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성이라는 프레임에 취수된 진보

by 지드

청문회 때마다 후보의 자질을 두고 항상 논란이 되는 일이지만, 개인적으로 도덕성이라는 잣대로 그 사람의 정치적 신념과 업무 수행능력을 반드시 평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부조리하다고 인식할 때, 자신의 가족이라도 우선 차별 받지 않기 위해 남다른 관여를 하는 것은 개인으로서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병폐와 모순을 좀 더 목도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많은 진보인사들이 도덕성과 윤리적 가치를 진보의 고유한 가치인 것처럼 포장하고 향유하다, 정작 심판대에 오르면 ‘내로남불’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학자와 사회적 리더는 엄연히 다르다. 학자는 우선적으로 자신이 속한 학계에서 학문적 성과로 평가받지만, 사회적 리더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가치에 걸맞은 행동을 대중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 누구도 쉽게 “중요한 것은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라는 진보적 가치를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주창자가 ‘용의 지위’를 대물림하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음이 드러날 때 사회의 구성원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사회구조를 바꾸는 것은 지난한 일이고 시행착오 과정에서 피해를 고스란히 받는 것은 결국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혹여 정권이 바뀌어 정책기조가 바뀐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가뭄이 들 때 개천에 모여 사는 붕어와 가재의 처지는, 대해에 거주하는 용에 비할 바가 아니다.


리더로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비전을 대중들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가진 것이 많기 때문에 진보인 ‘강남좌파’형의 인물들은 그 공통분모가 너무나도 작다. 문제는 진보인사들의 땅에 떨어진 도덕성으로 인해 진보적 가치와 정책의 순수성 조차 훼손 받고 있다는 것이다. 도덕성이라는 프레임에 갇혀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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