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배기 스파게티의 저주

by 하나하면둘

이건 조금 생뚱맞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했던 식당이나 카페들은 없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학교 앞에서 파스타를 팔았던 '뚝배기 스파게티'라는 식당이다. 그 집은 말 그대로 크림 파스타든 토마토 파스타든 펄펄 끓는 뚝배기에 담아서 내어주는 곳이었는데, 당시로써는(지금도 그럴 것 같긴하지만) 다분히 혁명적이랄까, 도발적인 면이 있었다. 데이트 코스의 상징이라 할 만큼 느낌 좋은 음식인 파스타를, 국밥에나 어울릴법한 뚝배기에다 내어준다니. 이건 말하자면 철천지 원수인 강백호와 서태웅의 연계 플레이, 혹은 바르셀로나와 레알마드리드의 연합 팀을 연상케 했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과도 손을 잡겠다는 패기와 용단이 엿보인다고 해야할까. 내가 마음에 든 것은 바로 그런 지점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물론 나에게는 맛도 있었다. 뚝배기에 담겨 나와 따뜻함이 훨씬 오래간다는 장점이 있었고, 수분이 좀 날아가 보통 파스타보다 꾸덕꾸덕해지는 독특한 맛이 좋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좋아했던 '뚝배기 스파게티'는 상업적으로는 처참히 실패했던 것 같다. 사실 내가 자주 다닐 때에도 손님이 차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기에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파스타를 주로 찾는 사람들은 당연히 뚝배기보다는 예쁜 그릇에 담긴 파스타를 원했을 것이고, 뚝배기 국밥을 사랑하는 분들은 보통 파스타를 일상적으로 찾지는 않는다. 그러니 뚝배기 스파게티는 나처럼 '아무렴 뭐 어때. 맛만 있는데'하고, 그것이 어떤 장르인가에 대해서는 무심한 소수의 고객들만을 보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보통 대학생 때는 학기 단위로 시간을 세곤 하는데, '뚝배기 스파게티'를 먹었던 시간은 단 한 학기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가의 유행이 금세 바뀌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 정도면 최단 기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 후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사라질 때마다, 속으로 '또 뚝배기 스파게티의 저주군'하고 생각하곤 했다. 2년 정도 대구에서 지내다 서울로 돌아갔을 때에도, 그리고 최근에 다시 대구로 내려왔을 때에도 전에 알고 있던 많은 식당과 카페들이 문을 닫은 것을 보며 뚝배기 스파게티가 떠올랐다. 내 취향이 마이너하다는 생각보다는 '역시 모든 사람의 입맛을 맞추기는 쉬운 일이 아니야. 자영업은 역시 쉽지 않군.'하고 넘어가긴 했지만, 그럴때마다 왠지 마음 한켠이 아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가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해 없어졌을 때에는, 괜시리 내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나만 알고 싶은 @@'이라고 흔히들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단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언젠가 인기가 많아져, 자신의 취향이 옳았으며 또 앞서나가기까지 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을 뿐이다. 인간은 누구나 타인의 동의나 인정을 필요로 한다.



다만, 한가지 다행스러운 점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그 저주가 익숙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처음이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그 다음은 조금 덜 아쉬웠고, 그 다음은 그보다도 조금 더 덜 아쉬웠다. 게다가 살면서 잃어버리는 것이 어디 장소뿐이겠는가. 돌이켜보면 나는 좋아했던 물건부터 직업, 그리고 사람까지도 모두 조금씩은 잃어버리며 살아왔다. 그리고 잃어버린 것의 빈자리에는 어김없이 새로운 장소, 직업, 사람이 들어서 왔다. 그러니 무언가 사라지는 것이 꼭 저주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요즘 마제소바를 즐겨 먹는다. 내가 자주 가는 곳은 다행히 뚝배기스파게티와 달리 인기가 많아 보이지만, 사실 언제 없어질 지는 정말 모를 일이다. 그래도 이제는 그런 걸 그다지 걱정하지는 않는다.



릴케의 벗을 위한 레퀴엠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사랑하는 이들이 연습해야할 것은 하나뿐, 서로를 놓아주는 일이다. 서로를 붙잡는 일은 너무 쉬운 일이라 굳이 배울 필요가 없으니.” 앞으로 놓아주어야 할 것이 산더미일 것이니, 연습도 부지런히 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마제소바는 오랫동안 먹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p.s. 최근에 신문 기사에서 자영업자가 창업한 뒤 3년 간 버틸 확률이 50% 초반 정도밖에 안된다고 하는 통계를 봤습니다. 즉, 3년 이상을 버티지 못하는 가게가 절반이라는 것입니다. '뚝배기 스파게티'의 저주는 저만의 특이한 상황이 아니라 모두가 겪고 있었던 꽤 심각한 사회적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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