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

by 바람꽃 우동준

눈으로 보았던 세상은

많은 것이 비어 있던 세상


눈을 감고 더듬더듬


투박한 손으로 만졌던 세상은

그 모든 게 가득 찼던 세상


세 걸음만 다가갈 수 있다면

빈자리에 숨어있던

지저분한 마음과


세 걸음만 다가갈 수 있다면

감춘 게 들킬까 지레 겁을 먹은 아이가

힘껏 몸을 움츠리고 있음을

알 수 있을 텐데



alexander-possingham-nb04de6m0rM-unsplash.jpg



하지만

비어있음을 허락하지 않던 공기는

하나가 사라지자

지금의 거친 방식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던 모양의 마음을 만들어내어


처음부터

이것이 내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공허의 자리엔 공허가 놓여야 했는데.


허공의 수면만은

내가 지난밤 보았던 그 모습처럼

작은 미동조차 없이 잔잔하게

아주 잔잔하게 흐를 수 있어야 한다


신중히 밤을 덮자

지금의 질서가 깨지지 않도록



daniel-jensen-tCyyySlFNZs-unsplash.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