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0과 1이 아니다 - 『팩트풀니스』

by 최다운 바위풀

친구들 톡방에 기사 하나를 공유했다. 한 인기 예능 프로에 대통령이 나온다는 뉴스였다. 지난 정부 때, 대통령이 예능에 나오는 것을 보면서 참 싫었는데 똑같이 한심한 짓이다 싶었다. 그저 일이나 잘하면 될 텐데.


그런데 한 친구가 그러더라. 야, 너는 비엔나를 즐기기도 바쁜데 뭐 그런 거를 신경 쓰고 있냐고.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다. 친구 말이 맞지. 지금 내가 굳이 그런 거에 관심 가질 필요가 없는데.


이런저런 세상일에 가급적 신경 쓰지 않고 지내려 한지는 몇 년 됐다. 한때는 새로 창간한 시사 주간지의 정기구독을 신청할 정도로 관심을 갖고 있는 편이었는데 ,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험난한 세상에서 나 하나 제대로 지탱하기도, 내 가족이 행복하게 지내려고 하는 것만도 쉽지 않은데 내 울타리 밖 세상에 신경 쓸 힘이 있는 건가 싶더라.


꽤 오래 그런 마음으로 살아왔다. 세상이 갈수록 극단적이 되어간다고 느낀 것도 점점 더 바깥일에 관심을 끊은 이유였다. 해외 여행객으로 가득 찬 공항 풍경과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다는 자영업자 뉴스가 같은 하루에 뜨는 걸 보면서 어쩐지 인지부조화를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럴수록 나와 내 가족이 잘 지내는 것만 바라게 됐다. 어차피 바깥세상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세계는 흑과 백처럼 보였고, 국내 뉴스도, 해외 뉴스도 점점 극단적이고 암울한 소식만 들리는 듯했다.


그런데 얼마 전 『팩트풀니스』를 읽고, 생각을 조금 바꾸게 되었다. 갈수록 극과 극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은 세상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뉴스와 신문 기사만 보면 이러다가 종말이라도 올 것처럼 느껴지지만, 저자들은 정확한 수치로 만든 물방울 도표를 보여 주며 세계가 0과 1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걸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예를 들어 선진국과 후진국이 아니라, 그 사이에 있는 무수한 중진국들, 그리고 아래쪽보다 위쪽에 더 견고히 모여 있는 나라들의 물방울 도표는 세상이 극과 극으로만 이뤄지지 않았다는 걸 보여줬다. 물론 세계에는 여전히 극빈층이 존재하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마치 세상이 곧 끝날 것처럼 암울한 상황은 아니라는 말이다. 일정 부분은 '빈곤 포르노'처럼 더 자극적인 수치와 이미지를 통해 더 큰 효과를 노리는 미디어나 단체의 영향일 수도 있겠다.


『팩트풀니스』에서 얘기한 일반화와 공포, 부정과 직선, 크기와 단일 관점 같은 본능이 나도 모르는 새에 세상을 흑백으로만 보도록 한 것 같았다. 진짜 세상은 이렇게 단순히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나이가 들고, 만나는 사람이 적어지면서 점점 나만의 좁은 세상에 갇히는 것 같다고 느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보고,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만 인정하다 보니 마치 유튜브나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확증 편향을 강화하는 것처럼 내 머릿속도 그렇게 변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내가 서 있는 세상과 반대편 세상 두 개만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팩트풀니스』를 읽고, 조금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은 단지 0과 1, 흑과 백으로 나눌 수 없으며 무수한 흐름의 집합이란 걸. 극과 극의 세계가 되었다고 지레 슬퍼할 일도 아니고, 오직 나만 잘 지내보겠다고 다른 걸 무시할 일도 아니었다.


돌아보면 극과 극에 있고, 서로 반대편에 있는 것 같아도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한테는 완전 반대편의 정치 성향을 가진 친한 친구가 있고, 사회 문제에 대해 완전 반대편의 말을 하던 친한 동료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그들을 싫어하거나 멀리한 적은 없다. 내가 잘 알고 친한 사이이다 보니 그들을 이해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팩트풀니스』를 읽고 정치적인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지만, 저자들이 말하려고 하는 건 사실 더 폭넓은 세계의 이야기다. 그들은 빈부와 기후 온난화를 포함한 여러 문제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부수면서, 그러한 고정관념을 깨는 순간 더 넓은 세상의 기회를 볼 수 있을 거라 말한다.


세상을 이해하는 데 관심이 있다면, 자신의 시야를 넓히고 싶다면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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