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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텍스트 Jun 26. 2022

'그러라 그래-양희은 에세이집'

책을 통한 사색

요즘 업무에 정신을 쏟다 보니 진득하니 책과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이 답답했다. 시간에 쫓겨 찔끔찔끔 책을 읽는 게 못내 아쉬워 자전거 출퇴근 시간에 오디오북이라도 듣자 싶어 밀리의 서재 한 달 구독을 시작했다.  출퇴근 시간 가벼운 마음으로 듣기 좋은 책을 찾다 아래의 책을 펼쳤다.



그러라 그래-양희은 에세이, 출판사: 김영사



책은 양희은 님의 지나온 삶과 노래 그리고 현재 진행형 이야기를 풀어낸 에세이집이다. ‘그러라 그래’라는 제목에 딱 어울리는 정도의 넉넉함과 담백함, 따스함이 적절히 배어 있다. 그런데 잔잔한 이 책에 나는 왜 자꾸 눈이 시려지는지 모르겠다. 오디오북은 양희은 님의 음성과 귀에 익은 연예인, 성우분의 감칠맛 나는 목소리가 더해져 듣는 내내 라디오 사연을 듣는 것 마냥 편안했다. 낭독 음성에 귀 기울이며 페달을 밟아나가다. ‘쉰여덟 나의 기도는’ 편을 듣다 양희님의 어머니가 딸을 위해 하셨다는 기도를 들으며 나는 깊은 상념에 젖어들었다.



내 나이 서른 일 때 우리 엄마의 기도는 “이 아이만 살려주시면 내 눈을 가져가셔도 좋겠습니다” 였단다. 내가 석 달 남은 시한부 인생일지도 모른다는 병원 측의 말을 듣고 밤새 올린 엄마의 기도다.- 44p. '그러라 그래' 전자책-양희은. 



"제 아이를 찾아주시고 저를 데려가세요”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가 OO복지원에 갇혀있을 때,  어머니는 자식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전국을 누비며 하루에도 몇 번씩 되네였던 기도였다 하셨다. 자식이 차로 2시간 거리에 갇혀있는 줄 알리 없는 부모님은 아동 실종 신문광고를 냈고, 나와 같은 이름이 있는 곳이라면 전국 고아원 어디라도 찾아 나섰다고 하셨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길 없는 애타는 현실 앞에 '살아있다'는 그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 유명하다는 점집도 여럿 찾아다니셨다 하셨다.  그 속이 오죽했을까.. 그 타들어가는 긴 시간을 어머니는 견뎌내셔야만 했다. 그러다 그곳의 비리가 여러 차례 사람의 생명까지 앗아간 일들이 수면 위로 오르면서 천신만고 끝에 부모님은 자식을 찾았다. 어머니는 언제인가부터 느꼈던 가슴의 통증을 그제야 확인하기 위해 찾았던 병원에서 유방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수술 성공확률 50:50, 수술을 하지 않는다면 주어진 삶은 6개월 정도라는 말과 함께. 어머니는 자식도 찾았는데 병도 이겨낸다 하셨고, 치료와 민간요법을 병행하며 수술은 하지 않는 선택을 하셨다. 그리고 5년을 씩씩하게 살아내셨다. 그러나 대신할 수 없는 어머니의 고통을 옆에서 고스란히 지켜보며 "최초에 나만 유괴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극도의 스트레스만 받지 않았더라면, 아니 내가 태어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고생만 하다 돌아가시진 않았을 텐데.." 하는 죄책감이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다. 



양희은 님이 어머니께 건네는 애정 담뿍 담긴 타박 같은 말투 " 엄마,  하나님하고 협상하는 거야? 두꺼비 집 짓기야? 헌 집 줄게 새집 달라고? 기도하는 방법이 틀렸어. 엄마 눈이 하느님한테 무슨 소용일까? 엄마 한 테나 중요한 거지!”- 44p. '그러라 그래' 전자책-양희은. 


그러게나 말이다. 양희은 님의 말씀처럼 우리 어머니의 목숨도 신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 텐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자식 찾기에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았던 어머니의 맹목적인 기도에 신은 그 무모하고 간절한 마음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셨는지도 모르겠다.  




긴 세월 죄책감에 짓눌려 제 상처 보듬기도 버거워했는데.. 영원히 끝나지 않을 죄책감의 굴레를 넘어서고 보니,  이제와 온전히 기도 속에 담긴 어머니의 가늠할 수 없는 사랑에 목이 멘다. 어머니가 아프지 말고 평안하게 10년만 더 살아주셨으면 좋겠다는 양희님의 기도를 보며 나도 기도를 올렸다. "다음 생애엔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게 해 달라고." 양희은 님의 넉넉함과 담백함, 따스함이 배어 있는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어서 읽어보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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