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문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2장 진영의 소년

by 토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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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흙집

새벽이었다. 아직 어둠이 마당을 다 덮고 있었고, 굴뚝엔 연기가 오르지 않았다. 바람은 없었고, 집 안은 차가운 흙냄새로 가득했다.

집은 작았다. 진한 갈색 벽지와 갈라진 진흙 벽, 빗물에 얼룩진 천장이 얇은 숨을 쉬었다. 비가 많이 오면 천장 한쪽에서 물방울이 떨어졌고, 여름이면 진드기가 벽지 안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누구도 그 집을 ‘더럽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집 안에서 태어나, 자라며, 고요하게 늙어갔다.

노무현은 다섯 식구가 누운 방 안 구석에 등을 대고 누워 있었다. 담요 끝은 그의 발목에 닿지 않았고, 밤새 그곳은 차가웠다. 어머니는 가장 바깥쪽에 누워 있었고, 그 옆으로 아버지, 형, 그리고 동생이 줄지어 누워 있었다.

그는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장 너머의 어둠을, 그리고 어둠 너머의 무언가를 상상하고 있었다.

쥐가 천장을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발톱이 마른 나무를 긁는 소리.

그는 그것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익숙했고, 자연스러웠다. 마치 자명종처럼, 쥐의 발소리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것 같았다.

문득, 몸 옆에서 이불이 들썩였다. 어머니가 일어난 것이었다.

그녀는 말없이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부엌은 방보다 더 어두웠고, 더 추웠다.

부뚜막의 냉기를 손으로 더듬고, 물을 붓고, 성냥을 켰다. 찰칵—불이 붙는 그 짧은 소리 속에, 하루가 불타기 시작했다.

노무현은 눈을 감지 않았다.

어머니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일상의 진동을 가만히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속에선 늘 말을 걸고 있었다.

‘잘 살아야 해. 너는 꼭, 이 마을을 벗어나야 해.’

그런 말들을.

이불 밖으로 팔을 내밀자, 공기가 닿은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그대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세상은 어둠 속에 있었지만, 그는 그 어둠이 언젠가는 물러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이 물러날 때,

자신도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느꼈다.

부엌 쪽에서 다시 불이 튀는 소리가 들렸다.

찰칵—

조그마한 불빛 하나가 흙 집의 구석을 깨우고 있었다.

2. 땔감을 줍는 아이

산은 말이 없었다.

아직 새벽빛이 닿지 않은 산은 커다란 동물처럼 웅크리고 있었고, 그는 그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손에 작은 자루 하나. 허리에 끈으로 맨 포대자루는 빈 채로 출발했지만, 돌아올 때는 어깨가 기울 정도로 무겁게 채워졌다.

그 속엔 땔감이 있었다. 마른 나뭇가지, 꺾인 줄기, 쓰러진 잎들.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것들.

그러나 그 조각들이 하루하루를 데웠고, 밥을 지었고, 겨울을 건넜다.

발이 차가운 흙을 밟을 때마다, 몸이 조금씩 깨어났다.손끝은 저렸고, 콧속이 얼얼했다. 그러나 그는 걷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땔감을 줍는 일은 서두르지 않아야 했다.

서두르면 놓치고, 무리하면 부러졌다.

그는 땅을, 나무를, 냄새와 소리로 읽었다.

어느 나뭇가지는 썩어 있었고, 어느 풀밭은 멧돼지가 밟고 간 흔적이 있었다.

그는 그런 걸 잘 알아봤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매일 걷다 보니 알게 된 것들이었다.

어느 순간, 멈춰 섰다.

햇빛이 산등성이 너머로 스치고 있었다. 아직 어두운 숲속에서, 그 한 줄기 빛만이 유일한 온기였다.

그는 빛이 닿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무토막 하나를 발견했다.

적당한 크기, 적당한 무게,

그날 하루를 불태우기에 충분한 나무.

그는 그것을 들어 포대자루에 넣었다. 나무가 부딪히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그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서 날아올랐다.

날개짓 한 번에 바람이 흔들리고, 낙엽 몇 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장면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조용하고, 아무도 보지 않지만 아름다운 움직임.

그 새는 어딘가로 날아갔고, 그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포대는 조금씩 무거워졌고, 몸은 조금씩 익숙해졌다.

어릴 적부터 계속해온 일.

그런데도 가끔,

이 일이 내 인생 전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아주 가늘게, 아주 미세하게 떠오르곤 했다.

산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알았다.

지금 이 순간, 아무도 없는 이 산속에서

그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혼자서도 느끼고 있다는 것을.

3. 책을 훔치다

책은 얇고, 오래돼 있었다.

표지는 해졌고, 모서리는 말려 있었으며, 낙서와 얼룩이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제목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속에는 그가 아직 보지 못한 세계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읍내 이발소의 기다란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아이들이 머리를 깎기 위해 기다리며 읽다 마는 책들. 만화책이 아니었다.

활자가 빽빽했고, 문장은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그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책을 들고 나온 건, 충동이었다.

아무도 그를 보지 않았고,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그는 그 책을 조심스럽게 옷 안에 넣었다.

그 순간, 심장이 뛴다기보단, 속이 조용히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짧았지만 길었다.

그의 귀에는 누구의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뒤에서 누군가가 따라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집에 도착해 문을 닫았을 때, 그는 한동안 숨을 내쉬지 못했다.

방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책을 꺼냈다.

종이 냄새. 오래된 먼지. 낯선 단어들.

그는 그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세계의 냄새 같다고 생각했다.

책은 처음부터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고 읽었다. 모르는 단어는 모른 채로 넘기고, 이해되지 않는 문장은 다시 읽었다.

그리고 몇 줄이 지나자, 마음속 어딘가가 서서히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넓구나.’

그 밤, 그는 책을 끌어안고 잠들었다.

다음 날, 사건은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이발소 주인이 마을 어귀까지 찾아왔다. 얼굴은 붉었고, 손에는 익숙한 그 책이 들려 있었다.

“네가 가져갔다며?”

어머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그 어떤 꾸중보다 무서웠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책은, 조용히 손에서 미끄러져 이발소 주인의 손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어머니는 말이 없었다.

부엌에서 김치를 썰며, 쌀뜨물을 쏟으며, 그녀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마루에 앉아, 식어가는 발을 품고 있었다.

수치심이라는 감정은 처음이었다.

그것은 화가 나는 것도, 억울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작아진 느낌이었다.

작고, 좁고,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존재.

그러나 그날 밤 그는 또 다른 감정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책을 읽고 싶었을까.’

그는 자책하면서도, 어딘가 마음 한켠이 이상하게 단단해지는 걸 느꼈다.

무언가를 향한 욕망이 부끄럽지 않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나중에야 알았다.

수치심은 자신이 인간이라는 증거라는 것을.

그리고 책은 사람을 부끄러움 속에서도 앞으로 걷게 만든다는 것을.

4. 어머니의 손

그날 저녁, 부엌에는 된장 냄새가 감돌고 있었다.

어머니는 된장을 푼 국물에 두부를 넣고 천천히 저었다.가마솥 안쪽에서 물이 조용히 끓었다. 거품이 올라오다 터지는 소리가 마당까지 들렸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부엌 문턱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말하지 않으면 덜 부끄러울 거라 생각했지만, 말하지 않음으로써 어머니가 다 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일찍 잤어야지.”

어머니는 국자를 들고 말했지만, 눈은 솥을 보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짧은 대화 이후, 긴 침묵이 이어졌다. 바람이 들창을 흔들었고, 흙바닥에 그림자가 길게 번졌다.

어머니는 불을 줄이고 솥 옆에 앉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그의 손등을 한번 쓰다듬었다.

말은 없었지만, 그 손길은 오래 머물렀다.

어머니의 손은 거칠었다. 물집이 단단하게 박혀 있었고, 손톱은 짧게 잘려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따뜻했다.

그 온기는 손끝보다 마음에 더 오래 남았다.

그는 그 손길이 어떤 말보다 깊다고 느꼈다.

미안하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그 손 한 번에 다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다시 손을 거두고 일어났다.

무릎이 아픈지, 잠시 몸을 굽힌 채 움직이지 않았다가 조용히 그릇을 꺼내 밥을 푸기 시작했다.

그는 가만히 그 모습을 보았다.

언젠가는 이 손이 늙고, 약해지고, 자신보다 먼저 멈출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그때 처음으로 무언가를 지켜야겠다는 감정이 가슴에 들었다.

한쪽에서 국이 끓는 소리가 다시 커졌다.

그 소리 아래에서, 그는 아주 작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중에, 내가 지켜줄게요.”

말은 끝까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그 순간 그의 마음에 처음으로 다짐이라는 이름의 문장이 생겨났다.

5. 장터에서

마을 아이들이 모였다.

3일마다 한 번씩 서는 장날, 아이들은 땀과 먼지를 품은 웃음을 품고 장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들길은 말라 있었고, 벌레 소리는 낮게 깔려 있었다.

아이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고 있었다. 누군가는 돌을 찼고, 누군가는 물기를 머금은 풀을 손끝으로 만졌다.

노무현은 무심하게 앞을 따라가고 있었지만, 그날 따라 자꾸만 발끝이 땅에 닿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친구 한 명이 새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하얗고 반짝였고, 끈이 깔끔하게 묶여 있었다.

다른 친구는 셔츠를 새로 맞췄는지, 소매 끝이 빳빳했다.

그는 자신의 운동화를 내려다보았다. 창이 떨어졌고, 신발 끈은 풀리지 않도록 한쪽만 매여 있었다.

아무도 그런 걸 말하지 않았다. 누구도 비교하지 않았고, 누구도 놀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느꼈다.

“나는 조금 다르구나.”

장터는 벌써 북적이고 있었다. 장사꾼의 목소리, 돼지 머리 옆에 선 노인들, 떡을 사려는 여인들.

시장은 살아 있는 동물처럼 울컥이고 있었다.

친구들은 닭꼬치를 하나씩 사 먹었다.

“너는 안 먹어?” 누군가 물었다.

그는 “괜찮아.” 하고 웃었다.

사실 그는 돈이 없었다. 어머니가 “보리쌀 가격만 알아보고 오라”며 주신 심부름이었다.

그는 포장마차 옆에 섰다. 고기 굽는 냄새, 연기, 양념의 향. 배가 고프다는 생각보다,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더 괴로웠다.

친구들은 먹고, 떠들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 역시 걸었다. 그러나 마음은 발보다 한참 늦게 따라왔다.

시장 한쪽, 헌책을 깔아놓은 노점 앞에서 친구들은 우르르 모였다. 누군가 책 한 권을 집어 들었고, 한 명은 아무 말 없이 사버렸다.

그는 구경만 했다.

손은 책을 향해 뻗었지만, 다시 조용히 내려왔다.

그 순간, 노점상의 눈과 마주쳤다.

그는 그 눈빛에서 아무 말도 듣지 않았지만, 어딘가에서 작게 밀려나는 느낌을 받았다.

돌아오는 길, 아이들은 시시덕거리며 앞서갔다.

그는 뒤에서 조용히 걷고 있었다.

흙먼지가 바지끝에 묻었고, 나뭇잎이 한 장 구두창에 들러붙었다.

그는 그 날 이후, 장터의 풍경을 다시는 예전처럼 보지 못했다.

그 속엔 맛있는 음식도, 신기한 물건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살 수 없는 것들’이 가장 많이 들어 있었다.

그 다름이 나쁘다거나 억울하다는 감정은 없었다.

다만,

그 다름이 너무 선명하게 느껴졌고, 그것이 평생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처음으로

“나는 왜 다르지?”라는 질문을 품었다.

아직은 누구에게도 묻지 못했지만,

분명히 언젠가,

그 질문에 스스로 답을 내야 한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다.

6. 반항

교실은 정적 속에 놓여 있었다.

햇살은 창틀 위 먼지들 사이로 기울어 있었고, 아이들은 모두 고개를 숙인 채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검은 발소리가 복도를 따라 다가왔다. 딱, 딱.

그는 그 소리를 알아봤다.

교사의 걸음.

선생은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소리쳤다.

“오늘 아침 청소 당번 누구였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또한 입을 다물었다.

“노무현, 너지?”

그의 이름이 정확히 불렸다.

누가 말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말한 이가 누구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지금 그가 일어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안 했어?”

“제가 안 한 건 맞지만, 저만 그런 건 아닙니다.”

그 말은 조용했지만, 교실을 가로질러 명확히 울렸다.

선생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나와 손바닥을 내밀라는 지시에 응했다.

회초리가 떨어졌다.

첫 번, 두 번.

그는 눈을 감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다섯 번쯤 맞고 나자, 손바닥이 붉게 부풀었다.

그런데도 선생은 멈추지 않았다.

“말대답하는 놈은 더 맞아야 돼.”

그 말은 맞는 이유를 더 모호하게 만들었다.

여섯 번째 회초리가 올라가기 직전, 그는 선생의 손목을 붙잡았다.

짧고, 정확한 동작이었다.

교실이 멈췄다.

“이제 그만 때리십시오.”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더 이상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었다.

선생은 놀랐고, 아이들은 숨을 죽였다.

그날 이후, 그는 문제아가 되었다. 말대답을 하고, 순종하지 않으며, 혼자 자리를 지키는 아이.

그러나 그는 그 이름을 감당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손바닥은 아직도 얼얼했다.

바람이 손등을 스쳤고, 통증은 오히려 자신이 한 말을 계속 기억하게 만드는 장치처럼 느껴졌다.

어머니는 아무 말없이 손을 잡아보더니 다시 조용히 놓았다.

그 손에는 아무 연고도 발라지지 않았다.

그날 밤, 그는 그 손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말해야 할 말을 했다.”

맞았다는 사실보다 말한 자신이 낯설면서도 조금 자랑스러웠다.

7. 도서관 없는 소년

마당 끝 작은 방.

형이 쓰던 낡은 책상이 한쪽 벽에 붙어 있었고, 책상 위에는 바닥이 갈라진 등잔 하나가 놓여 있었다.

기름은 늘 충분하지 않았다. 심지에 불이 붙으면 잠시 환하다가 곧 흔들렸고, 작은 불빛은 손가락 그림자를 길게 늘였다.

그는 그 불빛 아래서 책을 펼쳤다. 책은 오래됐고, 빌려온 것이며, 빌린 날부터 반납일을 걱정해야 하는 물건이었다.

교과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손때가 진하게 묻은 참고서였다. 페이지 모서리마다 접힌 흔적, 밑줄, 낙서.그 흔적들이 책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글자는 자꾸만 흔들렸다. 눈이 피곤해서였고, 등불이 약해서였고, 또 다른 이유는 말로 하기 어려웠다.

“이걸 안다고, 뭐가 달라질까.”

그 문장이 마음 한쪽에 떠오를 때면, 그는 책을 덮고, 고개를 들고, 조용히 천장을 바라봤다.

그럴 때마다 그는, 다시 한 장을 넘겼다.

그것은 누구에게 들은 적 없는 방식이었다.

단어를 외우는 법도, 수학 공식을 풀어내는 법도 모두 자기 손으로 익혀야 했다.

마을엔 도서관이 없었다. 학교엔 책장이 비어 있었다. 선생은 적당히 진도를 나가고, 아이들은 그것을 잊어버렸다.

그러나 그는 외웠고, 따라 썼고, 틀리면 다시 시작했다.

글씨는 곧 마음이었다.

불빛이 꺼지면 그는 손바닥으로 바람을 막았다. 그 손바닥 아래, 기름냄새가 옅게 배었다.

그 방은 추웠고, 책상은 비좁았고, 책은 낯설었다.

그런데도 그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언젠가, 이 방을 벗어날 수 있다면—아니,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나는 스스로 알았다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새벽이 가까워질 무렵, 등잔이 한 번 깜박이고 꺼졌다.

남은 기름이 바닥났다.

그는 천천히 책을 덮었다.

방 안이 어둠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그는 한 줄 문장을 마음속에 적고 있었다.

“지금 이 길이 맞다는 건,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안다.”

8. 시험의 날

바람이 차가웠다.

얇은 외투 안으로 공기가 스며들었고, 손끝이 굳었다.

구두는 형에게 빌린 것이었다. 반 치수쯤 컸고, 속에 짚을 말아 넣었다.

바지는 어머니가 이틀 전 밤늦게 꿰맨 것이었고, 와이셔츠는 깨끗했지만 낡았다.

그는 자신이 낯선 옷을 입고 낯선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오늘만 입는 옷”이라는 생각이 마음을 지탱해줬다.

입구 앞엔 아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어떤 아이는 학원에서 나눠준 문제지를 복습했고,어떤 아이는 부모가 건네는 보온병을 들고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손에 들고 있지 않았다.

주머니 안엔 몽당연필 하나와 지우개 조각이 들어 있었다.

교실에 들어섰을 때, 책상은 그의 몸에 비해 컸고, 의자는 삐걱거렸다.

창밖으론 교정이 보였고, 아이들은 제각각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는 뒷자리에 앉았다.

시험지가 배부되기 전까지, 손만 무릎 위에 놓고 있었다.

감독관이 들어왔다.

책상 사이를 지나며 걸을 때, 그의 발소리가 교실 전체에 울렸다.

시험지가 내려왔다.

그는 숨을 들이마시고, 펜을 꺼냈다.

첫 문제를 읽을 때 손끝이 떨렸다. 그 떨림은 점점 줄어들었고, 대신 눈이 차분해졌다.

그는 단어를 이해했고, 문장을 분석했고, 계산을 반복했다.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순간,

그는 자기 머리와 손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있었다.

문제를 푸는 동안, 구두 속 짚이 미세하게 부서졌다.

자리를 바꾸며 구두가 마룻바닥을 긁을 때바닥에서 나는 소리가 혼자만의 싸움을 알리는 신호처럼 들렸다.

시험이 끝났을 때, 그는 숨을 내쉬었다.

얼굴에 땀이 맺혀 있었고, 손바닥은 축축했다.

책상 위에 연필을 올려 두고 일어났다.

누가 먼저 나가고, 누가 마지막에 남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교실 문을 나서며 생각했다.

“내가 여기 왔다는 것, 그 것만으로도 오늘은 진 게 아니다.

바람이 다시 불었고, 구두 속 짚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다.

9. 소년의 울음

오후 늦게, 마을에 소문이 돌았다.

입학시험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었다.

친구들이 하나 둘 집 앞을 오갔다. 어떤 아이는 어머니 손을 잡고 읍내로 향했고,어떤 아이는 이미 환하게 웃으며 돌아오고 있었다.

그는 가만히 마루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나무기둥에 몸을 기대었고, 어머니는 마당에 감잎을 털고 있었다.

누구도 먼저 말하지 않았다.

형이 들어왔다.

종이 한 장을 건넸다.

말없이, 그저 종이 하나만.

그는 손에 그 종이를 받았다.

이름이 있었다. 번호가 있었다.

그리고 합격이라는 두 글자가 있었다.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고, 아무도 그를 안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서운하지 않았다.

그런 건 이 집에서 익숙한 방식이었다.

어머니는 고개만 짧게 끄덕였고, 아버지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는 조용히 종이를 접어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밤이 되었다. 형은 먼저 잠들었고, 부엌불은 꺼졌고, 개는 마당 끝에서 낮게 숨을 쉬었다.

그는 이불 속에서 몸을 웅크렸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지만, 눈에서 물이 흘렀다.

그것은 크게 흐르지 않았고, 가슴 안쪽에서 아주 천천히 올라와 조용히 눈 가장자리를 적셨다.

기뻐서가 아니었다.

견뎌왔던 것들이 순간 허물어졌기 때문이었다.

책이 없던 날들, 수업을 못 따라가 혼자 도서관 뒤쪽에 앉아있던 날, 땔감을 지고 언 손으로 글씨를 썼던 밤.

그 모든 시간이, 이제 막 겨우 한 칸 움직였을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한 칸조차도 너무 멀고, 너무 외로웠다.

옆에선 형의 숨소리가 일정하게 들려왔다.

그는 이불을 얼굴 위까지 끌어올렸다.

손등으로 눈가를 닦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날 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울었다.

그 울음은 약함이 아니라, 끝까지 걸어온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인사 같은 것이었다.

10. 첫 계단

아침이었다.

마당에는 서리가 내려 있었고, 감나무 가지 끝에는 물방울이 매달려 있었다.

그는 새 교복을 입었다.

남의 옷 같았고, 몸에 맞지 않았고, 어깨는 조금 컸다.

하지만 그는 거울 앞에서 단추를 모두 채웠다.

어머니는 아침상을 차리면서 말이 없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된장국에 고등어 한 토막, 김치.

그는 조용히 밥을 먹었다.

아버지는 기둥에 등을 대고 신문을 읽었다.

활자 너머로도, 아버지는 오늘이 어떤 날인지 알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마당에 나와 신발을 신는 순간, 구두가 약간 빳빳하다는 걸 느꼈다. 어제 닦아 놓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어머니의 손이었다.

그는 집을 나섰다.

마을길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돌담, 낮은 지붕, 말없이 길을 쓸던 노인들.

아무도 그가 학교에 간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았다.

삶은 그런 일이 늘 있던 일처럼, 묵묵히 흘렀다.

그는 시골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논에는 물이 얇게 얼어 있었고, 멀리서 트럭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갔다.

처음 가는 학교, 처음 올라가는 계단.

그것은 어떤 대단한 입장도 아니었고, 누구도 기다리지 않았고, 꽃다발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알았다.

지금 자신이 디딘 이 한 걸음이 앞으로 이어질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걸.

교문 앞에서 그는 가만히 숨을 고르고, 구두 앞코를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첫 번째 계단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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