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나쁜날 #1. 누수

새는 건 물만이 아니었다. 나의 멘탈도 갈기갈기 새어나가고 있었다.

by 평일

살다보면 좋은 날도 있지만 짜증나고 힘든 날이 더 많다.

자고 일어나서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바닥에 놓여있던 노트북 받침대를 발로 차서 발가락뼈가 부러진다거나,

폰을 떨어뜨려서 액정이 깨졌다거나, 택배가 전 주소로 갔다거나 하는 일들.


자기소개서 한 켠에 고난 극복기로 쓸만큼 대단한 불행은 아니지만, 일상을 자근자근 갉아먹는

귀찮고 짜증나는 사건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 하고 검색해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고통 받고 힘들어했던 일이구나 싶었던 것도 있고. 눈물닦으면 다 에피소드 라는 셀럽맷의 말처럼

나도 운수 나빴던 날들에 대해 기록해보려고 한다.




운수나쁜날 1#.누수

새는 건 물만이 아니었다. 나의 멘탈도 새어나가고 있었다.


어느 날 3층에 집주인 할머니에 문을 두드렸다. 집에 물이 샌다고 했다.

가끔 세탁기를 돌리고 나면 바닥에 물이 고여있어서 세탁기가 문제일거라 생각했다.

당분간 세탁기를 쓰지 않고, 세탁기 수리 기사를 부르겠다고 했다.

그 때는 몰랐지.. 그게 고난의 시작인 것을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고, 4일인가를 기다려 나타난 세탁기 수리기사는 바쁜지 세탁기 윗면과 싱크대 밑에 배수관 확인 후 세탁기를 잠깐 돌려보고 세탁기 이상은 아니라고 했다.

좀 더 자세히 봐줄 것을 요구했으나 세탁기에서 물이 새면 물이 많이 새지 조금 새지 않으므로 세탁기는 아니라는 말을 하고 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나는 주말 포함해서 거의 일주일간 빨래도 못하고 있었고, 간간히 올라와서 물이 샌다고 하는 할머니의 말에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누수업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후기 믿고 부른 누수업체, 나에게도 좋은 결말을 남겨줄까?

인터넷으로 몇군데 찾아서 전화, 문자도 해보다가 당근마켓 동네생활에서 후기가 좋은 누수업체를 발견했다.

별점 5개. 7군데에서도 못 잡았던 누수를 한 번에 해결해주셨어요! 등등 간증의 글들이 있었고, 나는 망설임 없이 그곳에 상담을 요청했다. 집주인 아들분한테 문자로 세탁기 업체에서는 이상이 없다고 해서 누수 업체를 부르기로 했다고 보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누수설비업체에서 장비를 가지고 왔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 나는 아랫집에 내려가 할머니한테 누수 탐지하시는 분이 왔다고 알려드렸다.

집주인과 세입자- 물을 떨어뜨리는 집과 떨어지는 물로 고통받는 집 두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누수탐지가 시작됐다.


먼저 보일러를 뜯어서 공압기를 측정하고, 집안을 샅샅히 누수탐지 기계로 조사했다.

옥상과 집을 살펴보더니, 일단은 온수배관이 문제라서 온수배관(새 물이 나오는 곳)을 고쳤다. 고친 이후 공압기로 확인해보니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온수배관은 문제라 일단 고쳤지만 하수배관(사용한 물이 흐르는 곳)이나 옥상 누수, 빗물 누수에 문제면 추가로 탐지와 공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며칠 물이 흐르는지 지켜보라고, 이후에도 물이 새면 다른 원인을 탐지해본다고 했다.

비용은 70만원이 나왔다. 누수공사가 비싼 것은 알지만 정말 비싸구나 느끼던 순간이었다. 내가 먼저 계좌로 보내드리고, 할머니에게는 월요일에 돈을 받았다.


그 이후 물은 새지 않았습니다! 하면 참 좋았을텐데


누수 공사 이후 물은 새지 않았고, 빨래도 집에서 편하게 돌렸습니다. 하고 해피엔딩으로 짜잔~끝났으면 좋았을텐데... 어림 없지! 인생이 그리 쉬울리 없다. 다음주 월요일부터 다시 물이 새기 시작했고, 할머니가 다시 문을 두들겼다. 돈도 비쌌고 왔으면 한 번에 고쳐야지. 사기를 당했다며 화가 나있었다. 누수 100프로 잡아내고 못 고친 적 없다고 하더니 말만 많았다고 역정을 내셨다. 내 집에 들어와서 화장실과 싱크대 배수관 등을 살펴보다가 침대에 앉아서 한탄을 하기도 하셨다.


나는 급 스트레스를 받아 당근에 돈을 얼마 들여서 고쳤는데 친절하고, 앞 뒤로 공압기 수치를 보여주며 설명하고, 온수배관은 고쳤으나, 누수가 계속 되었다 라고 남겼다.


전화가 왔다. 리뷰를 내려달라는 말과 함께 오해라며 설명을 해주었고, 리뷰를 내리지 않을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말도 했다. 그리고 다시 침착하게 누수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긴 통화 끝에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고, 나는 좀 더 친절한 리뷰로 고쳐서 남겼다 검사를 꼼꼼하게 해주었고 상황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온수배관을 고쳤으나 아쉽게도 우리집은 다른 걸로 누수인 것 같다고. 세입자의 경우 누수발생시 집주인과 미리 상의하고, 공사비용이 비싼 누수 특성상 의뢰 전 미리 가격을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팁과 함께.

우리집 주소를 알고 있었으므로 어쨌거나 나쁜 리뷰를 남기는 것이 무섭기도 했으나, 그래도 나처럼 당근리뷰만 보고 부르고 낭패보는 사람이 없길 바라는 마음에 리뷰를 적었다.


물이 새는 건 복잡한 일이다. 나는 눈물이 났다.


누수란 복합적인 것이다.

1. 배수관누수 (온수누수) 온수관이 낡거나 해서 물이 새는 경우. 비교적 간단하게 수리 가능하다.

2. 하수관누수 (사용한 물이 흘러나가는 누수) 윗집과 아랫집에 연결된 하수관에 문제가 있는 경우- 바닥을 뚫고 공사 과정이 더 복잡해진다고 했다.

3. 옥상 누수 : 이것도 또한 공사비용이 몇백이라고..

4. 빗물 누수 : 건물 외벽 검사를 해야해서 일이 커진다.


한 가지 원인일수도 있고 여러가지 원인이 뒤섞여 누수가 될 수도 있다.


이 때부터 나는 고통 받기 시작한다.

1. 원인은 나에게 있다. 내가 부른 누수설비업체이다. 그러므로 한 번에 누수공사를 클리어하지 못한 것에 대해 나는 책임이 있다. (누수업체 부를 때는 집주인한테 그냥 다 맡기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그 때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충동적이고, 생각이 없었지- 반성중이다.)


2. 집주인 할머니와 누수업체간의 입장차이

할머니는 전문가를 불렀으면 한 번에 수리가 되야한다고 생각했고, 70만원은 바가지를 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후에 그 사람이 와서 누수를 무료로 고쳐놓고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누수업체는 재 방문시 출장비부터 수리비가 나간다.


3. 누수업체의 입장

누수는 복합적인 것이라고 설명했고, 할머니는 하수도 누수나 옥상누수는 절대 아니라고 세탁기 문제라고 주장한다. 자기가 추가로 가서 수리해드려도 분쟁이 날 것 같아서 더 이상 작업하기 힘들다.


4. 거기서 고통 받는 나

이 때부터 우리집은 온갖 실험을 하게 되었다. 며칠만 물을 쓰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정말 하수관 문제인지 확인해야겠다고.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스타벅스에 가서 세수와 양치를 한 뒤 브런치를 먹는 생활을 하게 됐다.(마스크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행히 근처 남친집이 있어서 남친 출근 후 그 곳에서 머리도 감고 샤워도 했다. 이게 무슨 난민 생활이란 말이가!


그리고 이 주간 빨래도 못해서 이케아 가방 가득 빨래감을 들고 빨래방에 가야했다.

옆 집에 널려있는 빨래건조대를 보고 부러웠다. 아 왜 하필 우리집에서 물이 새는거야 ㅜ ㅜ


누수로 고통받는 사람들


며칠간 강제 단수를 진행하고, 할머니가 '며칠은 물이 안 떨어지더라' 하면서 물을 다시 사용해보라고 했다.

나는 물을 쓰면서도 마음이 불안했다. 내가 샤워하면 밑에 집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건 아닐까? 하면서. 그래도 당분간 세탁기는 사용하지 않았다. 한 시간동안 물을 쓰고 돌리고 할 자신은 없어서.


누수에 대해 찾아보고 물어봤다.

어떤 사람은 윗층에서 물이 떨어져서 인테리어 업자, 누수업체 몇 번 불렀었는데 친절하게 공사는 해주는데 계속 누수가 되서 스트레스 받다가 그냥 이제 은은한 누수와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블로그에 찾아보니 아파트 누수에 경우 잘잘못을 따지다가 고소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오래된 건물에 경우 누수때문에 철거하는 일도 생긴다고 했다. 누수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 이건 남의 일인줄 알았지. 자취 인생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처음 겪는 일이었다.


동파된 보일러를 드라이기로 녹여보고, 바선생때문에 눈물지으며 약도 뿌려보고, 세탁기 고장, 보일러 고장 등으로 자잘하게 업체 불러서 수리도 해보면서 이제 의연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또 새로운 난관이었다.


누수업체는 또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었다.

할머니보다는 젊어서 누수 공사에 대한 이야기가 통할까 해서 집주인 아들한테도 전화를 드렸는데 그 쪽은 무관심하다고


누수 공사할 때 집주인할머니도 누수 원인이 복잡할 수 있다고 설명드리고 진행했는데, 할머니는 수리 한 번에 누수가 다 고쳐진다고 생각해서 난감하다고 했다. 할머니 말에 따르면 자기가 아는 사람은 장비도 없이 와서 소리로만 듣고 20만원에 고쳐줬다고 한다. 그러면 그 업체를 부르라고 했는데, 처음 온 사람이 와서 고쳐야한다고 주장했다는 거다. 추가로 누수탐지 및 수리야 가능하지만 솔직히 여기서 누수공사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법적분쟁이야기도 꺼냈다. 할머니측에서 고소하면 자기도 역고소하겠다고. (참 법을 좋아하시는 구나 싶었다. 집과 관련된 문제다 보니 소송이나 고소가 많았나 싶기도 하고)


이 업체가 온다고 해도 걱정이 됐다. 추가비용을 줄 생각이 없는 할머니와 출장 온다면 추가비용을 받을 누수업체가 분쟁을 한다면 어쩌지? 걱정이 됐다. 왜냐면 그 싸움은 우리집에서 벌어질 것이므로 싸울 때 '나가서 다퉈주세요'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일단, 내가 할머니에게 전화해서 추가 수리 비용이 드는 것을 안내드리겠다고 했다. 수리업체는 선택권을 할머니에게 드리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래야 내가 중간에서 안 힘들다고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 세탁기 돌렸는데 물이 떨어졌나요? "

"오늘은 물이 안 샜어"

"그 누수업체 다시 부르실 건가요?"

"응 내일인가 온다고 했어"

"오면 누수검사비랑 추가 비용이 들어간대요. 하수도나 옥상 누수, 빗물누수일 수 있는데 하수도면 운좋으면 10만원, 바닥 다 뜯으면 100만원, 옥상 누수도 가격이 들고 한대요"

"아니 뭐 그런 사기꾼이 다 있어. 온수 누수면 고치면 물 안 떨어져야지. 계속 떨어지는데. 내가 몇십년동안 집 고치면서 살았는데 그런 x은 처음 본다."

그 이후에 긴 욕과 푸념이 쏟아졌고 나는 침착하게 자동차보험을 들었으면, 누수에 대한 보상을 해주는 경우도 있으니 확인해보라고 말씀드렸다. 선택권을 할머니에게 드리고, 나는 이 누수 사태에서 빠지고 싶었다.

일단은 알겠다고 해서 전화를 끊고 나는 한숨이 쉬었다. 아 진짜 마음 편히 살고 싶은데..


세입자라면 꼭 기억해두시길.

누수 업체를 부를 때는 집주인한테 전적으로 맡기자.

좋은 리뷰가 많은 업체라고 해서 꼭 다 나한테 좋은 건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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