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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텍스트 Jun 19. 2022

활자 잔혹극-루스 렌들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라서)

책을 통한 사색


북 튜버 김겨울 님의 겨울서점 채널에서 김상욱 교수가 책의 첫 문장을 읊으며 추천 해준 책이다.  책의 첫 문장을 듣고는 '읽자!' 싶어 온라인 서점으로 접속했는데 아.. 절판이라니.. 그렇다면! 하는 마음으로 도서관 앱을 켜서 검색했고, 그렇게 책을 대여했다.   

 

유니스 파치먼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에 피커 데일 일가를 죽였다. 5p. 활자잔혹극-루스 렌들





책의 첫 문장이다.


책의 줄거리는 짧게 설명이 가능하다. 독자들이 유니스 파치먼의 성정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사건들과 피커 데일 일가에 입주 가사도우미로 취업하는 과정, 이후 그 일가에서 어떤 내적 갈등들이 충돌하여 살인이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알아가는 소설이다.  결과를 알고 사건을 역순으로 풀어 갈 때의 위험이란 스토리에 힘이 없으면 독자의 시선을 머물게 하기 힘들다는 거다.  저 첫 문장에 흥미가 돋는 이가 있다면 먼저 읽어본 독자로서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차가워. 이상할 정도로 차가워. 그게 아니라면 그저 끔찍하게 수줍어하는 걸까? 61p.


이 책을 읽겠다 마음먹은 건 강렬했던 첫 문장 때문이었지만, 그렇다고 어떻게..?라는 생각으로 책을 읽어 나갔다. 책에서 처럼 나 또한 왜 이렇게 차가운 거야?라는 생각을 했지만, 책을 덮을 땐 죄를 묻기 이전에 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살얼음 판을 걸었을 그녀가 애처롭게 느껴졌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온몸은 경직되고, 몰라도 아는 척. 오직 눈치 하나로 순간순간을 위태롭게 모면하고는 집에 들어섰을 그녀가. 그 차가움은 그 하루들이 덧씌워진 그녀의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기심이란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 자신의 방식대로 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62p.


그렇다면 한국의 문맹률은 어떨까? 다행스럽게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문맹률이 낮다고 한다. 다행이다 싶어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곧 안도해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햄버거 가게만 가더라도 키오스크 기계 앞에서 역정을 내는 사람들을 간간히 보게 된다. 거리에는 한국어인지 외국어인지 모를 혼용된 간판들이 즐비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며 배려 없이 행해지는 정책이나 집단 이기주의 행동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피커 데일 일가는 "그들의 시선"으로 그녀를 대했기에 안타까운 죽음으로 내몰렸다. 나 또한 내가 알고 지식의 저주에 갇혀 "나만의 시선"으로 타인에게 소통 없이 행한 말과 행동이 없다고 어떻게 자신할 수 있을까. 끝 모르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되새기며 글을 적었다. 그리고 책 문장이 적힌 이미지 파일을 만들고는 글 중간중간 보는 바와 같이 첨부했다. 처음엔 이미지에 문장이 적혀있으니 해당 문장은 굳이 적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에 글을 적지 않았었다. 그러다 이 행동이 얼마나 배려 없는 행동이었는지를 깨닫고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몇 명이나 이 글을 읽을까 싶지만, 그럼에도 시각장애인이나 이미지를 확인하기 어려운 분들은 이미지 아래에 적힌 이미지 설명글을 통해 내용을 파악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나만의 시각에 빠져 기록하는 걸 간과해버렸다.

그 위에 핏자국 말고도 무언가 적혀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읽지 못한다. 214p. 활자 잔혹극 지은이: 루스 렌들, 옮긴이: 이동윤, 출판: 북스피어


이 글을 적었지만, 앞으로도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놓친 것들로 인해 오늘처럼 얼굴을 붉힐 일이 많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런 내가 조금은 다행스러운 게 있다면 앞으로도 부끄러움을 아는 자 이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그 마음 때문이지 않을까. 부족하지만 이 글로 인해 활자 잔혹극에 관심이 가는 이가 있다면 당신을 환대로 맞이할 도서관으로 달려가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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