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신분석에 관한 영화를 몇 편 보았습니다. 저는 심리학과 출신은 아닙니다만 정신분석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영화 소재로서도 아주 흥미로운 소재이기 때문에 많은 영화가 정신분석을 소재로 제작되었습니다. 특히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활발하게 제작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기말의 불안한 분위기 탓인지, 아니면 그만큼 인간의 심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몇 가지 영화 속의 정신분석에 대해서 몇몇 영화를 예시로 들어서 설명하겠습니다. 단, 제가 계속해서 말씀드리는 정신분석이란 흔히 말하는 정신병을 포함한 상담치료, 몽유병 등을 포함한 넓은 범위의 정의라는 것을 전제하겠습니다.
정신분석, 적어도 프로이트와 융을 대표로 하는 상담심리는 비과학적이라는 공격을 꾸준히 받아왔습니다. 최근에는 상담심리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그런 논란이 많이 없어졌다고 생각되지만 200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공격은 심심치않게 발견할 수 있었으며, 상담을 받는다는 자체가 이상한 사람의 증명처럼 생각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정신분석학에서 연구의 주재료인 환자의 꿈이나 기억은 물리적 실체가 아니므로 측정이 불가능하다....(중략)....꿈에 대한 모든 해석은 꿈을 꾸고 난 후에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 해석이 정확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얼마나 그럴듯하게 보이느냐 하는 것뿐이다. 또한, 꿈은 환자가 잠든 상태에서 겪는 매우 사적인 경험이다....(중략)...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정보의 왜곡이 있었는지, 심지어는 꿈을 꾼 것 자체가 사실인지 아닌지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단이 없다.
자유연상을 통해 환자가 보고하는 기억이나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정신분석가가 할수 있는 일은 단지 그것을 사실로서 믿는 것뿐이다. 즉, 정신분석은 분석가의 관찰이 아닌 믿음에 기초를 두고 있다.
임기영, 「꿈의 해석이 과학적 연구의 주제가 될 수 있는가?」, 『한국의 교양을 읽는다 1 종합편』, 휴머니스트 중
그러나 이 과정에서 '무엇이든 설명할 수 있는' 정신분석학 이론의 모호함에 실망하게 된다.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물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싶은 욕구로 설명하고, 같은 상황에서 물에 뛰어들기를 주저한 사람은 열등감의 결과로 설명하는 아들러의 이론은 어떤 경험적 사실이 등장해도 틀린 것으로 판명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것이었다.
김동원 외,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 한양대학교 출판부 중
영화 속에서 정신분석 역시도 과학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드뭅니다. 영화 속에서 정신분석이 등장하는 장르 중에서 두 가지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호러와 스릴러인데 호러일 경우에는 피험자가 가지고 있는 정신병이라는 기질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스릴러의 경우에는 정신병자인 범인을 주인공이 찾아내서 제압하는 내용과 정신과 전문의 혹은 그에 준하는 엘리트가 정신병자라고 주장하는 범인의 실제 여부를 증명하는 내용으로 나누어져서 나타납니다. 사실 호러는 크게 살펴볼 필요가 없습니다. 괴물이나 귀신이 정신병자로 바뀌었을 뿐이니까요. 정신분석이 가지고 있는 비과학적 특징은 당위성을 부여하기 어려운 적대자의 행위를 납득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스릴러의 경우는 재미있습니다. 스릴러는 서사 전체에 규정하는 수수께끼를 풀어야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탐정 영화입니다. 질베르 뒤랑에 따르면 탐정 이야기는 영웅 서사의 후계자 중에 하나입니다.
귀스도르프가 그랬듯이 "현대 민담에서 가장 특이한 양상들 가운데 하나를 이루고 있는 추리소설은, 더 옛날에는 기사도소설에 영감을 주었을 무협소설의 발상을 탐정과 범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결투의 외양 아래 물려받은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돈키호테는 유행에 뒤지지 않고 영원한 정신에 의해 여러 시대를 거쳐 계속 이어져 내려온다. 이런 식으로 셜록 홈스는 성 게오르기우스의 직접적인 계승자가 되고, 메그레는 성 일레르의 유산을 상속받는다.
- 질베르 뒤랑,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문학동네 중
영웅 서사는 결국 '주인공(히어로)이 악당(괴물)을 물리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상징적으로는 비합리적이고 두려운 것을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빛의 체제로 편입시키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탐정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흑막(어둠)속에 있는 어떤 범인(괴물)을 논리적(로고스)으로 밝혀내어 세상(빛)에 밝히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면에서 영웅 서사와 탐정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그리고 이들 이야기에는 괴물이나 악당 같은 적을 필요로 합니다. 호러와 스릴러의 분기가 이 적이 어떻게 나타나는냐입니다. 호러가 적대자가 누구인지 드러나있다면 스릴러에서는 적대자를 찾거나 적대자를 물리칠 수 있는 무기를 찾아야 합니다. 앞서 영화 속에서 적대자는 종종 정신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등장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주인공은 등장인물들 중에서 이 적대자를 찾아야 합니다. 혹은 적대자를 물리칠 수 있는 무기를 찾아야 합니다. 신화 속에서는 특별한 힘을 가진 무기이지만 현대의 스릴러 영화에서는 '진실'이 무기입니다.
영화속에서 주인공이 알아내야만 하는 '진실'이 적대자를 물리칠 수 있는 무기가 됩니다. 예를 들면, 이 범인의 범행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같은 것이 되겠네요. 저는 이 '진실'이라는 무기를 아주 흥미롭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제 '진실'은 적대자를 물리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 적대자가 진짜 적대자인지 밝혀야 하는 의무까지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현대법에서는 범죄에서 의도 여부와 불가항력을 굉장히 중요시합니다. 그리고 정신분석학은 의도가 없이 불가항력으로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몽유병입니다. 따라서, 밝혀진 범인이 몽유병이 있다고 주장할 때 실제 여부를 증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위 사진인 <사이드 이팩트>와 <패션, 위험한 열정>에서 살인범들은 모두 몽유병이 없는 사람들이지만 약으로 인해 몽유병 증상을 보였고 그 결과 살인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진짜 몽유병 증세로 인해 죽인 것인지를 밝혀내는 것이 주요한 서사의 목표입니다. <사이드 이팩트>는 뱅크스라는 에밀리의 의사인 주인공이 있기 때문에 전형적인 탐정 이야기의 구조를 따라갑니다. 하지만 <패션, 위험한 열정>에서는 살인범인 이사벨의 행적을 3인칭 시점에서 쫒아갑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탐정 이야기의 구조를 따라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여전히 이사벨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무기가 됩니다.
그리고 이 두 영화 모두 영화 전체를 덮고 있는 건 정신분석학이 가지고 있는 알 수 없고 비과학적인 어떤 것입니다. 이 것은 오컬트나 초자연적인 현상과 같은 분위기를 영화 전체에 깔아놓아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이 분위기는 <나를 찾아줘>와 같은 현실적인 스릴러 영화와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호러 영화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를 정제하여 보여준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정신분석학의 비중이 커질 수록 이러한 몽환적이고 알 수 없는 분위기가 커지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것은 정신분석학이 가지고 있는 비과학적이고 알 수 없다는 특징이 초자연적인 것과 맞닿아있기 때문에 비슷한 효과를 연출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 정신분석학이 영화, 특히 호러 영화와 스릴러 영화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 지 살펴보았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봤던 점은 외국에서는 이런 영화가 적지 않은데 한국 영화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왜그럴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다보니 저희 나라에서는 폭력부터 성범죄, 살인까지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우울증부터 심하게는 조현병까지 정신병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정신분석학이 가지고 있는 초자연적이고 비과학적인 특징이 부각되는 영화가 나오기 어렵겠지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정신분석학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힘을 활용한 영화는 스릴러 부분에서 독특한 위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영화를 우리나라 영화로는 볼 수 없다니 아쉽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