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전체를 수행으로 살아내는 힘

by 동그라미

수행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산속의 선방이나

조용한 명상실을 떠올린다.

기도와 독경, 고요한 좌선, 깨어 있는 호흡…


그런데 자각이 깊어질수록

이런 질문이 마음에 생긴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 시간만 수행이라면,

나머지 시간은 다 뭘까?”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누군가와 통화하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버스를 타고,

아이를 재우는 그 순간들.


거기에는 아무 수행의 ‘형식’도 없다.

하지만 자각이 열려 있으면,

그 모든 것이 수행이 된다.


‘지금 여기’에 깨어 있기만 하다면

그 어떤 일도 삶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누군가 말한다.

“수행할 시간이 없어요.”

“일이 너무 바빠서, 마음 챙길 겨를도 없어요.”


그 말은 이해된다.

삶이 그렇게 몰아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말이 틀렸다는 것도 안다.


왜냐하면 수행은

일상 속에서 깨어 있는 연습이지,

일상을 벗어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숨을 들이마시는 그 순간,

‘아, 지금 내가 숨 쉬고 있구나.’

한 문장 쓰다가 문득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는 순간,

그게 수행이다.


걸음을 걷는 중에도,

마음이 어디로 가는지 살피는 것,

그게 자각이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물의 온도, 손의 감각, 마음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순간조차도 수행이다.


수행은 특별하지 않다.

오히려 지나치게 특별하려 할수록

지금 여기서 멀어진다.


진짜 수행은

평범함 속의 깨어 있음이다.


티 내지 않고,

결과를 내려고 하지 않고,

누구에게 보이려는 마음도 없이

그저 매 순간, 정직하게 있는 것.


그것이 가장 강력한 수행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아, 도달해야 할 곳은 없구나.”

삶 자체가 길이었다는 걸.

그리고 그 길 위의 매 순간이

이미 수행이었다는 걸.


이해가 아닌, 실감이 온몸을 채운다.


삶은 매 순간

나를 깨우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눈뜨는 아침도,

흐트러진 하루도,

어쩌면 그 모두가 법문이었다.


“수행은 삶의 바깥이 아니라,

삶의 한가운데에 있다.”


이제는 그런 말이

머리로가 아니라

가슴과 손끝으로 체감된다.


지금 이대로의 삶이,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더 고요하게 살아질 때,

우리는 안다.


삶 전체가 수행이었다는 것을.



#삶의수행

#지금여기

#평범함속의깨어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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