 닫았다.


그래서 나는 담을 넘었다.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수위 아저씨는 담을 넘는 것까지는 방해하지 않았다. 그가 제지해야 하는 행위의 범주는 오로지 교문 인근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점심시간마다 학교를 빠져나가는 이상한 녀석이 있다는 소문은 그가 교문을 닫은 후에도 계속되었다. 내 탈출 시도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모를 리 없었다. 그가 나를 막아 섰던 것은 방황하는 청소년의 일탈을 막는 게 아니었다. 교문이라는 규정된 그의 영역을 사수하는 것. 정해진 시간, 정해진 사람만 드나들 수 있도록 관리하는 그의 역할과 임무를 다하는 것만이 그의 목표였던 것이다.


그 다음 껄끄러운 사람은 담임이었다. 처음 지하철을 타고, 그녀를 만났던 날, 교실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7교시도 끝나고 청소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교실로 돌아온 나는 그 자리에서 담임과 마주쳤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 그는 칠판 앞에서 트레이드 마크처럼 늘 들고 다니던 반 토막 난 대걸레 자루를 왼쪽 겨드랑이에 끼운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교실로 들어오는 나를 보자, 그는 아무 말 없이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그리고 내가 다가오자 또 아무 말 없이 대걸레 자루로 툭툭, 내 종아리를 건드렸다. 종아리를 걷으라는 신호였다.


그는 늘 말을 아꼈다. 수업 시간에도 농담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반드시 수업 내용에 필요한 말만 했다. 수업 시간이 아닌 경우에는 반드시 전달해야 하는 말만 하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이 떠들면 칠판이나 교탁을 큰 소리가 나도록 몇 차례 두드렸고, 매를 들 때면 대걸레 자루로 맞을 부위를 툭툭, 치곤했다.


나는 그의 지시에 별 감정 없이 종아리를 걷고, 칠판을 잡았다. 맞아도 별로 아픈지 모를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몸에는 아무 감각도 없었고, 머릿속은 멍하기만 했다. 그러나 막상 맞고 보니, 그의 매는 매우 아팠다. 단 한 대에 무릎이 크게 휘청했고, 무릎을 필 새도 없이 두 대째의 매가 종아리를 후렸다.


순식간에 머릿속을 채웠던 치유의 음악보다도 강렬한 느낌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고, 온 몸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담임은 그렇게 세 대를 때렸고, 매를 다 때린 후에는 아무 말도 없이 교실을 나갔다. 그날의 나는 담임이 내 상황을 생각해서 몇 대 때리지 않고, 심하게 꾸짖지 않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은 그에게 고마웠다. 세계에서 버림받은 내게는 측은지심의 마음씀이마저 고맙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건 내 오해였다. 그 전까지 나는 그에게 딱히 맞을 일이 없었다. 축구부였으므로, 나는 성적으로 맞을 일은 없었다. 말이 없고, 아이들과 시끄럽게 어울려 다니는 일이 없었으므로, 생활에서도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담배를 피우긴 했지만, 그것도 최근의 일이었고, 소지품 검사는 관례상 운동부원들이 훈련 중일 때만 이뤄졌다. 때문에, 나는 그의 매의 법칙을 모르고 있었다.


다음 날 다시 학교를 나갔다 돌아온 나는 네 대를 맞았다. 그 다음 날은 다섯 대를 맞았다. 그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청소 시간에 교실로 들어와 나를 때리고, 그냥 교실을 나갔다. 그제서야 누군가 내게 일러줬다.


처음은 무조건 세 대야.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아마 소년원에 갈만한 잘못을 해도 처음이라면 그걸로 끝날 걸. 그러다 그 잘못이 거듭되면 한 대씩 늘어나는 거야. 얼마나 큰 잘못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야. 나는 그제야 왜 우리 반이 늘 전 학년에서 가장 높은 평균 점수를 받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담임은 나의 탈출에 관해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나를 나무라지도 않았고, 상담을 하려 하지도 않았다. 수위 아저씨처럼 내가 나가지 못하게 막지도 않았다. 그저 매일 한 대씩 늘려가며 매를 때릴 뿐이었다. 냉정하고, 잔인한 사람이었다.


그런 담임도 나를 막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의 매는 내게 새로운 탈출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그의 매는 단순히 대수가 늘어날 뿐만 아니라, 강도 또한 점차 올라갔다. 열 대를 넘겼을 때는 정말 학교를 빠져나가는 것이 두렵기까지 했다. 인간이 맞을 매가 아니었다. 게다가 아이들에게 듣기로 매일 대수가 늘어나는 그의 매는 학생의 잘못이 멈추기 전까지 먼저 멈추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오기가 생겼다. 굴복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둘 다 미친 거 아니야? 애들은 수군거렸다. 덕분에 내게는 별명도 생겼다. 마루타. 애들은 나를 생체 실험의 대상으로 여겼다. 과연 인간은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이를 악물고 그의 잔혹한 실험을 견뎠다. 매를 때릴 때의 그 냉정함과 무심함. 그가 때리는 매의 강도가 점차 세지는 것은 커져 가는 분노 탓이 아니었다. 순전히 그가 만든 매의 법칙 때문이었다. 기계적으로 수와 강도가 변화하는 그의 매에서는 약간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반항을 꺾지 않는 학생으로 인해 손상된 자존심, 자신을 시험하는 상대에 대한 미움 따위도 없었다.


그런 그의 태도는 냉정하게 나를 내친 세계를 떠올리게 했다. 나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 무심한 태도. 정해진 절차와 임무이기에 그저 수행할 뿐이라는 듯 냉정한 표정. 소름이 끼쳤다. 그래서 나는 버텼다. 그리고 결국 스물 세 대를 맞고 짝꿍의 등에 업혀 버스에 오르던 날, 마침내 그와의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담임은 정해진 스물 세 대를 다 때리고 그의 트레이드마크를 교실 구석으로 집어던졌다. 두 눈은 이글이글 타고 있었고, 마침내 그의 입에서 말이라는 것이 나왔다. 네 맘대로 해, 이 새끼야.


나는 그의 분노라는 감정과 처음으로 매를 때리던 자리에서 뱉어낸 그 한 마디 말을 백기처럼 자랑스럽게 받아들였다. 그 뒤로 그는 내 탈출에 대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내게는 학교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고, 그에게는 그런 학생을 잡기 위해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다.


수위 아저씨와 담임 말고도 나를 제지하려 드는 사람은 많았다. 학생 주임은 종종 점심시간에 맞춰 나를 감시하기 위해 교실로 찾아왔고, 교장은 세번쯤 나를 교장실로 불렀다. 축구부 감독과 제법 많은 선생님들이 자칫하면 퇴학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협박했다. 그래도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설득했다. 그럼에도 내 탈출은 학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다행히 퇴학은 당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출석 일수가 부족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외에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동정심. 축구부에서 쫓겨나면서 완전히 미래를 잃어버린 나를 향한 어른들의 동정심이었다. 어쩌면 세계의 냉혹한 법칙에 따라 나를 먼 바다로 내몬 그들의 마지막 양심, 혹은 죄책감일 수도 있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제 그들은 내게 완벽한 ‘누군가’일 뿐이었다. 그들의 시선과 태도는 내게 오키나와만큼이나 멀고도 무의미한 것이었다. 나는 그저 담임의 마지막 매를 끝으로 완벽한 자유를 얻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힘들게 오른 지하철에서, 나는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가, 그녀의 워크맨에서 재생되는 그의 목소리가 그리웠다. 사실 그것은 위로 이상의 무엇도 아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내 삶에 어떤 해결책도 되어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위로가 간절히 필요했다. 그 상태로 그냥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의미 없는 삶이 힘들었다. 어쩌면 언젠가 우주 멀리 떨어진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기 위해 마지막 수단을 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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