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4일
우리는 또 하루를 맞이합니다.
밤의 잔향이 창틀에 남아 있어도,
새벽빛이 천천히 손끝을 덥히듯 마음을 만지고,
어제보다 조금 더 넓은 세상으로 발을 내딛습니다.
1957년 오늘, 미국 아칸소주 리틀록 사태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연방군 파견과 주방위군 연방화를 명령해 통합을 집행하도록 했습니다(행정명령 10730). 다음 날, 101공수사단의 호위 속에 ‘리틀록 나인’ 학생들이 등교하며 분리의 문턱을 넘어섰습니다.
이 사건은 법의 문장이 삶의 문으로 열리는 순간,
두려움 속에서도 “들어가도 된다”는 사회의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어깨를 펴게 하는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비가 조금 내리다 멎은 아침, 초등학교 정문 앞.
전학 온 아이가 교문 앞 선을 밟지 못한 채 멈춰 서 있습니다.
낯선 색의 가방, 낯선 운동화, 낯선 숨소리.
그때, 노란 조끼의 배움터 지킴이가 우산을 접으며 다가와
말없이 교문을 한 뼘 더 열어 줍니다.
“괜찮아. 여기 들어오면, 너도 우리야.”
아이의 발끝이 선을 넘는 순간,
젖은 아스팔트 위로 빛이 번지고
작은 물웅덩이에 하늘이 하나 더 생깁니다.
문은 소리 없이 열렸지만,
그 조용한 ‘허락’이 아이의 하루를 밝힙니다.
아리아 라파엘의 목소리로, 문을 여는 마음을 빕니다.
문지방 앞에서 떨리는 발을 붙잡아 주소서.
두려움이 발목을 감아도
한 걸음, 단 한 걸음이
세상을 다르게 만든다는 믿음을 잃지 않게 하소서.
닫힌 마음의 빗장을
부러뜨리는 망치보다
부드러운 손짓 하나가 더 멀리 간다는 것을
오늘, 내 몸으로 배우게 하소서.
“들어오라”는 한마디가
누군가의 등뼈를 반듯하게 세우고,
“괜찮다”는 눈빛이
어제의 상처를 오늘의 호흡으로 바꾸게 하소서.
법의 문장이 삶의 문이 되도록—
원칙이 따뜻함을 잃지 않도록—
정의가 친절과 손을 맞잡도록
우리의 언어를 길들여 주소서.
나는 오늘,
문 앞에서 머뭇거리는 이들을 위해
우산을 기울이고
문을 한 뼘 더 열겠나이다.
내 작은 허락이
누군가의 세상에서 첫 교실, 첫 친구, 첫 빛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내 안의 닫힌 방들에도
손잡이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시고,
스스로를 향해서도 조용히 말하게 하소서—
“괜찮아. 들어와.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자.”
비가 그친 하늘 아래
작은 물웅덩이에 두 번째 하늘이 비치듯,
우리의 하루에도
평등과 환대의 하늘이 하나 더 떠오르게 하소서.