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avn Jul 13. 2023

발리는 여전히 살기 좋은 곳일까

노마드 수도들이 변하고 있다


레드오션이 되어버린 노마드 수도들


최근 몇 년 사이 내로라하던 많은 노마드 성지들의 모습이 제법 바뀌었다.


노마드 성지의 개발상은 흔히 소호, 경리단길 예술가 마을의 흥망성쇠와 결이 비슷하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시세 싼 동네에 하나 둘 모여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아름다운 도시로 탈바꿈하듯, 노마드들도 같은 임금으로 선진국 대도시보다 더 나은 삶의 질을 추구할 수 있는 곳에 자연스레 모인다. 그 결과 유럽에서는 포르투갈,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멕시코, 콜롬비아, 동남아에서는 인도네시아, 태국 등이 노마드 수도가 되었다.


문제는 낙후되었던 예술가 동네의 결말이 그렇듯, 최근 노마드 도시들이 젠트리피케이션을 어마무시하게 겪고 있다는 점. 물가가 세 배, 네 배, 다섯 배 터무니없이 올라 로컬은 물론 외국인들마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근 1-2년 사이 온 지구가 다사다난했으니 이유야 꼽을 수 없이 많다.


언택트 트렌드, 리모트 근무의 급부상으로 따라서 불어난 노마드 수

팬데믹 종식 후 보복 소비로 해외여행을 미친 듯이 떠나기 시작한 사람들

코로나19, 전쟁, 미국 금리 인상 등 여파로 시작된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대거 망명


등등. 이 모든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국제 이슈들이 한데 뒤엉켜, 노마드 성지에 수요 공급 불균형 대환장 인플레이션 파티를 만들고 있다.


약 1-2년 전 평균 월 2천 달러대로 생활 가능했던 포르투갈 리스본의 한 달 거주 비용은 현재 4천 달러 이상. 우리나라와 비슷한 물가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택도 없어 보인다. 1) 코로나19 이후 외국 자본들이 미친 듯이 들어와 부동산을 사기 시작했고, 2) 노마드 비자 등 포르투갈 정부의 익스팻(expat) 밀어주기 정책으로 더 많은 외국인들이 들어온 데다가, 3)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유럽 시장에 직격탄을 때렸기 때문.


핫한 노마드 성지로 주가를 올리던 조지아 티빌리시 역시 그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전쟁의 여파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모두 타국으로 도피 이민을 가고 있기 때문. 수도 티빌리시에는 원래 살던 인구만큼 새로운 러시아 피난민들이 들어왔단다. 서울시 인구만큼 북한 사람들이 들어와 서울을 하나 더 세운다면, 어떻게 그 분위기가 이전과 같겠나요.



발리는?


이곳 역시 예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레드오션이다. 가장 큰 이슈는 부동산, 주택이다. 공급은 한정되어 있는데 사람들은 계속 들어오니 수요 쪽 시소가 한참 기울 수밖에. 가파르던 상승세가 몇 달 전부터 좀 안정된 듯 하지만, 1-2년 사이 짱구(Canggu) 중심지 집값은 약 2-3백 퍼센트 올랐다(이때 집을 샀더라면). 코시국 시절 쓰리 베드룸 빌라 렌트할 가격으로 현재는 방 하나 겨우 구할까 말까다. 여전히 한국보다는 싼 편이지만, 그럼에도 발리 외곽 지역과 비교해 봐도 프리미엄이 어마무시하게 붙었다.


많아진 사람 덕에 교통 체증 이슈도 배로 늘었다. 중심가 도로가 차 하나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들이라, 한창 막히는 오후 시간대에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10분 거리를 20분, 30분 땡볕에서 손가락 빨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부지기수다. 실제 거주하는 나 같은 한국인에겐 이게 제일 큰 이슈다. 속 터지니까.


짱구에서 대중교통이란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이다 (출처: IG @thebali.sun)



발리에서 시작되고 있는 변화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해 이미 몇몇 노마드들은 짱구 주변부 지역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북서쪽으로 이동해 새로운 터전을 짓고 있다. 수십 년간 발리의 발전 트렌드가 그랬단다. 꾸따(Kuta), 세미냑(Seminyak) 지역에 관광객들이 몰려와 리조트와 카페, 쇼핑거리가 생겨났고, 그 번화가를 피해 북서쪽 바뚜 볼롱(Batu bolong), 바뚜 메장(Batu mejan) 해변을 따라 노마드들이 하나 둘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핫한 노마드 수도가 짱구(Canggu), 그리고 베라와 (Berawa)다. 어딜 가도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한 이곳은 10년 전만 해도 논과 밭뿐인 촌동네였단다.


현재는 이곳마저 사람들이 미어터져 그 위쪽으로 점점 새로운 동네가 생겨나고 있다. 페레네랑(Pereneran), 세세(Seseh), 께둥구(Kedungu)가 그 예. 아직은 공사가 한창인 조용한 골목길인데, 10년 뒤면 이곳도 어떻게 변해있을지 알 수 없다.


https://youtu.be/g-8XJO5mqGg

여행 유튜버로 잘 알려진 이분도 현재 외곽 지역에 자신의 빌라를 짓고 있는 중



발리 밖으로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밀어주고 있다는 소문 무성한 제2의 발리가 바로 이웃섬, 롬복(Lombok)이다. 10-20년 전 발리와 비슷한 분위기로, 현재는 서퍼들, 신혼여행객들, 트레킹족들, 지구본 돌려보기 좋아하는 나 같은 심심한 노마드들이 찾는다.


사람들이 좀 모여있는 지역을 꼽자면 꾸따(Kuta, 발리 꾸따와 표현 동일), 마타람(Mataram), 셍기기(Senggigi) 정도. 꾸따는 리틀 짱구 바이브, 골목길과 분위기가 짱구와 꽤나 비슷하다. 그 외 논밭과 정글, 해변이 어우러진 자연 곳곳에 숨어있는 힐링 스팟, 리트릿(retreat) 공간들도 몇 군데 있다. 다이빙과 파티의 섬으로 알려진 길리(Gili)도 배 타고 30분이면 간다. 참고로 발리, 롬복 둘 다 제주도 면적의 약 세 배 정도로 덩치가 꽤 되는 섬들이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 더 예뻤던 롬복의 풍경들




결론: 중심지에 점점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만큼, 기존에 머물고 있던 사람들은 터져 나오는 문제들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교통 체증, 환경오염, 주택 부족, 물가 상승 등등(물론 이렇게 지역 자원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 중 하나가 외국인들이기에, 나 역시 그에 대한 책임 일부를 떠안고 있다).


그렇다면 발리는 여전히 살만한 곳일까?


나의 대답은 YES다. 현재까지도 발리는 여전히 주관적인 경험상 노마딩하기 가장 좋은 곳이다. 이국적인 열대우림과 푸르른 논밭, 시원한 바닷가 풍경이 한 폭에 담기는, 힌두 사원의 신비로운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는 길거리에, 야외 카페 테라스에 앉아 코코넛을 마시며 일할 수 있는, 자연과 로컬 사람들과 이곳을 터전 삼기로 한 다른 유목민들과 한데 어우러져 공명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오피스고 집이다.


발리를 몇 달 떠나 여행한 뒤로 발리가 다시 그리워지기 시작한 걸 보아, 시끌벅적한 발리도 나는 당분간은 잘 끌어안을 요량인 것 같다. 일 년 전보다 집을 구하기가 어려워졌고, 스쿠터를 탈 때 매연 연기를 종종 뒤집어쓰게 되지만, 그래도 발리는 여전히 발리다. 천국 5단계에서 4단계로 강등된 느낌? 신들의 섬, 마법의 섬이라고 불리는 만큼, 발리는 뭐가 됐든 사람의 영혼을 끌어들이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앞서 언급한 넥스트 짱구, 넥스트 발리로 떠오르는 곳들은 아직은 빈 캔버스가 많다. 생기 넘치는 길거리와 온갖 밋업, 비치 클럽 파티, 요가 리트릿 등 삶의 질을 높이는 다양한 경험들을 기대하기에, 아직 이 동네들은 조금 지루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발리가 꾸준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면, 향후 5-10년 내에 이곳들도 분명 근사하게 바뀌어 있을 것이다.


다만 오래전에 발리를 방문해서 한산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기억하고 있는 분, 가다 서다를 반복하지 않고 시원하게 드라이브하고 싶은 분, 인파 가득한 곳보단 한적한 자연을 좀 더 선호하는 분들의 경우, 위에서 추천한 새롭게 뜨고 있는 지역들을 시도해 보시길 권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