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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영 Dec 31. 2021

굿바이, 서른

2021년 서른살 마지막 날, 집 앞 카페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서른 살이다. 그리고 한 번의 밤을 지새우면 만 나이로는 이십 대라는 너스레도 떨 수 없을 나이가 된다.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에서 서른은 굉장한 의미를 갖는다. 어른의 분기점이랄까. 어릴 적 막연히 그려본 서른 살은 결혼은 물론이고 자가 아파트에 살며 딸 둘을 키우는 아줌마였다. 나 때는, 주변 어르신들과 매체가 생각하는 서른 살의 상징성이 있었다. 인생의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며 더 이상 젊지 않은 나이. 현실의 체감 나이는 과거와 다르다고 하지만 관습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서른이 다가올수록 왠지 모를 압박과 공포가 느껴졌나 보다.


실제로 먼저 서른 살이 되어 본 사람의 증언을 들은 적이 있다. 첫 증인은 첫 직장의 팀장으로 인생에서 이룬 것이 없다고 극도의 우울감을 호소했다. 같은 선 상에서 서른 살이 되자마자 차, 오토바이, 명품백 등 고가의 물건을 산 언니 오빠들도 꽤 많다. 자신들의 이십 대가 헛되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하여.




그러나 막상 서른 살이 되니 허무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열심히 살뿐. 다른 점이라면 올해는 이직을 하여 커리어의 초고속 성장을 할 수 있었고, 회사를 옮기기 전 8월 한 달 간을 푹 쉬며 자기 충전 시간을 가졌다. 증언만큼 우울이나 좌절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없었지만, 이십 대와 확연한 차이점이 몇 가지 있다.



#1. 체력 저하

원래도 운동을 좋아한다거나, 여기저기 나돌아 다니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놀러 가면 하루종일 걸을 정도는 됐었다. 그러나 지금은 밖에서 3시간만 돌아다녀도 금세 체력이 방전된다. 회사에서 졸은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점심 이후면 어김없이 피곤이 쏟아진다.


소화도 잘 안된다. 곧 마흔을 바라보시는 팀장님 자리에 소화제가 박스로 쌓여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조금만 잘못 먹어도 체하고, 꾸르륵 소리 나기 일수다. 이제 배가 안 고파도 시간 되면 밥을 먹어야 하는 나이라고 하던데. 정해진 시간에 자고, 일어나고, 먹는 규칙적인 생활이 필요한 신체 나이가 됐다는 걸 비로소 느낀다.



#2. 인간관계 정리

스무 살의 나와 서른 살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어릴 적 나는 정체성이 없었다. 삶을 드라이빙하는 도중에 있었고 그래서 참 다양한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다. 그리고 그땐 사람(정확히는 사람이 가진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그래서 어떤 판단없이 어울리기 좋아했었다.


서른이 되니 나와 맞지 않는 인간관계는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구태여 각 잡고 "우리 이제 그만 만납시다." 선언하지 않아도,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과 가치관이 성립되면서 길을 달리 하게 된 모양이다.


이제 나는 나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고, 삶에서의 우선순위와 되고 싶은 인간상이 무엇인지. 친구도, 연애도 끼리끼리라는 말. 내내 잔인한 말로 들렸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삶의 진리가 녹아든 문장이다. 나와 비슷한 환경 속에 있어야 진심 어린 소통이 가능하니까.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사람도 가려 사귈 줄 알아야 한다. 진정한 인연과 스치는 인연을 구별해야 하며, 이를 혼동해 생긴 상처는 미성숙의 업보다.



#3. 안정감

이십 대의 내 마음 상태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불안"이다. 나는 늘 예측불가한 미래가 불안했고, 그래서 롤러코스터에 탄 사람처럼 긴장했다. 불안의 가장 큰 요인은 "일"이었다. 5년간 나의 밥벌이 수단은 디자인이었는데 직장인일 땐 상식 밖으로 적은 연봉과 똥군기로 힘들었고, 프리랜서일 땐 사람 상대와 불안정한 수입으로 점점 미쳐갔다.


서른의 나는 안정적인 대기업에서 근무 중이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보수적인 걸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평균 나이가 마흔은 가뿐히 넘길 금융에서. 입사 초 동료들의 애기 취급에 불만이 많았지만 점점 안정감이 느껴진다. 보수적이라는 건 거의 바뀌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지옥같은 환경이라면 영원히 지속될 고통에서 벗어나는 게 정답이겠지만, 현재 회사는 나름의 워라밸과 고연봉이 보장되는 편이다.


새삼 느끼지만 경제적 안정은 심리적 안정에 매우 큰 부분이다. 이십 대의 대부분을 차지한 이유모를 불안과 열등, 우울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옅어졌다.



#4. 매우 바쁨

다 제치고 일 만해도 하루의 8시간 고정이다. 출퇴근 시간, 야근까지 고려하면 일 이외의 것들은 사살상 불가능이다. (대한민국 워킹맘, 워킹대디 정말 정말 존경한다.) 나는 주말도 거의 일에 관련된 것들을 하는 편인데, 굳이 일이 아니라도 헛된 시간을 안 쓰려고 노력한다. 관심 없거나, 이득이 없는 것에 단 1%의 리소스도 쓰고 싶지 않다.


자꾸만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께서 종종 우스갯소리로 너네 집안은 대대로 육십에 단명하니 너는 인생의 절반을 산 셈이라고 놀리는데, 설사 백 살까지 장수한다 치더라도 서른은 그중 삼 분의 일에 해당하는 높은 비중이다.


나보다 연세가 많으신 부모님과의 시간은 더욱 짧을 것이며, 결혼하여 아이라도 낳으면 자매, 친구와의 시간도 극도로 단축될 것이다. 실제로 몇몇 죽음을 경험하며 마음속에 선명하게 각인된 것 같다. 인생은 매우 짧으며,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하고 싶은 일은 지체 없이 하고, 싫은 일은 되도록 피하는 게 상책이다.



#5. 연애

나이가 들수록 대부분의 것들이 쉬워지는데 연애만큼은 아닌 것 같다. 비혼주의자가 아닌 이상 결혼까지 고려하므로 성품, 외모, 직업 등 생각할 요소가 많아진다. 예전엔 좋아하는 정도가 2~40%라도 일단 만나며 알아가는 시간을 갖았다면, 지금은 80% 이상이어야 지속 가능하다.


연애 외에도 할 게 많기 때문에 굳이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와 만날 이유도 여유도 없다. 시작은 쉽고 끝이 어려워야 하는데, 나는 정확히 반대로 하는 중이다. 솔직히 말하면 연애가 귀찮다. 연애는 많은 비용을 발생시킨다. 돈, 감정, 시간, 체력. 이 모든 소비가 의미를 갖기 위해선 사랑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나의 것을 나누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 같다. 인정한다. 이건 나의 단점이다. 나는 사랑에 대해 염세적이다. 그러나 내년엔 사람에 대한 희망을 품어볼까 싶다.




이따금 악몽을 꾼다. 꿈속에서의 나는 이십대이며, 순간 "어떻게 살아가지?"라는 의문과 함께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럼 나는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진다. “지금 나는 어디지?” 몽롱한 정신으로 대학교 입학부터 커리어 패스를 한 단계씩 짚다 보면 결국 현재 위치를 기억해내고 안도한다.


서른의 나는 한평생 갖기 위해 발버둥 친 안정을 찾았다. 나이가 준 선물이다. 삶의 장난 속에서 많은 경험을 했고 결국 자기 확신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분명 세상은 삼십 대의 나에게 케케묵은 스테레오 타입을 강요할 것이다. 연애는 언제 할래? 결혼은? 아이는 언제 낳고? 나의 팔다리를 잘라 틀에 맞추길 바랄 것이다. 중요한 건 스스로가 누군지 기억하고, 잃어버리지 않는 것. 단언컨대 서른 한 살도 아주 멋진 해가 될 것이다. 나의 서른이 그랬던 것처럼. 굿바이, 서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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