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풍요로워지는 과정
낯선 곳이 주는 경이로움이 있다. 이 낯섦이 각인된 기억들은 꼭 생생한 컬러톤으로 시간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는다. 가령 첫 해외여행이 그랬다.
나의 첫 해외 경험은 수능을 치른 한 달 뒤 떠난 뉴욕 여행이었다. 6월 모평을 볼 즈음 항공편 프로모션을 발견한 동아리 친구가 파티원을 모집했다. 보통 앞날이 컴컴한 고3 여름에 지구 반대편으로 뜰 계획을 세우는 수험생은 잘 없다. 그러나 좋게 말해 용자, 나쁘게 말해 돌아이로 정평이 났던 나와 다른 친구 하나는 바로 뉴욕팸으로 조인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모았던 세뱃돈은 그렇게 그의 소임을 다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행은 우당탕탕 그 자체였다. 원하는 대학에 붙어 신나게 타임스퀘어에서 카운트다운하자던 우리 셋은 모두 재수생이 됐다. 기껏 구한 헐값 비행기 티켓은 4분 차이로 놓쳐 훨훨 날려 보냈다. 여행 일주일째쯤 기차에서 잠든 사이 옆 사람이 친구의 지갑을 털어갔다. 하루아침에 타지에서 날거지가 된 친구와 근근이 남은 일주일을 보냈다.
그럼에도 그 모든 고생마저 아름다운 추억으로 미화시킬 만큼 첫 해외여행의 충격은 강렬했다. 빨강 초록이 아닌 하얀 신호등, 하늘 닿을 듯 빼곡한 마천루들, 눈 부시게 빛나던 타임스퀘어 전광판,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것 같던 쉑쉑 버거, 해리포터 기숙사처럼 웅장한 도서관과 캠퍼스, 신기하리만치 멋지고 예쁘고 친절한 사람들, 멀리서 바라본 자유의 여신상. 미드에서만 보던 이 도시에서 마주한 순간순간이 촌구석 토박이에겐 낭만적인 컬러 엽서들 같았다.
낯선 경험이 주는 시야의 확장, 관점의 확장이란 게 그렇다. 인간이 볼 수 있는 빛의 영역은 원래 빨주노초파남보 가시광선 스펙트럼뿐이다. 근데 내가 어떤 신비한 약을 먹은 뒤 갑자기 새나 물고기, 뱀이 보는 가시광선 바깥의 색까지 볼 수 있게 된다면 세상은 훨씬 화려해질 것이다. 비유하건대 새로운 경험은 한 번도 본 적 없던 판타지 장르의 색깔들을 보여준다.
5년 뒤 노마드가 되어 다시 찾은 뉴욕은 여전히 근사했다. 변한 건 나였다. 그 사이 열댓 개 나라를 돌며 나는 신비로운 도시 풍경도 많이 보고, 맛난 햄버거도 많이 먹었다. 오래도록 잊지 못했던 초코 피자를 다시 먹고는 그냥 스모어 맛의 흔한 디저트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실망도 했다. 새로운 경험들이 쌓인 뒤, 나는 이미 이 도시의 경이들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 분별할 줄 아는 인간이 되어있었다.
새로운 경험들이 쌓여 취향을 만든다. 그리고 취향을 잘 가꾼 사람의 일상은 판타지처럼 재밌어진다.
예컨대 좋아하는 운동이 뭐예요? 물으면
"헬스요!"
하고 마는 대신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기억들로 상대를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다.
"요즘은 무에타이가 재밌어요. 아, 예전에는 라틴 댄스에 흥미가 있었는데 요즘은 아프로비트 댄스도 힙하더라고요. 한창 아슈탕가, 빈야사 요가에도 빠졌었는데 지금은 인요가가 편안해서 좋아요. 서핑이랑 스케이트 보딩도 재밌어서 도전 중이에요. 하이킹은 별로 안 좋아했는데 저번에 활화산 한 번 다녀오고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뷰가 너무 장관이라서. 아, 혹시 스노클링이나 스쿠버다이빙도 쳐주나요? 제가 저번에 스노클링 갔다 집채 만한 만타 가오리를 봤는데 혹시 구경하실래요?!"
낯선 경험들이 내 안에 녹아 재밌는 취향들이 생기면, 누군가에겐 내가 낯선 인간, 다채로운 인간, 경이로운 인간이 된다(혹은 투머치토커가 되거나).
한국에선 익숙한 것, ‘국룰’이 편하다. 졸업은 이때 하는 게 국룰이고, 첫 직장은 이 기업이 국룰이고, 연애는 이런 사람이랑 하는 게 국룰이고, 이 나이 땐 이렇게 살아야지 국룰이고, 신발끈은 이렇게 묶는 게 국룰이고.
모두가 국룰을 만들고 국룰에만 수렴하는 사회에서 내 삶은 퍽 삭막해지기 마련이다. 인생에서 스스로 선택한 게 없기 때문이다. 국룰 사회 표준형 인간의 시나리오는 다음 세 가지다.
1.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어요’가 평생의 꼬리표가 되거나,
2. 좋아하는 게 생겨도 남 눈치만 보며 가슴에 묻어두거나,
3. 좋아하는 걸 좇기에 너무 늦었다고 포기하거나.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 남들과 다른 새로운 길 가서 우당탕탕 좀 해보면 어떤가. 내 인생에 나를 위해 커스터마이징 된 게 하나도 없다면, 그 게임을 무슨 재미로 플레이하냐 이 말이다. 삶은 취향이 없을 때 공허해진다.
일상에서 경이가 사라질 때쯤 야금야금 낯선 세상으로 나의 반경을 넓혀나간다.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면 과감해져 보고. 좋아하는 게 생기면 흘려보내지 않고. 그렇게 취향껏 채워가는 삶이 내겐 설레고 남에겐 다채롭다. 그래서 그런가, 요즘은 이 말이 제일 뿌듯하다(그리고 제일 많이 듣는다).
“야 너 인생 재밌게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