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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텍스트 Jun 08. 2022

노마드랜드
(집 대신 차에 사는 사람들)

책을 통한 사색 

줄거리: 안정적인 은퇴 생활을 바라던 중산층들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여파로 인해 빚, 건강, 구조조정 등 여러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면서 집 대신 밴(자동차)으로 거주공간을 옮긴 뒤 저임금 노마드 노동자로 유랑하며 살게 된 그들의 이야기를 한 저널리스트가 노마드 노동자들과 함께 유랑하며 그들의 면면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책이다.     


책: 노마드랜드 / 지은이: 제시카 브루더 / 옮긴이: 서제인 / 출판사: (주)엘리




어느 북튜브가 이야기하는 걸 가볍게 스치듯 들었던 터라 처음엔 소설인 줄 알았다. 제시카 브루너라는 저널리스트가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밀착취재와 자료조사를 통해 완성된 책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줄거리에서도 알 수 있듯 읽는 내내 물기 없는 밤고구마를 물 한잔 없이 꾸역꾸역 삼키는 기분이었다. 소설이었다면 호박고구마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싶지만 앞서 밝혔다시피 이 글은 사실에 기반 한 이야기라서 읽는 내내 충격이었다. 노마드 노동자 이전의 그들은 석사, 학사 학위에, 대기업의 임원이기도 했고, 회계사, 기술자, 관리자, 경찰 등등 소위 “배운 사람” 들이었다. 읽는 내내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그들은 각자의 삶에서 열심히 노후 준비를 했지만, 불안정한 경제 상황에서 맥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한 순간에 미끄러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들과 비교했을 때 제대로 된 노후준비는커녕 지금의 삶도 무엇 하나 명확하지 않은 내 상황이 겹쳐지니 불안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사회는 또 어떤가. 불안정 고용환경과 빈부격차는 미국 못지않고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개인주의는 이기심을 너머 이타심을 위협할 정도로 우려스러울 수준이며, 사회보장 시스템은 너무도 미미 하다. 그러다 아래 구절을 읽으며 다른 사색의 세계로 진입했다.             

  


노마드 대부분은 그 꼬리표를 마치 전염병인 것처럼 피한다. 그들은 어쨌거나 ‘하우스리스’다. ‘홈리스’는 다른 사람이다. 326p.


- 도시에서 밴에 들어가 살면, 사람들은 당신이 홈리스라고 생각한다. 

- 사람들이 당신을 홈리스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당신은 자신이 홈리스라고 느끼기 시작한다. 

- 그래서 당신은 뻔한 위장을 시작한다…‥ ‘정상’으로 보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면서…‥ 327p.



책에서 노마드 노동자들은 법률적 관점에서 그들이 ‘홈리스’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절대 홈리스(사회적 폭력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추방된 사람들, 낙오자들, 타자들, 빈털터리가 된 사람)로 구분하지 않고, ‘하우스리스(기존 주거 형태인 주택, 아파트가 없는)’라고 선을 긋는다. 나 또한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적이 있기에 그렇게 선을 그을려고 하는 그들이 이해가 되면서 부끄럽기도 했고 한편으로, 그들을 그런 상황에 처하게 한 국가 시스템에 분노가 일기도 했다.     


나는 어릴 적 유괴를 당한 경험이 있다. 그 경험 속 OO복지원이란 곳에 오랜 시간 감금되었다. 자식을 찾겠다는 부모님의 헌신으로 온갖 폭행과 인권이 유린되던 그 고통스러운 곳에서 나는 해방될 수 있었다. 그 당시 부모님은 나의 정서적 안정과 일상 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을 해주셨고 그 덕분에 나는 그 시간을 지나올 수 있었다. 그러다 대학시절 우연히 손에 군사정권의 피해를 알리는 책에서 OO복지원 사건을 다시 접하게 되었다. 그제 서야 개인적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아니라, 국가의 용인과 비호 세력의 탐욕이 점철되어, 무고한 시민들의 삶이 파괴되고, 인권이 말살된 사건의 당사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침묵했다.

왜..? 


나는 고작 20살의 평범한 사회초년생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사건은 진실을 밝혀야만 하는 많은 사건들 중 하나였고, 그 내막을 모르는 사회에서는 나는 그저 운 없이 불운한 경험을 한 사람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다. 그리고 어릴 적 부모님의 지인들은 “그런 곳에 있었으면 나쁜 곳으로 빠지기 쉬운데, OO는 구김 없이 밝고 착하게 잘 자란다.”라는 식의 부모님께 건네는 응원의 말들을 통해 ‘아, 그런 곳(?)에 있다 온 아이들은 어둡고, 나쁜 길로 빠지는 게 일반적인 거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그런 사람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나를 옭아매었다. 나는 피해자이기 이전에 그 사회적 편견과 낙인에서 벗어나야 했다. 나는 내 감정과 별개로 더욱더 밝은 아이가 되어야 했고, 그 편견을 넘어서야 했다. 그런데 잊으려 했던 과거를 다시 들춰낸다는 건 다시 그 편견과 맞서야 한다는 것이기에 잘잘못을 떠나 나에겐 공포였다. 그렇게 나는 현재 내 삶을 살아내기 위해 선을 그었다.     


노마드 노동자들의 ‘홈리스’와 ‘하우스리스’의 선명한 선긋기는 그런 두려운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여러 사회적 충격을 피해 가지 못해 비록, 주택과 아파트가 아닌 바퀴 달린 부동산이라 불리는 밴(자동차)으로 주거지를 옮겨 유랑 부족이 되었지만, 그들은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단지 저임금 노동자로의 삶을 선택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가 정의하는 사회적 낙오자, 빈털터리인 ‘홈리스’로 자신을 정체화 한다면, 정말 그런 삶을 살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게 아니었을까. 노마드 노동자들은 두렵지만, 현재의 삶에 충실하며, 삶을 낙관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삶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      


시간이 흘러 용기 있는 분들의 오랜 노력 끝에 OO복지원 사건은 사회적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나 또한 암울한 시기에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을 겪었고, 잊고 싶었기에 잊은 듯이 살고자 노력했다.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를 위해 하루하루 알차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실타래를 제대로 풀지 못했기에 여러 책을 읽다 보면 묵혀졌던 감정들과 책의 글귀들이 맞물려 여러 결의 생각이 피어오른다. ‘노마드랜드’는 책의 내용상 유쾌하진 않지만, 경제생활을 하지 않거나, 완벽한 노후준비가 된 이들이 아니라면, 사회복지시스템을 갖추는데 부정적인인 생각을 하는 독자가 있다면 한번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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